▲연극
기자들은 박수에 인색하다. 공연 프레스콜 현장에서는 박수소리를 듣기 힘들다. 타자를 치거나 카메라 셔터 누르는 소리가 더 클 정도이다.
그런데 연극 ‘배웅’ 현장에서는 기자들의 박수 소리가 들렸다. 극 초반엔 웃음소리도 크게 들렸고,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눈물을 삼키는 소리도 이곳저곳에서 들렸다. 프레스콜 이전 미리 접한 공연 포스터의 첫인상에 대한 생각이 짧았다는 것도 깨달았다.
배우 오영수와 이영석이 환하게 웃고 있는 ‘배웅’ 포스터를 봤을 때의 첫 느낌은 극과 극이었다. 배우들의 미소에서 푸근함과 따뜻함이 느껴졌지만 ‘다소 어렵거나 지루하진 않을까’ 염려도 됐다. 쉽고 재미있는 공연에 익숙해져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공연장에서 졸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며 마음을 굳게 다잡고 들어갔다.
그런데 공연 시작부터 유쾌함이 이어졌다. ‘배웅’은 오랜 기간 병원을 제 집처럼 여기며 입원 환자로 살아온 봉팔(오영수 분)과 아내를 떠내 보낸 뒤 자식을 출가시키고 생의 마지막 시간을 병원에서 보내게 된 순철(이영석 분)이 서로 의지하는 마지막 친구가 되는 과정을 그린다.
단순한 세트에 두 할아버지가 등장해서 공연이 지루할 것 같은가? 절대로 아니다. 오히려 웃음이 터진다. 극 중 봉팔과 순철은 나이를 먹을 만큼 먹은(?) 할아버지들이지만 어느 상황에서는 유치하기 짝이 없는 모습으로 서로 펄펄 뛰며 다툰다.
자유롭게 살아왔던 봉팔은 처음 본 순철에게도 스스럼없이 악수를 건네고, 또 어떨 때는 부담스러울 정도로 과한 태도를 취하기도 한다. 전직 국어교사였던 순철은 이런 봉팔의 행동이 예의 없다고 여겨 불쾌하게 여기고 맞춤법 하나하나 지적해 봉팔의 화를 돋운다. “뭐라고 했어?” “네가 먼저 그랬잖아!” 하고 티격태격 다투는 할아버지들의 모습은 여느 아이와 젊은이 못지않다.
서로 보기만 하면 으르렁거렸던 봉팔과 순철은 병실에서 함께 하는 날이 늘어나면서 서로의 살아온 이야기에 집중하게 된다. 가족에게 자신이 아픈 것을 숨기고 온 순철과 가족에게 뼈아픈 상처를 입은 봉팔은 서로에게 위로를 전한다. 그런 봉팔과 순철의 모습에서 어느덧 관객들은 자신의 가족을 떠올리게 된다.
민복기 연출은 “노인문제나 죽음이 주제의식이라기보다 인생의 끝자락에 다다른 두 노인이 벗을 만나는 게 가장 중요한 점이 아닐까 싶다. 두 노인이 서로 보내기 아쉽고, 남겨두기도 미안해하고 아쉬워하는 부분에 초점을 맞추고 연출했다”고 연출 의도를 밝혔다. 민 연출의 말대로 그저 평범하게 살아온 두 할아버지의 인생이 맞닿아 펼쳐지는데 그 단순한 인생사가 정말 눈물겹다.
이는 아마 이들의 이야기가 멀리 떨어진 허황된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 봐왔고, 경험했고, 앞으로 다가올 수도 있는 일들이기에 더욱 그럴 것이다. 젊은 시절에는 바쁘게 살아오느라 몰랐던 하루하루의 소중함과 가족 그리고 벗의 소중함을 이들은 일깨워주고 있다.
시간이 흐르고 죽음이 다가올수록 봉팔과 순철은 자신들의 숨겨진 속내를 고백하며 서로 의지하게 된다. 순철은 봉팔이 병실을 나갈 때마다 “난 혼자 밥 먹는 게 제일 싫어. 빨리 와”라며 말을 건넨다. 순철의 이 말은 이후에 봉팔의 가슴에 사무치도록 새겨지는 말이 된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이들은 서로에 대한 ‘배웅’을 잊지 않는다. 헤어짐이 아쉽지 않도록 한껏 사랑을 담아 서로를 배웅한다. 오영수와 이영석의 열연이 아름다운 마지막 배웅을 더욱 감동적으로 끌어낸다.
극 중 봉팔로 열연하는 오영수는 “이 연극을 과연 젊은 20대 관객들이 어떻게 볼까 궁금했다. 그런데 열심히 공연장을 찾는 20대 관객들이 여러 명 있다. 공연을 보면서 자신들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어떤 삶을 살아왔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떠올리고 공감하는 것 같다”며 “모든 세대가 공감하며 볼 수 있는 공연이라 생각한다”고 전한 바 있다. 딱 그 말이 맞다.
처음엔 기자 또한 얕은 생각으로 공연을 보기도 전에 선입견을 가졌지만 ‘배웅’은 전 세대를 아우르는 포용력을 지니고 있다. 두 할아버지의 웃고 우는 인생사가 관객들을 웃기고 울린다. 단지 할아버지들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 모두가 살아가는 인생사가 ‘배웅’에 담겨 있다.
한편 연극 ‘배웅’은 다음달 7일까지 설치극장 정미소에서 공연된다. 극단 실험극장이 주최하고 민복기가 각색과 연출을 맡았으며 배우 오영수, 이영석, 강동수, 송유현, 오경선이 출연한다.
▲설치극장 정미소에서 공연 중인 연극
▲이영석(왼쪽)과 오영수는 연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