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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기 굽는 스님, 이웃사랑을 빚다

[경북복지·경제의 주요 요소 ‘사회적기업④’]흙내음 도예마을 설봉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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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김희정기자 |  2014.03.31 18:06:32

▲설봉 스님이 스님의 대표작 중 하나인 ‘별이 쏟아지는 해변’을 살펴보고 있다.(사진/김희정 기자)

지난해 예비사회적기업으로 지정된 흙내음 도예마을 토향암(칠곡군 지천면 황학리)에서는 승려가 도자기를 빚는다. 절에서 도자기를 만들고 굽는다는 얘기다. 그래서인지 이곳에 들어서면 그윽한 흙냄새가 가득하다.

 

일부러 찾아오는 이들도 많지만 멀리서도 눈에 확 띄는 하얀 건물과 형형색색 다채로운 빛깔을 뽐내는 도자기의 자태에 이끌려 지나는 길에 우연히 들르는 이들도 많다. 

 

이곳에서 도자기를 굽는 설봉 스님(72)은 당초 납골당 용도로 지었다가 여러 사정으로 방치돼 있던 3층 건물을 수리해 법당과 다도생활관, 도자기전시관으로 꾸미고 도예 체험객을 위한 공간을 마련했다.

 

수 백 개의 작품을 마당 곳곳에 전시했다. 대문은 물론 담벼락조차 없다. 말 그대로 노천 전시장이다. 상품가치가 없는 작품들도 아니다. 하지만 ‘지나가다 누가 훔쳐 가면 어쩌나’ 하는 걱정은 스님에게 없다.

 

“내놓는다는 것은 내 것이 아니고 모두의 것이기에 같이 보고 감상하자는 겁니다. 들고 갈 것이라는 생각이 있었다면 아예 노천전시를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스님의 믿음이 사람들에게 전해졌기 때문일까. 노천전시를 시작한지 몇 해가 지났지만 거센 바람이 도자기탑 몇 개를 쓰러뜨려 다시 세운 것 말고는 처음 그대로다. 사라진 작품도 물론 없다.

 

스님은 “훔쳐갈 사람도 슬쩍 들고 갈 사람도 없다는 것은 진리다”며 “아름다운 것을 보면 사람의 마음도 아름다워진다. 탐냄도 성냄도 어리석음도 아름다움으로 변한다. 그렇게 사람들은 스스로 극락을 만들어 간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스님은 요즘 행사준비에 한창이다. 다음달 10일부터 13일까지 이곳에서 ‘제2회 도자기 마당장터’가 열리기 때문이다. 10일 오후에 있을 개막식에서는 장작가마에 첫 불도 지핀다.

▲지난해 예비사회적기업으로 지정된 흙내음 도예마을 토향암의 입구 전경.(사진/김희정 기자)

11일부터 13일까지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도자기체험, 물레체험, 전통차시음, 나만의 도자기 만들기 등의 다양한 체험행사가 펼쳐진다.

 

자연유약에 관한 세미나도 있고 생활도자기들이 실비로 판매된다. 행사 기간 동안 모든 방문객들에게 공양과 다과가 무료로 제공되며 모든 수익금은 전액 호이장학회에 쓰인다.

 

지난 2012년 열린 장작가마 낙성식에서는 축하화환 대신 받은 20㎏들이 쌀 3포대와 축하금 200만원을 지역의 어려운 이웃을 위해 써 달라며 지천면사무소에 기탁하기도 했다.

 

사회적기업이기 때문에 사회 환원 차원에서 형식적으로 하는 일이 아니다. 스님은 출가 이후 늘 소외된 이웃을 위한 일을 해왔고, 이번 행사도 그 연장선이다. 스님은 또 다른 형태로 나눔을 실천하고자 하는 것뿐이다.

 

사회적기업에 신청한 것도 ‘지금껏 한 손으로 거둬들일 수 있는 것을 두 손으로 거둬들일 수 있다면 내가 사회에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아지지 않을까’ 하는 스님의 생각에서였다.

 

설봉 스님은 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 말까지 서울 신길동 판자촌에서 오갈 데 없는 거리의 아이들을 돌봐왔다. 이후 강화도 무애원에서 도자기를 빚으며 군 장병과 어려운 어린이들을 위한 활동에 매진해 오다 2007년 흙내음 도예마을 토향암을 건립하고 불우이웃돕기 개인전시회를 가지는 등 도예를 통해 어렵고 힘든 이웃을 위한 사랑을 베풀어 오고 있다.

 

스님은 원래 건축학도였다. 서울에서 거리의 아이들을 돌볼 때 처음 17명이던 아이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100명, 200명으로 늘어났고, 스님은 판자촌에 세를 얻었다. 아이들을 먹이고, 입히는데 드는 비용도 모자랐다. 스님은 전공을 살려 실내장식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

 

“보는 눈들이 곱지 않았어요. 좋지 않은 얘기로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렸지요. 스님이라면서 법당도 없고, 판자촌에 살면서 승복은 입지 않고 낡은 외투에 모자를 쓰고 일을 하러다녔으니까요. 간첩이 아니냐는 소리도 들었고, 집나간 부인을 찾으러 아이를 남겨두고 떠났던 한 아이의 아버지는 돌아와서 저를 유괴범으로 몰기도 했죠.”

▲도자기에 유약을 뿌리고 있는 설봉 스님.(사진/김희정 기자)

거리의 아이들을 모른척하고 작은 암자의 주지라도 했다면 듣지 않아도 될 말이었고, 겪지 않아도 될 고생이었다.

 

또 아이들을 데리고 관악산에 가서 등산객이 버리고 간 고기와 과자, 밥 등을 주워오라 했는데, 모 중앙지 기자가 ‘아이들을 모아 앵벌이 시키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품고 지켜봤다고 했다. 하지만 아이들이 스님의 가르침에 따라 모아온 음식은 떡갈나무 잎에 나눠 담아 너구리, 오소리, 족제비 등 야생동물과 새들이 먹을 수 있는 자리에 두는 것을 보고 신문에 게재하면서 스님의 활동이 세상에 올바르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후 스님은 돌보는 아이들에게 교육적인 차원에서 뭔가를 가르치기 위해 도예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흙을 빚고 굽는 기술부터 동양화, 서양화, 서예, 조각, 문학, 지질학, 화학과 화공학에 이르기까지 독학으로 도예와 관련된 모든 분야를 섭렵했다. 

 

그렇다보니 스님의 작품들은 규격화 된 틀에서 벗어나있다. 한 작품도 누구의 그것과 비슷한 구석이 없다.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라면 대부분 사사 받은 스승의 작품세계나 기법을 따라가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은은하고 고풍스러우면서 아기자기한 맛도 있는 것이 오롯이 스님을 닮아있다.

 

“엄청난 액수를 제시하며 대표작품을 사가려던 일본인 수집가도 있었지만 ‘내 작품을 일본에 줄 주는 없다. 북해도를 준다면 팔겠다’며 단칼에 거절한 적도 있었지요.” 

 

국내외에서 스님의 작품이 호평을 받으면서 높은 금액에 팔려나갔고 스님과 아이들의 형편도 나아졌다. 스님은 사후에 모든 작품을 경상북도에 기증할 계획이다.

 

그때의 아이들은 스님의 도움으로 무사히 학업을 마치고 지금은 번듯한 사회의 구성원이 됐다. 그 시절을 부끄러워하거나 감추지 않고 자신들끼리 커뮤니티를 형성해 또 다른 나눔 활동을 펼치고 있다.

 

“너나없이 어렵던 시절, 도예가 있었기에 몰려드는 아이들을 키울 수 있었습니다. 저는 종교에 심취해 승복을 입고 머리를 깎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 전통문화가 좋았고, 부인이나 자식이 있으면 사회에 돌려줄 수 있는 부문이 작아질 것이라고 생각해 출가를 결심했습니다. 지금까지 아이들을 위해 살았다면 이제부터는 도예라는 매개체를 통해 평범한 다른 이웃들도 보듬어 주고 싶습니다.”

▲스님의 작품들을 전시한 공간.(사진/김희정 기자)

처음 버려진 아이들을 키우고, 가르치기 위해 시작한 도예였지만 이제는 스님의 삶과 온전히 하나가 됐다.

 

흙을 빚고 불을 지핀 지 30년이 훌쩍 지났고, 초청전과 개인전만 해도 수십 회 가졌던 스님이지만 지금까지도 스님은 도예에 대해 경외심을 갖고 있다.

 

“새로운 생명의 탄생은 소자연의 탄생입니다. 버려진 고철과 썩은 나뭇가지를 주워 다가 ‘도자기’라는 새로운 생명을 만듭니다. 그 생생한 생명에서 저의 땀을 보고, 체온과 호흡을 느낍니다. 당연히 존경하는 마음이 들 수밖에 없죠.”

 

“아무리 내가 만든 작품이라 해도 자만심을 갖고 작품위에 군림해서는 안 됩니다. 도공은 그저 생명의 탄생을 돕는 산파일 뿐이니까요.”

 

스님은 “수십 년을 흙을 만지고 불을 때면서 작품을 만들어왔지만 지금도 새로운 작품을 만들려면 불 앞에서 혹은 흙 앞에서 때로는 바람과 물이나 돌, 나무들까지도 위대한 스승이라는 생각이 든다”며 “도예는 이제 내 삶 그 자체다”고 말했다.

 

스님의 작품에는 고유의 이름과 함께 서정적인 시가 붙는다.

 

‘어둠이 아무리 짙어도 토닥토닥 별들이 뛰놀고 / 쉬지 않고 달려온 파도는 백사장에서 하얗게 부서진다 / 그리움과 기다림을 수없이 삼켜버린 세월이 / 슬며시 작은 약속 하나를 내려놓던날 별이 쏟아지는 해변에서 / 나는 행복과 희망의 나래를 단 물새가 되어 밤바다를 차고 검은 허공으로 날았다’

 

스님의 대표작 중 하나인 ‘별이 쏟아지는 해변’에 바친 스님의 자작시이다. 스님은 자신의 손길을 거쳐 새롭게 탄생한 새로운 생명에 대한 경외심을 시 헌정을 통해 나타냈다고 했다.

 

“영혼을 다 태워 불이 되고, 육신을 다 태워 흙이 될 때까지 쉬지 않고 도공의 길을 가겠다”고 말하는 스님은 오늘도 ‘예술과 종교와 인간의 경계를 허물고, 자연이라는 소중한 스승에게 재료를 구해 도자기라는 생명을 만들어 그 결실을 판매해 어려운 이를 돕는다’는 일생의 사명을 묵묵히 수행하는 중이다. /김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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