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후원하기
  • 인쇄
  • 전송
  • 보관
  • 기사목록
  • 오탈자제보

무너진 국가재난체계…세월호 침몰은 인재(人災)였다

[심층분석]사고발생에서 수습까지 총체적 ‘위기불감증’

  •  

cnbnews 도기천기자 |  2014.04.18 14:23:37

▲세월호 침몰로 실종된 이들의 동료 학생들이 17일 저녁 경기도 안산시 단원고등학교 운동장에서 친구들이 살아돌아오기를 기원하는 메세지를 전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300명 가까운 승객이 숨지거나 실종된 전남 진도 세월호 침몰 사고가 ‘인재(人災)’라는 정황이 속속 확인되고 있다. 세월호에 투입된 지 5개월도 안 된 항해사가 배 운항을 맡았고, 선장과 일부 선원들은 승객들에게 ‘대기하라’고 안내방송 해놓고 먼저 배에서 빠져 나왔다. 비상시 대응매뉴얼은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 

승선인원과 구조인원, 실종자의 신원조차 제대로 집계되지 않고 있으며, 심지어 정부가 민간 잠수부들의 투입을 막고 있다는 보도까지 나온다. 해경과 해군, 민간구조대 간 구조지휘 체계의 혼선, 안전행정부와 해양수산부 간 엇갈린 재난관리시스템 등이 겹쳐 화를 키웠다는 지적도 일고 있다.

한마디로 사고발생에서 수습에 이르기까지 국가재난관리체계가 총체적으로 무너진 것으로 보인다. CNB가 해경 수사와 현장 상황을 종합해 심각하게 드러난 ‘위기불감증’을 짚어봤다. (CNB=도기천 기자) 

구조지휘 체계 ‘우왕좌왕’…부처간 혼선 대응 늦어
정부·대책본부, 현장상황 숨기고 감추기만 ‘급급’
학부모들 “정부 못믿겠다, 우리아이들 살려달라”

이번 여객선 침몰사고로 드러난 ‘인재’의 가장 대표적인 원인은 침몰이 시작된 직후의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점이다.

골든타임은 응급환자가 목숨을 건질 결정적 시간을 이르는 의학 용어다. 통상 해난사고의 경우 사고발생 직후 ‘30분’을 골든타임으로 잡고 있다.

해양수산부가 공개한 제주 해상교통관제센터(VTS)와 세월호의 초단파무선통신(VHS) 교신 내용에 따르면 세월호가 VTS에 최초로 사고상황을 알린 것은 16일 오전 8시55분.

조타수 오모(58)씨는 “최초 구조 요청을 한 것은 선체가 왼쪽으로 기우는 것을 느끼고 선장 이준석(69) 씨와 함께 조타실로 달려가 배의 균형을 잡으려고 시도한 지 20여 분 지난 뒤였다”고 해경에 털어놨다. 오씨는 “이 선장이 조타실의 배수펌프를 작동해 배의 균형을 잡는 ‘힐링’ 작업을 했으나 배가 이미 60도 이상 기운 상태라 힐링을 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밝혔다. 

오씨 말대로라면 승객들이 탈출할 수 있는 황금 같은 20분을 그냥 놓쳐버린 것이다. 그 20분 동안 배안 상황은 상당히 악화된 것으로 보인다. 오씨는 “선장이 재차 힐링을 지시했지만 배는 오히려 더 기울고 있었다”고 말했다.

세월호가 구조요청을 하기 전 이미 승객들이 먼저 구조신고를 했다는 점도 당시 상황이 급박했음을 반증하고 있다.

전남소방본부로 첫 사고 신고가 들어온 것은 오전 8시 52분. 세월호가 VTS에 최초로 사고 상황을 알린 것은 오전 8시55분보다 3분 전이다. 배 앞에서 울린 ‘쾅’ 소리에 놀란 단원고 학생이 아버지에게 전화를 했고, 아버지가 곧바로 신고를 한 것이다. 배는 사고신고가 접수된지 채 5분도 안돼 왼쪽으로 완전히 기울었다.

목포해양경찰서 상황실에 정식 신고가 접수된 것은 오전 8시 58분이다. 해경은 전속력으로 달려 30분 만에 현장에 도착했다고 밝혔지만 이미 배의 3분의 2가량이 물속에 잠긴 뒤였다. 더구나 해난구조대를 비롯한 잠수 전문요원들도 필요한 장비가 도착하지 않아 선박 내부로 진입하지 못했다.

세월호 사고 현장에 구조헬리콥터가 출동한 건 오전 9시 40분경이다. 목포해경 상황실에 신고가 접수된 지 42분이나 지나서였다. 황금 같은 초기 구조시간을 그대로 흘려보낸 것이다.

▲17일 오후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서 침몰한 여객선 세월호의 실종자 가족이 “실종된 학생이 보낸 내용”이라며 휴대전화를 보여주고 있다. 주변의 실종자 가족들이 오열하는 등 크게 동요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골든타임 30분’ 놓쳐…뒷북 대응 논란

선박사고 시 대응 매뉴얼 역시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

‘세월호 운항관리규정’에 따르면 비상 상황발생시 선장은 선내에서 총지휘를 맡아야 한다. 1항사는 현장지휘, 2항사는 응급처치와 구명뗏목 작동, 3항사는 선장을 보좌해 기록·통신 업무를 담당해야 한다. 하지만 이들은 승객을 내버려 둔 채 먼저 탈출하기에만 급급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배가 상당히 기운 위급상황에서 승객들에게 그대로 대기하라고 안내방송을 한 것으로 확인돼 충격을 주고 있다.

제주 VTS는 신고접수 5분이 지난 뒤 “인명들(사람들) 구명조끼 착용하시고 퇴선할지 모르니 준비해주세요”라고 세월호에 알렸다.

하지만 그 직후 이 선장은 승객들에게 구명조끼를 입고 기다릴 것을 주문하는 안내방송을 여러차례 내보냈다. 구조된 승객들은 “이미 배가 기울어져 균형조차 잡기 힘든 상황에서 5~6차례 ‘그대로 있으라’는 안내방송을 들었다”고 전했다.

세월호 보조기관사 박모씨는 언론 인터뷰에서 “(사고가 최초 신고된 오전 8시58분보다 이른) 8시50분께 기관장이 ‘빨리 기관실을 탈출하라’고 해 3명이 탈출했다“고 말했다.

조타수 오씨는 “배가 기울어 바로 조타실로 뛰어갔을 때 선장은 문에 기대어 대기하라는 방송을 여러 번 했다. 그 직후 해경 구조선이 와서 함께 나갔다”고 말했다.

해경과 생존자들의 증언을 종합해보면, 어린 학생들이 안내방송을 믿고 그 자리에서 대기하다 탈출 시기를 놓친 것으로 보인다. 승객들에게 ‘그대로 대기하라’ 해놓고 선장은 비롯한 일부 승무원들은 배를 버리고 탈출한 것이다.
   
해경 관계자는 “선장 이씨가 위급 상황에서 마지막까지 승객의 안전을 지켜야 하는 선원법을 위반한 것으로 보고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전남 진도군 조도면 병풍도 북쪽 20km 해상에서 침몰한 세월호에서 구조된 탑승객을 이송하기 위해 구급차가 대기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3등 항해사가 운항…선장은 승객 버리고 탈출

침몰원인이 ‘급격한 변침(變針·배의 항로를 바꿈)’일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면서 ‘안전불감증’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사고가 발생한 곳은 ‘맹골수도’ 해역으로 조류가 빠르기로 유명하다. 이순신 장군이 명량대첩을 승리로 이끈 전남 해남과 진도 사이 울돌목 다음으로 조류가 세다. 따라서 자동운항이 아닌 수동운항 상태에서 지그재그로 배를 움직여야 하는 고난이도 항해를 해야 한다.

하지만 세월호 침몰 당시 조타실을 맡았던 항해사는 경력 1년이 조금 넘은 3등 항해사 박모(26)씨였다. 세월호에 투입된 지는 채 5개월이 안 된 것으로 알려졌다. 세월호가 한 달에 8차례 제주와 인천을 왕복하는 것을 고려하면, 박 항해사의 세월호 운항 경험은 40회 남짓하다. 3명의 항해사가 3교대 근무한다고 가정하면, 박 항해사가 물살이 센 사고 해역을 경험해 봤을 확률은 확 줄어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장은 당시 3등 항해사에게 조타 지휘를 맡긴 채 자리를 비운 것으로 알려졌다. 침몰 사고를 수사 중인 검·경 합동수사본부(본부장 이성윤 목포지청장)는 18일 중간 수사결과 브리핑에서 “세월호 선장이 조타실에서 자리를 비웠다는 정황이 있어 수사 중”이라고 말했다.

출항 전 점검 시스템도 엉망이었다. 세월호의 점검에 소요된 시간이 불과 13분에 그쳤으며, 청해진해운(세월호 선주사)의 선원연수비로 쓰인 1년 예산이 고작 54만원에 그쳤다는 언론보도도 잇따르고 있다.

▲17일 오전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한 전남 진도군 조도면 병풍도 북쪽 3km 앞 사고 해상에서 실종자 가족들이 해군과 해경의 수색작업을 지켜보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정부, 변명만 늘어놔” 비난 봇물 

한편 사고 수습과정에서는 총체적인 위기관리 부실이 드러났다.

사고 수습을 책임져야 할 정부는 사고 당일 오전 내내 ‘승객 대부분이 구조됐다’고 낙관하는 등 상황을 오판했다. 사고 초기 정확한 상황이 청와대에 전달되지 않는 바람에 대통령이 좀더 적극적인 대응을 주문하지 못했다. 정부는 배가 완전히 전복된 뒤에야 구조선박과 헬기 등 구조장비를 2배로 늘렸다.

여기다 하루에도 몇 번씩 승선인원과 구조인원, 실종자 수 등이 바뀌었으며, 현장상황 파악이 부처마다 제각각이었다. 해양경찰청을 관할하고 있는 해수부와 재난관리 주무 부서인 안행부의 임무와 역할이 정리가 안 돼 혼선을 빚었다.

심지어 실종자 가족들은 17일 “정부가 민간 잠수부 투입을 막고 있다”고 주장했다. 뉴스타파가 보도한 현장 영상에는 구조작업의 지연에 항의하는 가족들의 모습이 여과없이 드러났다.

영상 속 한 실종자 학부모는 “방해하지 마라. 그 사람들(민간 잠수부)이 들어가겠다는데 당신들이 말리고 있다”며 정부관계자에게 거세게 항의했다. 또다른 가족은 “해경이 구조한 명단을 달라고 해도 취합한다며 주지 않는다”고 하소연했다. 또 한 가족은 “우리 집사람이 승선을 했는데 실종자에도 없고 구조자 명단에도 없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세월호 운행 항로. (그래픽=연합뉴스)

결국 박근혜 대통령이 17일 오후 직접 실종자 가족들을 만나 해경의 일일브리핑을 약속하는 상황까지 빚어졌다. 

한마디로 사고발생에서 수습에 이르기까지 국가재난관리체계가 총체적으로 침몰한 것으로 보인다.

트위터 등 SNS상에서는 정부의 부실한 대응체계를 비난하는 누리꾼들의 목소리가 봇물을 이루고 있다.

실종자 가족들은 18일 오전 대책본부가 있는 진도군 실내체육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우리의 아이들이 차가운 물 속에서 살려달라고 소리치고 있을 것”이라며 “생명의 위협을 받는 상황에서도 정부와 해경은 변명으로 얼버무리고만 있다. 너무 분해 국민들께 눈물을 머금고 호소하려 한다”며 대국민 호소문을 발표했다.

한편 세월호 침몰 사고를 수사 중인 검·경합동수사본부는 18일 0시경 청해진해운 압수수색을 실시하는 등 사고원인 규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세월호 침몰 원인, 세월호가 권고 항로와 다른 항로를 선택한 이유 등에 대한 수사가 본격화할 방침이다. 또 선박운행통제본부 초기대응의 적절성 여부, 세월호 선장 등의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 등에 대해서도 수사 중이다.

(CNB=도기천 기자)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