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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구본무 회장 취임 20년…몸집 5배, '1등 LG' 는 진행중

[심층취재] 매출 130조, 시가총액 67조, 해외매출 국내 2배…LG-Life에 집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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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정의식기자 |  2015.02.26 14:10:16

▲소탈한 성격의 실무형 CEO 구본무 회장(사진: LG 구본무 회장 홈페이지)

20년전인 1995년 LG그룹은 3대 경영자 구본무 회장의 취임과 함께 이전의 ‘럭키금성’이라는 사명을 과감히 버리고 ‘LG’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이후 20년 간 LG그룹은 GS, LS, LIG, LF 등 여러 방계 그룹을 분리시키면서도 매출 5배, 시가총액 10배라는 놀라운 성장을 일궈냈다. 취항 20년을 맞은 구본무號의 항적을 되짚어봤다. (CNB=정의식 기자)

20년전 사명 ‘LG’ 변경 후 3대 회장 취임
방계그룹 계열 분리하고도 몸집 5배 키워
‘사람’에 집중투자…‘시장선도’로 ‘1등 LG’ 추구

▲1995년 2월 22일 LG그룹 제 3대 회장 취임식 장면(사진: LG 구본무 회장 홈페이지)

1995년 2월 22일은 LG그룹의 특별한 날이다. LG그룹의 3세 총수로 여전히 LG그룹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구본무(70세) 현 LG그룹 회장이 취임한 날이기 때문이다.

당시 LG를 이끌고 있던 2대 구자경 회장(현 명예회장)은 이날 오전 긴급 사장단 회의를 소집해 전격적으로 퇴임 의사를 밝혔고, 같은 날 오후 구본무 현 회장이 “LG그룹을 초우량 기업으로 키우겠다”는 포부를 밝히며 3대 회장에 취임했다.

그렇게 출범한 구본무호가 올해로 20주년을 맞았다. 20년간 세상이 변한 것 이상으로 LG그룹도 많이 달라졌다.

먼저, 매출 규모가 달라졌다. 1994년 당시 30조원이던 매출은 2014년 5배 가량 늘어난 140조원을 기록했다. 국내 매출과 해외 매출의 비율이 2:1 정도였던 것이 반전되어 현재는 해외매출이 국내 매출의 2배가 됐다. 시가총액도 7조원에서 67조원으로 10배 가량 늘었다.

게다가 20년전의 LG그룹에는 현재는 분리된 GS, LS, LIG그룹, LF(舊 LG패션) 등도 모두 포함되어 있었다. 범LG家 방계그룹 계열사들이 모두 분리되고 전자와 화학, 통신 분야 기업들만 남았음에도 이같은 규모의 성장을 일구어냈다는 것은 누가 봐도 놀라운 성과다.

2015년 현재 LG그룹은 평판 디스플레이, 2차전지, 고부가 합성수지 등 여러 분야에서 세계 1위를 유지하고 있다. 스마트폰 시장에서는 선두인 애플, 삼성전자에 크게 못미치는 3위지만 선전하고 있다는 평가다.

▲2011년 5월 LG인화원에서 열린 LG 혁신 한마당에서 구본무 회장이 임직원들과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다(사진: LG 구본무 회장 홈페이지)

현장실무형 CEO…평사원과 격없이 만나

‘재벌가 3세 회장’이라는 선입견은 구 회장의 진면목을 흐리게 하는 경향이 있다. 사실 구 회장은 ‘현장에서 성장한 실무형 경영자’다.

다른 재벌가 2‧3세 경영자들이 20대부터 임원을 달고 경영에 참여하는 것과 달리 구 회장은 1975년 럭키(현 LG화학)의 과장으로 입사해 심사과장·수출관리부장·유지총괄본부장 등을 맡으며 기업의 실무를 낱낱이 익혔다.

1981년이 돼서야 구 회장은 금성사(현 LG전자)의 이사로 승진하며 경영을 배웠고, 입사 15년째인 1989년 그룹 부회장을 맡고 나서야 그룹 경영에 본격적으로 참여했다. 이후 5년이 지난 1995년에야 그룹 회장에 취임했다. 그룹 총수가 되기까지 20년이 걸린 셈이다.

글로벌 감각이 뛰어난 것으로도 유명하다. 세계화 시대에 대비해 그룹명을 ‘럭키금성’에서 ‘LG’로 바꾸는 작업을 성공리에 이끌었으며, 이후로도 회사 중역들을 GE나 모토로라 등 해외 다국적 기업에 파견해 선진 경영기법을 배워오도록 했다.

성격은 권위적이지 않고 소탈하다는 평이다. 임직원들을 비롯한 다양한 젊은 인재들과 언제어디서나 ‘소통’을 즐기는 것도 그런 성격 덕분이다.

LG그룹 관계자는 CNB와 통화에서 “모든 임직원의 아이디어 하나하나가 다 소중하다며 귀기울여 경청하고, 이를 시도하려 노력하는 모습이 대다수 임직원들에게 각인돼있다”고 설명했다.

‘오픈 이노베이션(Open Innovaton)’이라 하여 개발단계에만 창조적 생각을 갖는게 아니라 모든 임직원이 사소한 것부터 제안하자며 만들어낸 것이 지난 2013년 10월 오픈한 LG그룹의 시장선도포탈 ‘LG-Life’다.

일각에서는 구 회장을 ‘백조형 경영자’로 설명한다. 물위에서 우아하게 유영을 즐기는 것처럼 보이지만, 물속에서는 발을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는 의미다.

뭐니뭐니해도 업계가 인정하는 구 회장의 강점은 새로운 주력사업을 찾아낼 줄 아는 ‘미래예측 능력’과 ‘과감한 결단력’, 그리고 ‘뚝심’이다.

▲2000년 9월 LG필립스LCD 구미공장을 방문해 LCD 사업현황을 점검하고 있는 구본무 회장(사진: LG 구본무 회장 홈페이지)

‘반도체 빅딜 위기’ 되레 기회로

그룹 창립 50주년이 되던 1997년 구 회장은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2차전지 사업을 미래 성장사업으로 꼽고 60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계획이 순탄케 추진되지는 못했다. 1997년 외환 위기가 대한민국을 휩쓸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김대중 정부의 ‘반도체 빅딜’ 정책이 LG를 압박했다. 야심차게 추진하던 반도체 사업을 현대그룹에 넘겨줘야 할 상황이 됐다.

이때 구 회장은 반도체 사업을 포기하면서도 LCD 사업부문을 분리해 별도 회사 ‘LG LCD’를 설립하는 강수를 뒀다. 이후 1999년 5월 LG는 필립스로부터 16억 달러의 투자를 유치하고, 3개월 후엔 합작법인 LG필립스LCD를 출범시켰다. 2008년 단독법인인 LG디스플레이로 독립한 이 회사는 현재 LCD 패널 분야에서 세계 1위 기업으로 성장했고, 연간 약 25조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위기 속에서도 활로를 찾는 구 회장의 선견지명이 빛났던 사례는 또 있다.

구 회장은 1992년부터 ‘2차전지’의 발전가능성에 주목해 계열사인 럭키금속에 연구를 독려했다. 1996년 럭키금속의 전지 연구조직을 LG화학으로 옮겨 투자를 지속했지만 성과가 없었다. 이에 포기하자는 사내 여론이 높았지만 구 회장은 포기를 몰랐다.

십년 넘게 투자를 아끼지 않았던 2차전지 사업은 전기차 시대가 열리면서 그룹의 새로운 ‘캐시카우’가 됐다. LG화학은 현재 중대형 2차전지 분야에서 세계 1위로 현대차·GM·포드·상하이자동차·아우디 등 20여 글로벌 완성차 업체에 전기차 배터리를 공급하고 있다.

▲2010년 5월 서초구 양재동 LG전자 디자인경영센터에서 열린 디자인경영간담회에서 구본무 회장이 LG전자의 3D TV 디자인을 살펴보고 있다(사진: LG 구본무 회장 홈페이지)

투명한 지배구조…깔끔한 마무리

그룹 내부적으로도 위기는 있었다. 구씨 일가와 LG그룹을 공유하며 수십년간 우의를 나눴던 허씨 일가와의 분리를 잡음없이 마무리하는 과제가 제기됐고, 다른 범LG家의 방계 기업들을 정리하는 일도 난제였다. 이 모든 과정을 구 회장은 ‘조용한 경청의 리더십’으로 우아하게 처리해냈다.

먼저, 구 회장은 국내 대기업 중에서 가장 먼저 지주회사로의 체제 전환을 시도, 지배구도의 선진화에 성공했다. “문어발식 순환출자 지배구조로는 글로벌 시장에서 살아남기 어렵다”는 구 회장의 지론 덕분에 LG그룹은 타 기업들과 달리 오너 리스크, 지배구조 리스크가 최소화된 기업이 됐다.

이에 앞선 1999년 LG화재(현 LIG손해보험)가 그룹에서 독립했고, 2003년에는 LS그룹이 분리됐다. 2005년에는 오랜 동업관계를 이어온 허씨 일가가 GS그룹을 만들어 독립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알짜 기업들이 LG의 품을 떠났음에도 오히려 성장했다.

계열 분리 이후 LG는 전자와 화학, 통신을 중심으로 새롭게 도약했다. 지주회사 ‘LG’가 중심에 자리잡고, LG전자와 LG화학, LG유플러스가 핵심 기업이 됐다. LG디스플레이, LG이노텍 등이 부품 분야의 강자가 됐고, 화학 분야에서는 LG생활건강과 LG하우시스, LG생명과학 등이, 통신 부문에서는 LG CNS, LG엔시스 등이 주력 기업들을 보조하는 구조다.

이렇듯 구 회장은 LG의 지배구조 개편과 계열 분리를 성공적으로 마침으로써 새로운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확고한 토대를 마련했다.

▲“원대한 꿈 품고 치열하게 도전하라” 2011년 6월 구본무 LG 회장이 29일 여의도 LG트윈타워 대강당에서 개최된 국내 최초∙최장수 대학생 해외탐방 프로그램 ‘LG글로벌챌린저’ 발대식에 참석해 대학생들에게 이같이 강조했다(사진: LG 구본무 회장 홈페이지)

그룹 앞날 ‘사람’에 방점

구 회장은 LG의 미래를 위해 새로운 아이템을 준비하고 있다. 고효율 태양광 모듈, 에너지 저장장치(ESS), 가스 및 지열 활용 냉난방시스템, 전기자동차 등이다.

이를 위해 LG는 연구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현재 LG는 서울 강서구 마곡산업단지에 4조원을 투자해 국내 최대 규모의 융복합 연구단지인 ‘LG사이언스파크’를 2020년 완공을 목표로 건설 중이다.

충청북도에 총 1조6000억원을 투자해 뷰티·바이오·에너지산업의 메카로 집중 육성한다는 계획도 내놨다. LG생활건강·LG생명과학·LG화학 등 계열사의 특허 2만7000여 건을 공개해 중소기업과 함께 성장한다는 계획이다.

이렇게 10년을 내다보며 인재와 연구개발에 투자하는 구 회장의 경영방침은 ‘LG Way’로 정리된다. 구 회장이 지주회사체제 구축과 계열분리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후 선포한 ‘LG Way’는 LG의 경영이념인 ‘고객을 위한 가치창조’와 ‘인간존중의 경영’을 LG의 행동방식인 ‘정도경영’으로 실천함으로써 궁극적인 지향점인 ‘1등 LG’를 달성하자는 것이다.

▲2013년 LG테크노콘퍼런스에 참가해 젊은 임직원들과 담소를 나누고 있는 구본무 회장(사진: LG 구본무 회장 홈페이지)

‘1등 LG’ 여전한 숙원…‘시장선도’로 푼다

출범 20년을 맞은 구본무號는 지난달 15일 ‘LG브랜드 출범과 구본무 회장 취임 20주년’을 기념해 조촐한 만찬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구 회장은 “LG는 그 동안 여러 위기를 극복해오며 시장을 선도하는데 한 걸음씩 다가설 수 있었다”며 자신감을 드러냈지만, “LG브랜드가 더 나은 고객의 삶을 위한 혁신의 상징이자 진정한 ‘1등 LG’로 성장하여 영속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자”며 ‘1등 LG’를 다시금 강조했다.

사실 구 회장은 취임 일성부터 ‘초우량 LG’를 목표로 내걸었다. 이후 신년사 때마다 ‘1등 LG’를 언급했다. ‘LG Way’의 목표도 ‘1등 LG’다. 고객에게 신뢰받고 경쟁사와 투자사, 인재들 모두가 인정하는 회사가 되는 것이 ‘1등 LG’다.

과연 LG는 ‘1등 LG’를 이룰 수 있을까? LG화학, LG디스플레이 등은 2차전지, 태양광, 디스플레이 등의 분야에서 업계 1위를 구가하고 있지만, 다른 분야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스마트폰 시장에서 LG전자는 삼성전자에 밀려 ‘만년 국내 2위‧해외 3위’를 면치 못하고 있다. 최근에는 화웨이, 레노보 등 중국 기업들의 급성장으로 글로벌 3위 수성도 어려워졌다. 통신 시장에서 LG유플러스는 2위 KT를 위협하고 있지만 아직 ‘3위’를 벗어나지는 못했다. LG화학 역시 최근 삼성-한화의 빅딜로 인해 1위 자리를 내줘야 할지도 모른다는 진단이 제기되고 있다.

이같은 우려에 대해 LG그룹 측은 “카메라 부품, 소형 디스플레이, 중대형 디스플레이 분야, 전기차 배터리, ESS 등 이미 세계 1위인 분야들이 많이 있고, 이를 더 늘려가자는 것은 임직원들의 공통된 열망이다. 하지만 단순히 눈에 띄는 경쟁에서 이기는 것에만 집착하는 것은 아니며, 특히 요즘 들어 구 회장이 강조하는 것은 ‘시장선도’”라고 설명했다.

‘시장선도’는 미래 성장산업을 차근차근 준비하면 ‘1등 LG’는 자연스레 따라온다는 개념이다. ‘OLED TV’가 그 대표적 사례로, LG는 지난 2013년 OLED TV를 세계 최초 출시한데 이어 꾸준히 가격경쟁력을 높였다. “올해를 ‘OLED TV 대중화 원년으로 삼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일각에서는 2대 구자경 회장이 70세에 당시 50세였던 구본무 회장에게 대권을 물려준 것처럼 올해 70세가 되는 구 회장도 조만간 경영일선에서 물러날 것이라며 후계체제가 머지않았다고 예측한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정력적으로 직원들과 소통을 이어가고 있고, 미래의 LG를 이끌어갈 젊은 인재들을 모으기에 여념이 없다. 그의 항해는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CNB=정의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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