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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십자 vs 일동제약 경영권분쟁 ‘1:1동점’…다음 승부는?

[심층취재] 캐스팅보트 ‘피델리티’, 누구 손 들어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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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도기천기자 |  2015.03.24 09:33:57

▲서울 양재동 일동제약 사옥(왼쪽)과 경기도 용인의 녹십자 목암타운 전경. 사진제공=일동제약,녹십자

일동제약의 2대주주인 녹십자가 주식을 대량 매입하면서 시작된 일동과 녹십자 간의 경영권 분쟁이 정점으로 치닫고 있다. 지난주 주주총회에서 녹십자가 추천한 인사들의 일동제약 이사회 진입이 불발에 그쳤지만, 녹십자의 공세 앞에 일동은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녹십자는 왜 끊임없이 일동의 경영권을 넘보는 걸까? CNB가 1년 넘게 계속돼 온 양측의 갈등을 들여다봤다. (CNB=도기천 기자)  

녹십자, 일동제약 이사회 진입 불발
윤원영 회장, 경영권 방어에 ‘비상등’
제약시장 재편기 양측 갈등 점입가경  
3대주주 피델리티, 양측서 ‘꽃놀이패’

일동제약은 지난 20일 서울 양재동 본사에서 정기 주주총회를 열어 2대 주주(지분율 29.36%)인 녹십자가 주주제안을 통해 추천한 사외이사 후보 허재회 전 녹십자 사장과 감사 후보 김찬섭 녹십자셀 사외이사에 대한 선임안을 부결시켰다.

일동제약은 사내이사에 이정치 일동제약 대표이사 회장을 재선임하고, 사외이사에 서창록 고려대 교수, 감사에 이상윤 전 오리온 감사를 각각 선임했다. 모두 일동제약 사람들이다.

이로써 표면적으로는 일동이 완승을 거뒀다. 하지만 이번 주총을 통해 한동안 잠잠했던 녹십자가 적대적 태도를 드러낸 터라 일동은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녹십자는 “이번 의결 결과는 주주 다수의 의견이므로 겸허히 수용한다”면서도 “앞으로도 녹십자는 일동제약의 2대 주주로서 경영 건전성 극대화를 위한 권리 행사에 지속적으로 매진할 것”이라고 밝혀 향후에도 경영에 관여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분쟁 15개월째…잊을만하면 또

일동과 녹십자 간의 분쟁은 지난해 1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녹십자는 일동제약 지분 14%를 추가로 장외매수해 지분율 29.36%로 올라섰다. 최대주주인 윤원영 일동제약 회장 측(34.16%)과의 지분율 차이는 4.8%에 불과했다.

녹십자는 당시 지분을 대량매입하면서 일동제약 ‘경영참여’를 선언했다. 지분 보유 목적을 ‘단순투자’에서 ‘영향력 행사’로 변경한 것. 녹십자는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에 의거, 회사의 업무집행과 관련한 사항이 발생할 경우 영향력을 행사할 예정”이라고 공시했다. 사실상 경영에 참여하겠다는 선전포고였다.

녹십자의 이같은 태도는 일동제약의 지주사 전환을 막기 위해서였다. 당시 일동은 임시주총을 통해 존속회사인 지주사 일동홀딩스와 신설회사 일동제약으로 분할할 예정이었다.

지주사로 전환하면 일동제약의 자사주가 일동홀딩스에 귀속돼 일동제약의 최대주주 지분율이 크게 늘어나면서 경영권이 강화되는 효과가 있다. 또 정부가 재벌기업들의 신규순환출자를 금지하면서 경영투명성 확보를 위해 지주사 설립을 권유하고 있는 것도 명분이 됐다.

하지만 임시주총에서 지주사 전환을 위한 분할계획 승인안을 표결에 붙인 결과, 찬성 54.6%, 반대 45.4%로, 가결요건인 출석 주식수 3분의 2 찬성에 못 미쳐 부결됐다. 녹십자홀딩스·녹십자셀 등 계열사를 통해 일동제약 지분 29.36%를 소유하고 있는 녹십자가 반대표를 던졌고, 피델리티 펀드를 비롯한 외국인 투자자들도 반대의사를 나타냈다.

그러자 일동제약은 녹십자에게 “명분 없는 적대적 행위를 중단하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녹십자는 “적대적 인수합병(M&A) 시도가 아닌 주주권리 행사”라는 입장을 거듭 밝혔다.

한동안 잠잠했던 양측의 갈등은 지난달 6일 녹십자가 일동제약에 “임기가 끝나는 일동제약 이사진 3명 중 2명을 추천 하겠다”는 내용이 담긴 주주제안서를 발송하면서 다시 점화됐다.

주주제안은 1% 이상의 지분율을 가진 주주가 주주총회 안건을 제출할 수 있는 권리다. 녹십자는 관련법에 명시된 권리 행사일 뿐이라는 입장이었지만, 일동 측은 적대적 M&A 의도로 규정하며 발끈했다.

일동은 녹십자의 주주제안이 있은 3일 뒤 “녹십자의 예고 없는 주주제안권 행사 등 일련의 권리행사는 적대적 M&A로 해석되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적대적인 M&A가 아니라는 보다 구체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입장과 조치를 요구한다”며 녹십자 측에 공문을 보냈다. 

녹십자는 며칠 뒤 일동제약에 “주주제안에 대해 적극적으로 검토하길 바란다”는 내용의 답변서를 보냈다. M&A에 관한 입장을 밝히라는 일동의 요구에 응하지 않고 원론적인 말만 되풀이한 것이다.

그러자 일동은 다시 보도자료를 내고 “녹십자 측 인사의 이사회 진입을 강력히 저지한다”고 밝혔다. 결국 양측은 주총에서 표 대결을 벌였고 주주들은 일동의 손을 들어줬다.

▲윤원영 일동제약 회장(왼쪽)·허일섭 녹십자 회장 (사진=CNB포토뱅크)

불씨 여전, 피델리티 속내는?

하지만 불씨는 여전히 남아있다. 이사 선임은 불발됐지만 녹십자는 주주로서의 권리 행사를 이어간다는 입장이어서 경영권을 둘러싼 갈등이 재현될 가능성이 높다.  

이런 가운데 캐스팅보트로 부상한 외국계 큰 손 ‘피델리티 매니지먼트 앤 리서치 컴퍼니(FIDELITY MANAGEMENT&RESEARCH COMPANY)’가 주목받고 있다.  미국 자산운용사인 피델리티는 전세계 우량기업을 상대로 채권, 주식에 투자하고 있는 글로벌 펀드운용사다.

피델리티는 일동제약의 3대주주로 10.00%지분을 갖고 있다. 윤원영 일동제약 회장 일가 및 계열사인 씨엠제이씨(8.34%), 일동후디스(1.36%)의 지분율을 합치면 32.52%로 녹십자(29.36%)와 3.16%포인트 차이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소액주주들이다. 따라서 피델리티가 어느 쪽을 택하느냐에 따라 판도가 뒤바뀔 수 있다.

피델리티는 이번 주총에서 일동제약의 손을 들어줬다. 피델리티는 예탁결제원 의결권 위임을 통해 일동제약 추천 인사에 100% 찬성을, 녹십자 추천 인사에 100% 반대 의견을 나타냈다.

하지만 피델리티가 일동의 편에 섰다고 단정 짓기는 이르다. 지난해 임시주총 때는 일동의 지주사 설립에 반대하며 녹십자와 한목소리를 냈기 때문이다.

당시 증권가에서는 일동제약 3대주주였던 ‘슈퍼개미’ 이모씨가 12.57%지분 전량을 기습적으로 녹십자에 매각한 지 14일만에 이씨를 대신해 3대주주에 올라섰던 피델리티마저 녹십자의 손을 들어주자 이들 간에 치밀한 사전교감이 있었을 것이라는 얘기가 돌았다.

이들의 행보는 시장에서 ‘녹십자가 일동제약을 적대적 M&A 할 것’이라는 추측을 낳았고 일동제약 주가는 60% 넘게 급등했다.

앞뒤 상황으로 보면, 당시 피델리티는 일동제약보다 규모가 큰 녹십자가 경영에 참여하는 게 주가 차익을 얻기가 낫다고 판단한 것으로 짐작된다.

제약업계 한 관계자는 “한때 녹십자 편에 섰던 피델리티가 이번 주총에서 일동제약에 찬성표를 던진 것은 외국기업의 M&A, 먹튀 논란 등을 의식한 것으로 짐작된다”며 “설령 이사와 감사가 녹십자가 추천한 사람으로 선임되더라도 전체 이사회 구성에서 압도적으로 (녹십자가) 밀리는 상황이라 편을 들기에는 부담을 느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일동제약 관계자는 CNB에 “지난해 임시주총 때 피델리티가 녹십자와 손을 잡은 게 아니라 스스로 판단해 의결권을 행사한 것이며, 이번에도 그리한 것”이라고 전했다.
 
따라서 현재로서는 피델리티가 향후 어떤 선택을 내릴지 예견하기 쉽지 않다. 주가 추이를 살피면서 양측 사이에서 줄타기를 할 것으로 보인다. 
 

▲일동제약과 녹십자 간의 경영권 다툼에서 캐스팅보트로 부상한 외국계 큰 손 ‘피델리티 매니지먼트 앤 리서치 컴퍼니’로고.

녹십자 “주주권 행사, 인수합병 무관”

한편 녹십자가 비난여론에도 불구하고 일동제약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 것은 최근 급변하고 있는 의료시장 재편과 무관치 않다.

국내 제약업계 매출 2위인 녹십자는 백신·혈액제제 등 대형병원과 연계된 전문의약품 분야에서 독점적 지위를 보유하고 있지만 일반의약품 분야의 경쟁력은 약한 편이다. 반면 일동제약은 ‘아로나민골드’ 등 일반약과 다수의 제네릭을 갖고 있다.

녹십자의 주장처럼 적대적 M&A는 아니라하더라도, 양사가 시너지를 통해 시장을 넓혀나갈 가능성은 충분히 있어 보인다. 녹십자의 일동제약 경영참여설이 나올 때마다 주가가 출렁이고 있는 것도 녹십자가 일동제약과 손을 잡을 경우 단숨에 매출 1조원을 넘는 업계 1위 제약사로 부상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추진 중인 보건의료서비스 분야의 유연성 확대도 녹십자에게는 구미가 당기는 부분이다. 정부는 지난해부터 대형의료법인이 기업 등으로부터 재무적 투자를 받아 자회사를 세워 영리사업을 할 수 있도록 했다.

녹십자의 경우, 의료법인 소속 자회사들과 손잡고 사업영역을 확대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은 셈이다. 의료법인 자회사가 바이오산업, 의료기기 및 의약품 개발, 화장품·건강보조식품 개발 등 ‘의료를 매개로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사업’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제약업계에 미칠 영향도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녹십자 관계자는 CNB와의 통화에서 “지분매입과 경영참여 시도는 양사가 시너지 효과를 내기 위한 것으로 인수합병과는 무관하다”며 “적대적M&A 시도라는 일동제약의 주장은 터무니없으며, 굳이 이에 대해 언급할 필요가 없어서 해명하지 않은 것”이라고 밝혔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의료 전 분야에 걸쳐 민영화를 시도하고 있는 만큼 제약업계에도 지각변동이 불가피하다”며 “녹십자가 일동제약의 경영에 관여하려는 것은 경영권 분쟁이라기보다는 의료시장 개방에 대비한 사업확대 전략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CNB=도기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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