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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텔링] 美 팰리세이즈 절벽 아래로 추락한 LG전자

현지 환경단체 의견 수용…건물 높이 절반 줄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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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정의식기자 |  2015.07.01 11:19:33

▲23일 LG전자가 본사 건물 높이를 낮추기로 했다고 뉴욕타임즈가 보도했다(사진: 뉴욕타임즈)

지난 6월 23일 미국 언론 뉴욕타임즈에는 인상적인 기사가 실렸다.

“한국 기업 LG가 팰리세이즈(Palisades) 파크의 풍광을 보호하기 위해 LG전자 미주본사 신사옥의 높이를 낮추기로 5개의 환경보호단체와 합의했다”는 내용이었다.

▲원래의 LG사옥이 건설되었을 경우의 렌더링 이미지(사진: 뉴욕타임즈)

허드슨강 건너편에서 팰리세이즈 절벽을 바라볼 때 사진처럼 위로 툭 튀어나올 예정이었던 LG사옥이…

▲새로운 건설 계획에 따라 수정된 렌더링 이미지(사진: 뉴욕타임즈)

이렇게 절벽의 수목들에 가려져 조화되는 수준으로 낮아졌다는 것.

▲LG전자 기자회견에서 환경단체 ‘시닉 허드슨(Scenic Hudson)’ 대표 네드 설리번이 합의안을 발표하고 있다. 왼쪽은 LG전자 조주완 미국법인장.(사진: 시닉 허드슨)

당일 LG전자 미주본사는 환경단체들과 합동 기자회견을 열고, 신사옥 높이를 원래 계획했던 8층 143피트(약 44.3미터)에서 5층 70피트(약 21.7미터)로 낮추기로 했다는 합의안을 발표했다.

▲환경 변호사 로렌스 록펠러(왼쪽)와 ‘시닉 허드슨’ 대표 네드 설리번(오른쪽)(사진: 시닉 허드슨)

과거 팰리세이즈 보호에 앞장섰던 금융재벌 록펠러가문의 후손으로 그간 LG에 ‘건물 고도 하향 조정’을 권고해온 환경 전문 변호사 로렌스 록펠러는 이날 “LG가 국가적 보물을 보호하는 용단을 내렸다”고 찬사를 보냈다.

▲‘프로텍트 더 팰리세이즈’ 홈페이지(사진: 인터넷)

당일 팰리세이즈 보호를 위한 환경운동단체 ‘프로텍트 더 팰리세이즈’ 홈페이지는 “협상단과 LG가 ‘윈-윈(Win-Win) 화해’에 도달했다”는 공지와 함께 과거의 활동 내역을 깡그리 말소시켰다.

환경단체들은 원래의 고도제한 규정이던 35피트(약 10.85미터)가 적용되길 원했고, LG는 143피트를 원했는데, 둘다 양보해서 70피트선에서 타협을 봤으니 윈-윈이라는 것.

LG는 원래 계획보다 2배 줄이고, 환경단체측은 원래 요구안보다 2배 늘려줬으니, 얼핏 보면 양자가 대승적 타협을 본 것처럼 보인다.

모두가 즐거운 해피엔딩인 셈이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LG전자의 초반 건물 디자인. 8층 건물이 주변보다 확연히 높다.(사진: LG전자)

애초에 이번 논란은 LG가 잘못된 위치에 잘못된 높이의 건물을 지으려는 데서 시작됐다.

원래 LG전자 미주본사는 뉴욕의 서쪽에 위치한 뉴저지주 잉글우드 클리프에 8층 건물이 포함된 2개 동(총 높이 143피트·약 44.3미터)을 신축한다는 계획이었다.

2010년 27에이커 상당의 해당 부지를 매입한 후, 2011년 11월 잉글우드 클리프 타운당국에 신축과 관련한 용도변경 허가를 받았다.

LG전자는 2016년 완공을 목표로 총 3억달러를 투자할 예정이었으나, 공사의 첫 삽을 뜨기도 전에 현지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혔다.

이 건물이 ‘팰리세이즈 절벽(Palisades Horizon)’이라는 독특한 풍광을 해칠 우려가 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허드슨강 건너편에서 바라본 팰리세이즈 절벽(사진: 프로텍트 더 팰리세이즈)

팰리세이즈 절벽은 미국 동부 뉴저지주와 뉴욕주 사이에 흐르는 허드슨강 하류에 위치한 절벽으로 이 지역의 대표적인 랜드마크다.

무려 2억년간 보존되어온 이 절벽은 공룡이 탄생하기도 전에 만들어졌고, 공룡이 멸종하고, 인류가 나타난 현재까지 꾸준히 이 자리를 지켜왔다. 무려 그랜드캐년 생성 시기 이전부터 이 절벽은 존재해왔다고 한다.

▲인근 조지워싱턴다리 위에서 바라본 팰리세이즈 절벽(사진: 프로텍트 더 팰리세이즈)

2억년간 유지되어온 풍광은 19세기 말 위기를 맞았다. 빌딩 공사에 필요한 자갈 채취를 위해 절벽을 다이너마이트로 폭파하는 일이 잦아진 것. 이에 환경단체들이 앞장서 팰리세이즈 절벽을 ‘인터스테이트 파크’로 지정하게 했고, 록펠러 재단의 존 D 록펠러는 1920년대 후반부터 1930년대까지 절벽 인근 부지를 은밀히 사들인 후 팰리세이즈 공원국에 기부했다. 이어 조지워싱턴다리 북쪽 12마일 일대의 지역에 35피트의 고도 제한을 법제화하는 로비를 펼쳤다.

수많은 주민들과 환경운동가, 부자들의 일치된 노력 덕분에 허드슨강 건너편에서 바라보는 천혜의 풍광은 보호될 수 있었다.

백년 넘게 보호되어온 절벽의 스카이라인을 망가뜨릴 우려가 있는 LG전자의 신사옥은 애초에 무리한 계획이었던 것이다.

▲현지 환경단체가 제작한 LG 신사옥 건설 이전과 이후 비교 시뮬레이션(사진: 프로텍트 더 팰리세이즈)

LG전자의 신사옥 건설 계획이 허드슨강 너머로 보이는 팰리세이즈 절벽의 경관을 깡그리 망칠 수 있다고 생각한 일부 현지 주민들과 환경단체는 즉각적인 반대 운동을 시작했다.

▲LG의 로고를 ‘EGO(자존심)’로 희화화한 플래카드를 든 반대자(사진: 프로텍트 더 팰리세이즈)

2012년 3월, 두 명의 지역 주민이 LG의 용도변경안에 반대하며 LG와 잉글우드 클리프 타운당국에 소송을 제기했다. 35피트 고도 제한이 있는 부지에 143피트 높이의 건물 신축을 승인한 것은 월권행위라는 것.

12월에는 NRDC(Natural Resources Defense Council, 천연자원방위위원회)와 오랜 환경 변호사 경력을 가진 록펠러 가문의 후손 로렌스 록펠러가 건물의 높이를 낮추기 위한 로비 활동을 시작했다. 환경운동단체와 지역주민들의 반대 운동은 록펠러 가문을 중심으로 집결했다.

▲‘Life is Good’이라는 LG의 캐치프레이즈를 ‘Life was Good Before LG(LG가 나타나기 전까지 인생은 좋았다)’로 바꾼 플래카드를 들고 있는 반대자들(사진: 프로텍트 더 팰리세이즈)

2012년 말, 이들 단체들은 팰리세이즈를 지키기 위한 개인과 조직의 연합체 ‘프로텍트 더 팰리세이즈(Protects the Palisades)’를 발족시켰다. 이 단체를 중심으로 뉴욕주와 뉴저지주에서는 LG 제품 불매 운동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R.I.P Palisades(팰리세이즈, 고이 잠들다)’ 등의 플래카드를 든 반대자들(사진: 프로텍트 더 팰리세이즈)

이듬해인 2013년 3월, 현지 법원은 LG전자 미국 본사와 지자체에게 환경보호단체 등 고소자들과 법정밖에서 합의에 도달하라고 권고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방미에 맞춰 게재된 환경단체의 반대 광고(사진: 프로텍트 더 팰리세이즈)

2013년 5월, 환경운동단체 ‘프로텍트 더 팰리세이즈’는 박근혜 대통령의 미국 방문과 때를 같이해 ‘미국의 랜드마크가 위기에 처했다’고 호소하는 광고를 내보냈다.

▲4인의 전직 뉴저지 주지사들이 구본준 LG전자 부회장에게 보낸 편지(사진: 뉴저지 조약기구)

6월 6일, 정치인들까지 반대행동에 합류했다. 브랜든 T. 번, 토마스 H. 킨, 제임스 플로리오, 크리스틴 토드 휘트먼 등 4인의 전직 뉴저지 주지사들은 구본준 LG전자 부회장에게 편지를 보냈다. “귀사의 건물은 수백만명이 즐겨온 역사적 자연경관을 즐기는데 방해가 될 뿐 아니라 더 큰 건물이 들어설 수 있는 선례가 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팰리세이즈를 망치지 마라’는 뉴욕타임즈의 사설(사진: 뉴욕타임즈)

6월 23일, 뉴욕타임즈는 ‘팰리세이즈를 망치지 말라’는 사설로 LG전자의 신사옥 건설을 비판했다. 신사옥이 맞은편인 맨해튼 북쪽에서도 뚜렷이 볼 수 있을 정도로 나무 숲을 비집고 튀어나온다며 ‘타워’라고 표현했다.

7월, LG전자는 현지 신문에 반박 광고를 게재했다. ‘당신은 진정한 사실을 알아야 한다(You Need The Real Pacts)’는 제목의 이 광고는 반대 단체들의 주장을 ‘픽션(fiction)’으로 일축했다.

8월 9일, 버겐카운티 고등법원은 잉글우드 클리프의 용도 변경 승인을 지지하는 판결을 내렸고, 11월 14일, LG전자는 신축을 위한 구획 정리 작업에 들어갔다.

▲환경운동단체 ‘프로텍트 더 팰리세이즈’의 옥외 광고(사진: 프로텍트 더 팰리세이즈)

2014년 2월, 환경운동단체 ‘프로텍트 더 팰리세이즈’는 허드슨강변에 대형 광고판을 세워 LG전자의 사옥 건설을 반대했다.

6월 5일, 뉴저지주 상원 환경위원회에서 팰리세이즈를 따라 고층건물을 짓는 것을 금지하는 법안을 추진했다. LG의 사옥이 포함됐지만, 법안 추진은 더 진행되지 않았다.

8월 31일, 잉글우드 클리프 시장 조셉 패리시 주니어의 주도로 팰리세이즈의 35피트 높이 제한이 복원되고, 기존의 용도 변경이 폐지됐다.

▲고도를 낮춰 새롭게 디자인된 LG 신사옥(사진: 시닉 허드슨)

2015년 6월 23일, 환경단체와 LG가 협의 끝에 신사옥 높이가 143피트에서 70피트로 줄이는데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이날 합의의 당사자인 5개 환경단체는 기자회견에서 “LG가 위대한 결단을 했다”며 칭송했지만, 정작 자신들의 홈페이지에서는 “역사적 승리를 거뒀다”며 자축했다.

▲LG전자 미주법인장 조주완 전무가 잉글우드 클리프 시장 조셉 패리시 주니어와 악수를 나누고 있다. 왼쪽은 환경 변호사 로렌스 록펠러(사진: 시닉 허드슨)

이상의 과정을 되짚어보면, LG전자는 무모한 계획으로 3년간 현지 주민들과 마찰만 일으키다 결국 민심에 굴복하고 만 모양새다.

물론 LG전자의 입장에서는 억울한 부분도 있다.

지난 3년간의 분쟁 기간 동안 LG전자는 지속적으로 ▲신사옥 건설계획이 적법한 절차를 통해 제안·승인되었으며, ▲높은 고용창출·경기부양 효과로 현지 경제에 도움이 될 것이고, ▲설계를 바꾸는데 너무 많은 비용이 소요될 것이라는 입장을 천명해왔다.

하지만, 환경보존의 중요성을 오래전부터 인식해온 현지 주민들은 끝끝내 이같은 설득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LG전자는 시간도 잃고, 돈도 잃고, 현지 민심까지 잃는 상황으로 몰렸다.

왜 이렇게 됐을까?

애초부터 현지의 환경과 여론을 충분히 검토하고 입지를 선정했다면,
최초의 반대 움직임이 있었을 때 바로 전략을 수정했더라면,
불필요한 광고 전쟁을 벌이느니 바로 고개를 숙였더라면,

이번처럼 시간과 돈, 노력을 낭비하는 사태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만시지탄(晩時之歎)이지만, 이제라도 LG전자가 현지 주민들에게 다가가는 자세와 마케팅으로 잃은 민심을 되찾고, 명예 회복에 성공하기를 기대한다.

(CNB=정의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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