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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15년 숙원 ‘상암동 DMC빌딩’, 랜드마크 꿈 접었다

전시행정 표상된 ‘초고층 사업’…박원순 시장 결국 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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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도기천기자 |  2015.09.04 18:08:43

▲인근 고층건물에서 내려다본 상암DMC 랜드마크부지의 4일 현재 모습. 2001~2002년 원주민 철거와 부지 조성이 완료됐지만 개발이 지연되면서 10년 넘게 방치 돼 있다. (사진=도기천 기자)

서울시의 대표적인 전시행정 산물인 ‘상암DMC 랜드마크빌딩 건립 사업’이 숱한 소송과 재설계를 거치며 다시 윤곽을 드러냈다. 서울시는 지상 130층 이상의 세계최고층 빌딩(버즈두바이 다음 높이)을 짓겠다는 당초 계획을 접고 50층 이상 높이로 입찰기준을 완화했다.

전임 시장들의 치적 쌓기 수단으로 전락해 무리한 사업을 벌이다 여러 번 좌초된 랜드마크사업이 이번엔 성공할 수 있을까? CNB가 ‘서울시 택지공급지침서’를 입수해 15년간 잠자고 있는 ‘바벨탑’의 실체를 들여다봤다. (CNB=도기천 기자)

수차례 설계변경·소송전…10여년간 복마전
결국 바벨탑 쌓지 않기로…50층 넘으면 OK
이래저래 안되면 일반빌딩 규모로 분할매각

상암DMC(디지털미디어시티) 사업은 지난 2000년 고건 서울시장 시절에 기획됐다.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고 시장은 마포구 ‘상암새천년신도시’ 택지개발지구 내 569,925㎡(사업용지 335,655㎡, 공공용지 234,269㎡) 부지에 세계적인 디지털 미디어 산업단지를 조성하겠다는 구상을 폈다. 

핵심 유치기업은 방송·신문 등 언론사와 IT분야 대기업 계열사. 배후에는 1만여 세대의 주거단지를 조성키로 했다.

월드컵이 다가올수록 사업은 전광석화로 진행됐다. 수천세대의 원주민 가구가 철거됐고 그 자리에 터파기가 시작됐다. 원주민들이 보상용으로 받은 아파트입주권은 수억원의 웃돈이 얹혀 거래됐다.

현재 상암동은 상전벽해(桑田碧海)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다. MBC글로벌미디어센터, YTN, SBS프리즘타워, KBS미디어센터, 한국경제신문·TV, 중앙·조선·동아일보의 종합편성채널 방송국 등 새건물이 즐비하다. CJ E&M, LG CNS, LG U+, 팬택R&D센터, 누리꿈스퀘어 등 IT·미디어 관련 수십개 기업도 이곳에 신사옥을 지어 자리를 잡았다.

또 거주 시설로는 분양·공공임대 아파트와 오피스텔 등 1만여 세대가 빼곡히 들어서 있다. 서울시 집계에 따르면 당초 도시계획의 90%가량이 완성됐다.

▲낮은 지대에서 바라 본 상암DMC 랜드마크부지의 4일 현재 모습.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돼 있다. (사진=도기천 기자)

하지만 상암DMC의 화룡점정(畵龍點睛)인 랜드마크 빌딩은 15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첫 삽을 뜨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 주민들 사이엔 ‘바벨탑의 저주가 내린 것 아니냐’는 말까지 돌았다. 

서울시는 당초 3만7280㎡의 부지에 연면적 72만4675㎡, 사업비 총3조3천억원 이상을 들여 지하 9층, 지상 133층(640m) 높이로 랜드마크를 설계했다. 당시는 세계최고층 빌딩인 UAE(아랍에미리트)의 버즈두바이 건물(818m, 160층)이 착공되기 전이었다. 따라서 서울시는 상암랜드마크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 될 거라 믿었다. 

청사진은 화려했다. 초고층 설계 전문기업인 미국의 SOM이 설계한 당시 조감도를 보면 랜드마크 빌딩에는 ‘과거와 미래가 합쳐진 서울’이 담겨 있었다. 통신 수단의 원조격인 남산 봉수대의 기단부와 몸체의 유려한 곡선을 살리면서 봉수대의 연기와 불빛 모양 등 전체적으로 등대의 이미지를 형상화한 유선형 디자인으로 설계됐다.

특히 기존 초고층 건물이 위로 갈수록 좁아지는 웨딩 케잌 형태로 되어 있는 것에 비해 건물 중앙이 열린 S라인형 수직 공간이었다. 자연을 실내로 끌어들인 생활환경을 조성하는 한편, 열린수직공간에서 발생하는 기류를 이용한 풍력발전과 자연환기, 자연채광이 가능한 세계 최고 수준의 첨단 빌딩이었다.

또 133층 최고층에 전망대가 설치되며 방송시설, 공연장, 주한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첨단 비즈니스호텔, 고급 아파트와 오피스 시설, 고급백화점, 대학 병원의 전문 클리닉, 멀티플렉스 영화관, 디지털 체험관, 미래형 유비쿼터스 체험관, 초대형 아쿠아리움 등이 기획됐다. 명실공히 업무, 숙박, 주거, 전시, 상업, 공공, 문화 및 집회시설을 아우른 수직 복합화 건물이었다. 

이 플랜에 따라 입찰이 이뤄졌고 2008년 서울라이트 컨소시엄이 사업자로 선정됐다. 서울라이트에는 한국교직원공제회와 산업은행, 하나은행, 농협중앙회, 중소기업은행, 우리은행, 대우건설, 대림산업, 한국토지신탁 등 내로라하는 25개의 금융·건설기업들이 참여했다.

▲상암DMC 토지개발 현황. 아래쪽 빨간색 테두리가 랜드마크 부지. (자료=서울시)

오세훈, 알고도 고집 부렸나

하지만 사업자 선정 직후 세계금융위기와 부동산 경기침체로 사업에 제동이 걸리기 시작했다. 아랍에미리트의 버즈 두바이가 828m 높이의 모습을 드러내면서 세계최고층 메리트도 사라졌다.

서울라이트타워는 서울시에 층수 하향 조정, 오피스텔 비중 확대, 착공 연기 등 사업내용 변경을 요구했고 토지대금도 연체했다.

그럼에도 서울시는 사업 강행 의사를 밝혔다. 급기야 2009년 10월16일 시는 ‘서울 DMC 랜드마크 빌딩’의 기공식을 강행했다. 시는 ‘서울 DMC 디지털 컬처 오픈 페스티발’이라는 행사명을 걸고 레이저와 LED 등 최첨단 멀티미디어를 활용한 화려한 디지털쇼를 선보였다.

이날 기공식에는 오세훈 서울시장, 이종서 한국교직원공제회 이사장, 서종욱 대우건설 사장, 설계사인 미국의 SOM의 프로젝트총괄 등 국내외 관계자 및 지역주민 등 1천 여명이 참석해 테이프를 끊었다. 방송3사는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이 당시 이미 서울라이트는 더 이상 사업을 진행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증권가에서는 “착공식만 하고 끝날 사업”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당시 행사는 대표적인 전시행정의 산물로 기록됐다.

이후 투자기업들은 하나둘씩 발을 뺐고 더 이상 사업 진행이 어렵다고 판단한 서울시는 2012년 6월 토지매매 및 사업계약을 해지했다. 랜드마크 부지는 그날 이후 지금까지 방치돼 거대한 잡초밭으로 변했다. 

한편에서는 책임 범위를 둘러싼 소송이 시작됐다. 서울시가 서울라이트로부터 받은 토지대금을 전부 돌려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울시가 받은 대금은 1965억원. 시는 계약해지 후 토지대금 연체료 및 이자, 토지사용료 등 명목으로 708억원을 뗀 뒤 1257억원만 서울라이트에 돌려줬다.

그러자 서울라이트는 시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지난해 8월 서울시에 569억원을 더 돌려주라고 판결했다. 사업 무산 책임이 시장 상황을 무시한 채 사업을 강행한 서울시에도 일부 있다는 취지였다.

▲상암DMC 중심부의 4일 오후 풍경. MBC글로벌미디어센터 앞에 행사 부스가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사진=도기천 기자)

랜드마크 포기…분할매각까지 고려

이렇게 여러 곡절을 겪은 끝에 서울시는 최근 모든 것을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랜드마크 계획을 깨끗이 접고 사업요건을 대폭 완화했다.

CNB가 입수한 ‘랜드마크 용지(부지명 F1, F2) 공급지침서’에 따르면, 이 부지에 들어설 건축물 층수를 기존 ‘100층 이상’에서 ‘건축법상 초고층 또는 랜드마크적인 건축물’로 바꿨다. 건축법 시행령에 따르면, 층수가 50층 이상이거나 높이가 200m 이상이면 ‘초고층’에 해당된다.  

부지의 예정가격(예가)은 4341억원으로 정했다. 부지면적이 37,262㎡인 점을 감안하면 ㎡당 1165만원(평당 약3844만원)이다. 2008년 사업자 선정당시 부지 대금인 3600억원보다 20%가량 높아졌지만, 서울시가 최근 매각에 실패한 강남구 삼성동 옛 서울의료원 부지(㎡당 3079만원)에 비하면 3분의1 수준이다. 시는 지난 6월 2개 감정평가 법인에서 평가한 감정가격의 평균을 내 매각가를 확정했다.

부지용도는 숙박업무시설로 정했다. 호텔 등 숙박시설이 최소 20%이상 돼야 하며, 금융·보험·증권·교육시설 및 복지시설, 방송통신시설 등 업무시설도 최소 20%이상 들어서도록 했다. 

또 국제컨벤션, 공연장, 전시장, 수족관 등 문화·집회시설이 5%이상을 차지하도록 했다. 특히 국제규모의 행사가 가능한 컨벤션시설은 ‘필수 시설’로 규정했다. 

공동주택, 오피스텔 등 주거비율은 지상층 연면적의 20% 이하로 제한키로 했다. 이밖에 DMC 사업에 부합된다고 판단될 경우, 서울시 주무부서 허가를 거쳐 일정부분 입점을 허용키로 했다. 단, 카지노를 비롯한 도박시설, 안마시술소·무도장 등 위락시설은 불허할 방침이다.   

특히 서울시는 F1필지와 F2필지의 ‘통합 개발’이 여의치 않을 경우, 이들을 각각 분할매각 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각각의 필지에 한 개씩 건물을 세운다는 것.

이 계획안 따르면, 우선 30,777㎡규모의 F1부지는 부지용도를 숙박업무시설로 정했다. 건폐율 60%이하, 용적률 1000%이하, 최고높이 200m(약50층) 이하로 매각 요건을 정했다. 또 6,484㎡규모인 F2부지는 일반업무시설로 정해 건폐율 60%이하, 용적률 1000%이하, 최고높이 100m(약25층) 이하를 적용키로 했다.

이는 서울시로서는 최악의 경우다. 랜드마크는 커녕 ‘초고층 건축물’에도 해당되지 않기 때문. 상암DMC에 들어서 있는 기존 건물들과 차별성을 찾기 힘든 규모다. 

서울시 경제정책과 관계자는 CNB에 “2개 필지를 각각 분할매각 하는 방안은 최후의 수단이며, 필지를 묶어 개발한다는 게 서울시의 원칙”이라고 전했다.

시는 2개 필지를 묶어 개발하려는 사업자와 1개 필지씩 나눠 사들이려는 사업자의 계획서를 모두 접수한 뒤, 통개발 계획을 써낸 사업자만 우선 통과시킬 계획이다. 하지만 통개발 하겠다는 사업자가 아무도 없을 경우엔 자동으로 분할매각이 진행된다.

▲상암DMC 랜드마크부지 개요. (자료=서울시)

삼성 강남부지 입찰 포기, 상암 때문?

한편 아직 눈독을 들이는 국내기업은 나타나지 않은 상태다. 지난달 설명회 때 대기업 몇 곳이 시행사를 앞세워 참여했지만 이 정도로는 관심여부를 알기 힘들다.    

다만 최근 진행된 서울 강남의 마지막 노른자위인 옛 서울의료원 부지입찰에 아무도 참여하지 않은 것을 두고 비슷한 규모인 상암DMC를 염두에 뒀기 때문이란 해석이 나오고 있다.

서울의료원 부지는 31,543㎡로 상암 부지보다는 조금 작지만 매각 예정가격이 9725억원으로 ㎡당 가격이 상암 보다 3배 가까이 높았다.

더구나 용적률이 최대 400% 이내로 제한되고, 서울시가 추진 중인 동남권 국제복합교류지구에 속해 있어 전체 공간의 50% 이상을 관광·숙박 또는 문화·집회 시설 등으로 채워야 하는 등 제약이 컸다.

또 바로 옆에 붙어 있는 8만㎡에 이르는 한전 부지를 지난해 현대차그룹이 매입한 뒤, 공공개발(기부채납)을 두고 서울시와 강남구 사이에 끼어 골머리를 앓고 있는 점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그룹의 전철을 밟게 될 수도 있다는 우려다.  

하지만 이에 비해 상암 랜드마크 부지는 가격·용도 등 여러 조건이 월등히 낫다. 기업들이 상암 부지에 더 매력을 느꼈기 때문에 강남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는 설이 도는 이유다. 더 나아가 서울의료원 부지입찰 때 삼성생명이 응찰했다가 입찰보증금을 내지 않아 무효 처리 됐는데, 이를 두고 삼성이 상암으로 눈을 돌릴 가능성이 조심스레 점쳐진다. 

▲최근 몇 년 새 줄줄이 무산된 랜드마크 빌딩들. 상암DMC랜드마크(서울라이트타워), 용산국제업무지구의 랜드마크빌딩, 송도 인천타워의 조감도.

현재로서 가장 적극적인 곳은 중국 녹지그룹이다. 중국 상하이에 본사를 둔 부동산 개발 국영기업으로 1992년 설립 이후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기업이다.

국내에서는 제주도 개발에 투자한 회사로 유명하다. 지난 2012년 제주도 녹지한국투자개발 회사를 설립한 바 있다. 지난 해에는 롯데그룹 계열사인 한국 동화투자공사와 함께 제주도 최고층인 58층 규모 쌍둥이빌딩 개발에 1조465억원을 투자하기도 했다.

녹지그룹 측은 지난해 11월 박원순 서울시장의 중국 순방 때 박 시장을 만나 상암 랜드마크 부지 개발에 상당한 관심을 보였으며, 투자의향서(LOI)도 체결했다. 지난달 열린 서울시의 사업설명회 때도 적극적인 모습이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CNB에 “여러 기업이 관심이 있다는 얘기가 들리지만 사업설명서 제출까지는 4개월이나 시간이 남아 있는 만큼 녹지그룹 외에 드러내놓고 적극적으로 나서는 국내 기업은 아직 없다”며 “개발 조건이 상당히 완화된 만큼 연말이 다가올수록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시는 내년 1월 27일까지 입찰 참가 기업들의 사업계획서를 받은 뒤 심사에 착수, 2월 중 우선협상대상자를 정할 방침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90일 안에 우선협상기업과의 협의를 끝낸다는 원칙을 세운 만큼 이르면 내년 상반기 안에 새사업자가 선정될 것으로 보이지만, 워낙 변수가 많아 시일이 더 걸릴 수도 있다”고 밝혔다.  

(CNB=도기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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