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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리] ‘한화’는 왜 ‘불꽃’인가… 그 화려한 대(大)역사

한화그룹이 쏘아올린 축포 150만발의 의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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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도기천기자 |  2015.10.05 16:02:26

올해도 어김없이 여의도의 초가을 밤하늘이 불꽃으로 덮였다. 2000년 10월 처음으로 축포가 올라간 뒤, 15년 세월동안 13번 서울의 야경이 화려한 옷을 갈아입었다. 한화그룹의 대표적인 사회공헌 프로그램인 ‘서울세계불꽃축제’. 지난 3일 막을 내렸지만 여운이 좀체 가시지 않는다. 지난 15년 간 한화가 쏘아올린 불꽃은 150여만 발에 이르며, 다녀간 시민은 1000만명을 넘는다. 매년 수천여명의 스탭과 자원봉사자가 비지땀을 흘렸다. 한화는 왜, 무엇 때문에 그토록 불꽃에  집착하는 걸까? (CNB=도기천 기자)

▲지난 3일 밤 서울 여의도 인근에서 ‘2015 서울세계불꽃축제’가 열리고 있다. 이 축제에는 한국, 미국, 필리핀 등 3개국의 대표 연화팀이 참여해 10만여 발의 다채로운 불꽃으로 가을 밤하늘을 수놓았다. (사진=연합뉴스)

불꽃은 ‘희망’과 ‘희생’을 상징
15년간 연인원 1000만명 참가
축제의 진짜VIP는 ‘사회적 약자’


“나는 불꽃이다. 불꽃은 정직하다. 약속된 시간 약속된 장소에 올라서야 가장 아름답게 피어난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약속을 반드시 지켜야 하는 이유이다. 나는 불꽃이다, 한화” (광고 ‘약속’ 편)


‘서울에서 세계최대규모의 불꽃축제를 열자’는 아이디어를 최초로 낸 사람은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다. 


1999년 12월경 김 회장이 ‘㈜한화’에 ‘불꽃축제 개최’를 지시했고, 이듬해 10월 처음으로 ‘서울세계불꽃축제’가 열렸다.


김 회장이 불꽃축제를 구상하게 된 것은 한화그룹의 모기업 ㈜한화가 1952년 ‘한국화약주식회사’로 창립된 이후, 산업용 화약 제조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며 국내 최대의 화약전문 기업으로 성장한데서 비롯됐다. 


창업주 현암 김종희 선대회장은 ‘기업보국(企業保國)’의 경영철학을 기반으로, 대한민국 최초로 다이너마이트를 생산하는 등 화약산업 발전에 앞장섰다.


전쟁 직후였던 한반도에서 화약을 다루는 기업이라는 것은 큰 상징성을 지녔다. 한화는 해마다 화약생산을 통해 높은 매출을 올리며 성장했다.


1964년부터는 ‘불꽃사업’을 시작했다.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과 1988 서울올림픽, 2002 월드컵 등 각종 국제 행사는 물론 전국 각지의 지역 축제, 정부 행사 등에서 한화의 연화팀은 매번 화려한 불꽃을 쏘아 올렸다.


▲서울 시민의 최대 축제로 자리 잡은 ‘세계불꽃축제’에는 매년 수천여명의 스탭과 자원봉사자가 참여하고 있다. 지난달 30일 서울 선유도 공원 인근 바지선에서 관계자들이 불꽃 연출 장비를 설치, 점검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 불꽃을 통해 쌓아온 노하우를 국민과 함께 나누자는 게 김 회장의 발상이었다. 김 회장은 “한화그룹의 전통과 기술을 시민들에게 기쁨으로 전달하는 데 불꽃이 적격”이라고 판단했다.


덕분에 서울 시민들은 매년 가을마다 공짜로 세계 최대규모의 불꽃축제를 즐기게 됐다. ‘서울세계불꽃축제’는 2000년 처음 개최된 이후 13회에 이르는 현재까지 매번 100만명 안팎의 시민이 참여하는 국내 최대 규모의 시민축제로 자리 잡았다.


김 회장의 건강악화, 재판 등 경영위기를 겪던 때도 변함없이 이어졌으며, 해외 불꽃놀이 팀들의 잇따른 참여로 국제적 인지도도 높아졌다.


불꽃놀이는 9세기경 화약을 발명한 중국인들에 의해 최초로 시작된 놀이문화로, 국내에서는 이미 고려시대부터 궁중행사의 중요한 볼거리로 자리 잡아 왔다. 하지만 현재까지 이어오는 대규모 축제로 발전시킨 나라는 일본과 미국, 이탈리아, 스페인 정도다.


한화가 ‘불꽃’이라는 이미지를 강조하는 것은 화약산업으로 출발한 과거 기업의 정통성을 알림과 동시에 세계로 뻗어나가는 한화의 포부를 보여주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또 보는 이에게는 ‘희망’과 ‘희생’이 교차한다. 일순간 기쁨을 주고 사라지는 게 ‘불꽃’이기 때문. 올해 한화는 ‘내 안의 불꽃을 찾을 수 있는 마법 같은 불꽃마을’을 테마로 내세웠다. 


▲이번 불꽃축제는 주최 측과 경찰의 철저한 준비 덕분에 고질적인 문제였던 쓰레기 투기와 불법주차가 예년보다는 나아진 모습이었다. 3일 밤 축제가 끝난 뒤 전경. (사진=연합뉴스)

쓰레기·교통난 나아졌지만…


한편 행사규모도 계속 커져갔다. 입소문이 나면서 불꽃을 보러 나오는 시민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났고, 참가 국가들의 수준도 해마다 높아지고 있다. 특히 영국, 중국, 이탈리아 등 총 4개국 대표 연화 팀이 참가한 지난해 불꽃축제는 규모가 가장 컸다.  


축제를 즐기러 나온 시민들의 수(100만명 안팎 추정)를 헤아리기조차 힘들게 되자, 서울시와 한화는 지난해부터 안전사고 예방인력을 크게 늘렸다. 서울시, 경찰, 소방서, 구청 관계자 등 총 5000여명이 투입됐다. 지난해부터는 여의도 강턱에 3개의 조망탑을 설치했으며, 안전요원이 위에 올라가 관람객들의 안전을 관찰했다.


한화그룹 임직원도 안전사고 예방과 환경미화를 위해 함께 땀을 흘리고 있다. 한화그룹 11계 계열사 임직원 500~600명으로 클린봉사단을 만들어 시민들에게 쓰레기봉투를 배부하고, 행사 뒤에는 자정까지 쓰레기를 치웠다.


한화 계열사의 한 직원은 “한화 직원이라면 누구나 연중 가장 큰 행사로 각인하고 있다. 수많은 시민들에게 아름다운 추억을 드린 것 같아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안타까운 일도 있다. 축제 전날인 지난 2일 밤, 조명 설치 작업을 하던 이모(43)씨가 물에 빠져 숨지는 사건이 있었다.


고질적인 문제였던 쓰레기 투기와 불법주차가 예년보다는 나아진 모습이었다. 행사 시작 전부터 한강공원 곳곳에는 쓰레기를 모으기 위한 대형 그물망이 설치됐고, 대부분의 시민은 이 안에 쓰레기를 넣었다.


하지만 일부 시민들은 여전히 머물던 자리에 쓰레기를 그대로 두고 떠나 눈살을 찌푸리게 하기도 했다.

▲시민 전체가 ‘일반석 고객’이라면 한화 측이 마련한 ‘VIP석’은 따로 있다. 지난해 축제 때 한화그룹과 자매결연을 맺은 서울 은평구 꿈나무마을 어린이들이 선상 카페에 초대되어 밤하늘을 수놓은 불꽃을 보며 즐거워하고 있다. (사진=한화그룹)


서울시민 최대축제로 자리 잡아


매년 자리 경쟁도 치열하다. 축제가 열리는 날 낮부터 마포대교 남단에서 63빌딩 앞에 이르는 여의동으로 구간의 양방향 차량 통행이 전면 통제된다. 그러다보니 걸어서 축제장까지 가거나 아니면 목 좋은 곳을 선점해야 제대로 즐길 수 있다.


여의도 반대편 한강공원 이촌 지구, 한강대교 아래 노들섬, 1호선 노량진역 인근의 노량진 주차타워와 한강대교 위 전망대 쉼터인 노들카페가 명당으로 꼽힌다. 거리가 좀 멀긴 하지만 선유도와 남산 N서울타워도 인기다. 페이스북과 트윗 등 SNS를 통해 명당을 잡은 이들의 인증샷이 ‘누굴 약올리듯’ 쉼없이 올라온다. 


시민 전체가 ‘일반석 고객’이라면 한화 측이 마련한 ‘VIP석’은 따로 있다. 올해 축제에서 한화는 자매결연을 맺고 있는 혜심원과 정릉종합사회복지관의 어린이 80여명을 불꽃축제를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는 한강 선상카페에 앉혔다. 노량진 수산시장의 소상인들을 위한 자리도 같이 마련했다.


이곳은 지난해 은평구 꿈나무마을 어린이들 100여명이 앉았던 자리였다. 2013년에는 이라크 비스마야 건설현장 파견에 파견된 한화건설 임직원 가족 100여명을 선상카페에 초청해 위로하기도 했다. 이 100개의 VIP석은 한화가 이 시대 ‘이웃’에게 내놓은 공간이다.

(CNB=도기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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