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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러운 독일’ 따라하기 유행?…따라하려면 제대로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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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최영태기자 |  2015.10.06 11:35:36

요즘 ‘독일 모델’이 유행이다. 세계 경제의 4강(미, 중, 독, 일) 중에서 독일만이 승승장구하니, 그럴 만도 하다. 

한국인은, 한국전쟁 이후 지금까지 줄곧 “미국만 따라하면 된다”는 자세를 견지해 왔다. 이러한 친미 또는 숭미가 기본 테마인 가운데, 가끔 변주도 나타났다. 1980년대 말~90년대 초 일본 경제가 맹위를 떨칠 때는 “미국은 아무래도 아닌 듯싶다. 따라야 할 건 일본 경제”라는 흐름도 나타났었다. 그러나 일본 경제가 ‘잃어버린 20년’에 빠져들면서 이런 친일 또는 숭일 태도는 퇴장한 지 오래다. 

대통령의 독일 칭찬은 계속되지만…    

그리고 이제 독일이다. 이런 흐름은 대통령의 여러 발언에서도 드러난다. 대통령은 10월 5일 제9회 세계한인의날 및 2015 세계한인회장대회 개회식에서 "그저께 10월 3일은 우리가 부러워하는 독일 통일 25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우리도 이제 70년 분단의 역사를 마감해야 한다”고 연설했다. ‘우리가 부러워하는 독일’이라는 말이 귀에 꽂힌다.

박 대통령은 2014년 3월28일에는 대북한 제안을 특별히 독일 드레스덴을 골라 현지에서 발언했다. ‘드레스덴 선언’이다. 올해는 강도 높게 ‘노동개혁’을 진행하면서 9월 3일엔 독일의 전 게르하르트 쉬뢰더 총리를 만나 “독일의 하르츠 개혁이 귀감이 됐다”고 말을 직접 건네기도 했다. 

미국 또는 일본 또는 독일을 따라하자는 이런 추종주의를 지켜보면 항상 쓴 웃음을 짓게 된다. 말은 “따라하자”면서도 실제로는 제대로 따라하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 따라하기를 한번 보자. 한국의 보수 세력 또는 기업인들은 미국 따라하기를 줄기차게 요구해왔다. 이들은 특히 미국식 쉬운 해고(그냥 회사 정문 앞에서 출근자를 막아서 “넌 해고야” 한 마디만 하면 해고가 되는)를 가장 부러워하는 것 같다. 그런 시스템이 그리 좋아 뵌다면 따라하면 된다. 

헌데, 미국이란 나라엔 쉬운 해고만 있는 게 아니다. 한국에는 없는 집단소송(한 사람 또는 제한된 수의 사람들이 그들이 속하는 큰 그룹을 대신하여 제기하는 소송) 제도도 있고, 사기를 친 기업인에게는 입이 쩍 벌어질 정도로 놀라운 벌금을 매기는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가 있다. 조직적 횡령-배임을 한 기업 총수에게는 수백 년 징역형을 내려, 아예 세상 빛을 못 보게 만들기도 한다.

이런 게 다 합쳐져 미국이란 나라가 됐건만, 한국의 이른바 지배층은 이 중에서 마음에 드는 것만(자신에게 유리한 것만) 쏙 빼내, “이걸 따라하면 우리 모두 잘 살게 된다”고 사기를 친다. 

미국 따라하기 하자면서 왜 그들의 사법 시스템은 따라하지 않나? 

미국에서 살아본 경험을 통해 제일 부러웠던 건, 서슬 퍼런 사법 시스템과, 나라 세금을 안 내면 집이건 차건 마구 뺏어가는 시스템이었는데, 한국의 지배층이 “미국의 사법 시스템과 세금 징수 시스템을 따라하자”고 외치는 걸 들어본 기억은 없다. 

독일 따라하기도 마찬가지다. 현재 정부여당이 추진하는 이른바 노동개혁은, 독일의 하르츠 개혁(2003년부터 4단계에 거쳐 시행된 독일의 노동시장 개혁 방안)과 게르하르트 쉬뢰더 전 총리의 ‘어젠다 2010’을 전범으로 삼는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헌데, 정작 독일인들 스스로는 ‘하르츠 개혁’과 ‘어젠다 2010’이 독일 경제에 유익한 역할을 했다고 보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 같다. 하르츠 개혁에 대해 서울대 행정대학원의 요르그 미하엘 도스탈 교수는 “하르츠 개혁은 한국에 맞지 않습니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됐다(조선비즈 9월 7일자). 

어젠다 2010을 독일 사민당 정부의 쉬뢰더 총리가 무수히 욕을 먹으면서도 밀어붙었지만, 독일 정부의 '사회적 지불'을 줄인 이 정책은 독일 경제가 되살아나는 데 별다른 역할을 못했고, 사민당 정부의 몰락만 불러왔다는 게 객관적 평가다(토머스 게이건 저 ‘미국에서 태어난 게 잘못이야’ 346쪽 참조)

독일 경제가 오늘날 ‘홀로 독야청정’을 구가하는 데 크기 기여한 요인으로 하르츠 개혁이나 어젠다 2010을 뽑는 전문가는 거의 없고, 대개는 1. 유럽 통합에 따른 수출증대 효과 2. 세계 최고 기술을 갖춘 강소기업의 존재 3. 노동조합을 기업 이사회에 참여시키는 노사공동결정제도 세 가지를 꼽는다. 

따라서, 정말로 독일 같은 강한 경제를 이룩하고 싶다면, 우리 한국 경제도 1. 동북아를 EU 같은 하나의 시장으로 만들려는 노력 2. 강소 중소기업을 키우고 3. 기업 운영에 노조의 의견을 적극 반영하는 노조 키우기에 나서야 한다. 헌데, 앞의 미국 경우와 마찬가지로, 한국의 이른바 지배층이 독일 따라하기를 주장하면서 이렇게 중소기업-노조 키우기를 말한 경우를 들어보지 못했다. 

골라서 따라하기 하면 결국 남는 건 ‘나쁜 한국식’뿐

유아는 따라하기로 세상을 배운다. 동물 중 가장 큰 뇌를 가진 인간과, 그 바로 아래 단계의 영장류-원숭이류가 가장 잘하는 게 바로 따라하기다. 인간은 따라하기를 통해 거대한 인류 문명을 이어왔고 발전시켜왔다. 

“더 이상 따라하지 말고 독창적 창조를 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그러나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말 그대로, 창조는 모방과 그 뒤의 변형으로 이뤄지는 것이지, 하늘에서 뚝 떨어지듯 이뤄지는 창조란 인간 세상에는 없다.  

그래서 제대로 따라하기는 중요하다. ‘왕짜 근육’ 또는 걸그룹 같은 S라인을 갖고 싶다면, 트레이너가 시키는 모든 운동을 잘 따라해야 한다. 구미에 맞는 운동만 따라하고, 힘든 건 생략하면 왕짜 근육이나 S라인은 꿈꾸지 말아야 한다. 

유신 시대의 ‘한국적 민주주의’가 민주주의가 아니었고 그냥 한국식이었듯, 빼먹듯 고따라하는 부분적 미국식 또는 한쪽짜리 독일식은 그냥 또 다른 한국식일 뿐이다. 그리고 우리 경제의 체질을 강화시키기는커녕 요즘 문제가 되는 ‘헬조선 현상’만 강화시킬 뿐이다. 좀 제대로 따라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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