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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현장] 최첨단 상암DMC에 판자촌이? 그들의 겨울나기

철도부지에 쪽방촌 이룬지 50여년…못 떠나는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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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강소영기자 |  2016.02.05 09:44:06

▲경기도 고양시 덕은동에 위치한 쪽방촌. 도로 하나 사이를 두고 상암DMC 아파트 숲이 자리 잡고 있다. (사진=강소영 기자)


2002년 월드컵으로 뜨거웠던 상암벌 귀퉁이에서 예나 지금이나 한결 같은 모습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는 마을이 있다.  


서울시가 첨단도시로 발전시키고 있는 상암 디지털미디어시티(DMC)와 불과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60~70년대 모습을 간직한 작은 마을인 경기도 고양시 ‘덕은동’ 1통 얘기다. 4~50년 전 갈 곳 없는 사람들이 알음알음 모여 무허가 판잣집을 지어 살기 시작하면서 ‘동네’가 됐다.


상암동 일대가 거대한 개발물결을 이루는 동안에도 이곳이 온전히 옛 모습을 지킬 수 있었던 이유는 상암동과 개천 하나 사이임에도 행정구역은 경기도 고양시인데다, 철도 부지로 묶여 개발이 허락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개천 하나두고 아파트단지-판자촌
철도부지로 묶여 50년 간 그대로
사람들 “그래도 말벗 있어 행복해”


정부는 상암DMC를 해외의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을 유치해 창업을 활성화하는 ‘아시아판 실리콘밸리’로 조성하겠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 첨단기술과 창의적인 스토리가 만나 디지털 문화콘텐츠를 생산하고 수출하는 거점으로 육성하겠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아시아판 실리콘밸리’와 도로 하나 사이에 60년대 쪽방촌 같은 모습의 마을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연탄봉사, 벽화그리기 등 판자촌마다 넘치는 손길이 이곳에는 미친 적이 없다. 


한강이 얼어붙었다는 한파가 몰아친 지난 4일, 꽁꽁 언 손에 입김을 호호 불며 상암동 아파트 숲을 지나쳐 실개천이 흐르는 곳에 다다랐다. 서울 상암동과 개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서울시와 고양시로 나눠지는 경계 지점에 그곳이 있었다.


▲어슴푸레 해가 넘어갈 무렵, 한 할머니가 보따리를 이고 판자촌 골목을 빠져나가고 있다. 할머니 너머로 고층 아파트가 보인다. (사진=강소영 기자)


30여 채 남짓한 집들은 슬레이트 지붕으로 덮여 있다. 장정 두 명이 겨우 지나갈 만한 골목으로 들어서자 발걸음 소리가 커졌다. 베일 듯 차가운 공기 탓인지 아무도 바깥을 내다보지 않았다. 지나다니는 이도 없었다. 골목 안쪽으로 들어서니 우두커니 집 앞을 지키고 있는 가스통들이 즐비했다.


이곳은 철도공사 부지라서 집 증축도, 도시가스 설치도 누구의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곳이다. 개인 소유가 아니기에 땅을 파헤쳐 가스관을 묻을 수도 없어 집집마다 가스통 두어 개씩을 밖에 내놨다.


▲철도부지에 묶여 가스관을 매설할 수 없어 가스통들을 거리에 내놓고 산다. 한 할머니가 가스통 옆을 지나치고 있다. (사진=강소영 기자)


집집마다 사연 하나씩, 그렇게 세월은 가고…


자신보다 더 커 보이는 보따리를 이고 가던 할머니를 만났다. 동네에 대해 물으니, 반장 집에 가보라며 주름진 손으로 하얀 벽이 칠해진 집을 가리켰다. 문을 두드리니 흰 머리가 성성한 할아버지 한 분이 들어오라고 손짓했다.


집으로 들어서자 햇볕 아래 밝게 웃는 손자 손녀의 사진이 벽을 메우고 있다. 언제부터 사셨냐, 불편한 점은 없는가, 계속되는 기자의 질문에 할아버지는 손사래를 치며 “사람 사는 게 다 똑같지”라며 텔레비전으로 눈길을 옮겼다. 그러나 이내 “나는 여기가 제2고향”이라며 말문을 열었다. 


“1974년부터 살았어. 손위 형님뻘 되는 사람이 옆집 살았는데 아내를 소개시켜줬지. 자식 낳기는 네댓 낳았는데...실패하고 아들 둘만 남았어”


말끝을 흐리던 할아버지는 하릴없이 거뭇한 손으로 방바닥을 쓸며 “여기가 예전에는 발로  벽을 툭 치면 우르르 무너져 내릴 듯 낡았어. 수도도 설치가 안돼서 지하수를 파서 스스로 수도를 만들었지. 집집마다 우물이 있을 정도였으니. 땅에 95자(약 28.5m) 정도 되는 파이프를 길게 박아 물을 쓰곤 했어. 지금은 좋아졌지. 그렇지만 세상을 뜬 사람이 많아”


바로 옆 상암에는 MBC글로벌미디어센터, YTN, SBS프리즘타워, KBS미디어센터, 한국경제신문·TV, 중앙·조선·동아일보의 종합편성채널 방송국 등이 들어섰다. CJ E&M, LG CNS, LG유플러스, 팬택R&D센터, 누리꿈스퀘어 등 IT·미디어 관련 수십 개 기업도 이곳에 신사옥을 지어 자리를 잡았다. 아파트와 오피스텔이 1만 세대가 넘는다고 한다. 할아버지 말이 달나라 얘기처럼 들린다. 


강씨 할아버지를 뒤로하고 만난 정씨 할머니는 남부럽지 않았던 시절을 얘기했다.


“올해로 이사 온 지 딱 20년이야. 우리 아들이 사업하다 망해서 뚝섬에 살다 왔는데, 거기에서 여기까지 펑펑 울면서 이사 왔어. 그때는 여기서 바로 보이는 상암동 아파트 단지가 석탄부지였어”


할머니는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내어주며 “아파트 살면 옆집에 사는 사람이 김씨인지 박씨인지 모르잖아. 여기는 오랫동안 함께 살아와서 어느 집에 숟가락이 몇 개인지 다 알아. 층수가 높은 집들은 엘리베이터 갇히는 사고도 나지만 그런 사고 날 염려도 없어. 여긴 문도 잠그지 않고 살아. 오히려 ‘똑똑’ 두드리면 좋아하지”라며 웃어보였다.


▲한낮 노인정에서 시간을 보내는 덕은동과 옆 동네 대덕동 할머니들의 모습. 그들의 표정에서는 세월의 고개를 넘어온 특유의 강단과 온화함이 느껴졌다. (사진=강소영 기자)


그들의 표정에는 초연함이 배어 있다. 살을 에는 추위도 그들의 마음을 얼게 할 수는 없었다.


정 할머니는 “나는 이곳이 좋아. 요즘 사람들은 숫자를 너무 좋아해. 사는 평수, 값이 더 나가는 아파트, 얼마나 버는지 등등. 나는 그냥 지금이 행복해. 사업도 하고 망하기도 했었지만 여긴 말벗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어. 서로 숨길 것도, 따질 것도 없고. 이게 사람 사는 맛이지”라며 철제문을 열고 집을 나섰다.


(CNB=강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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