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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마포대로→리야드로 변경? 사우디 기업이 총대 멘 ‘내막’

도로명 바꾸려는 ‘에쓰오일’, 마포주민들 반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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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도기천기자 |  2016.05.19 16:00:02

▲서울 마포구 마포대로의 19일 오후 모습. ‘에쓰오일(S-Oi)l’ 대주주인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석유회사가 에쓰오일을 통해 도로명을 사우디 수도 이름으로 바꿔줄 것을 우리 정부와 지자체에 제안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을 빚고 있다. (사진=도기천 기자)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석유회사가 서울 마포구 ‘마포대로’를 자국 수도 이름을 딴 ‘리야드로(路)’로 바꿔달라고 최근 외교부와 마포구에 제안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이 기업이 최대주주인 ‘에쓰오일(S-Oil)’ 본사가 마포대로변에 자리 잡고 있다는 이유에서 나온 제안인데, 학계와 시민단체·주민들은 서울의 유서 깊은 역사성을 지닌 지명이 기업 논리에 의해 뒷전이 됐다는 사실에 황당해 하고 있다. (CNB=도기천 기자) 

사우디기업 자회사 에쓰오일, 마포에 둥지
사우디측 “도로명 리야드로(路)로 바꿔달라”
주민들 “유서 깊은 마포에 웬 외래명?” 

19일 외교부와 마포구에 따르면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석유회사 아람코는 서울 마포대로를 ‘리야드로’로 지정하는 방안을 지난 3월경부터 우리 측과 협의 중이다. 

아람코는 SK에너지·GS칼텍스와 더불어 국내 ‘빅3’ 정유사로 꼽히는 에쓰오일의 지분 63.4%를 가진 최대주주다. 아람코 외에는 전부 소액주주인데다, 상법상 지분율이 절반(50%) 이상이면 지배경영권을 가지므로 에쓰오일은 아람코의 자회사인 셈이다.  

▲서울 마포구 마포대로변에 위치한 에쓰오일 본사의 19일 오후 모습. (사진=도기천 기자)

아람코는 에쓰오일 본사가 마포대로변인 공덕로터리에 위치했다는 이유를 들어 관할 지방자치단체인 마포구와 외교부에 도로지명 변경 검토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표면적인 이유는 ‘한-사우디 친선관계 강화 차원’이라고 밝혔지만, 외교가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의 최근 이란 순방이 사우디 측을 자극한 것으로 보고 있다. 

박 대통령은 이달 초 역대 최대 규모인 236명의 경제사절단이 이끌고 2박 3일 일정으로 이란을 방문해 수십조원(66건) 규모의 투자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바 있다. 

이란과 사우디는 전통적인 라이벌 관계다. 중동 맹주 자리를 놓고 지난 수십년 간 대립해 왔다. 

이란은 1979년 혁명으로 반미(反美)로 돌아서며 대표적인 친미(親美) 국가인 사우디와 등을 졌으며, 1980~88년 이란·이라크 전쟁 때는 사우디가 이라크의 편을 들었다. 최근 시리아 내전과 예맨 내전에서도 서로 반대편을 지원하고 있다. 이들의 바탕에는 이슬람 양대 종파인 수니파와 시아파 간의 뿌리 깊은 갈등이 깔려있다. 

이 때문에 리야드로가 지정되면 각각 시아·수니파의 맹주인 두 국가 사이에서 ‘균형외교’를 펼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외교부는 한·사우디 관계 발전에 긍정적이라고 판단, 최근 마포구에 이런 입장을 전한 것으로 확인됐다. 외교부 관계자는 19일 CNB에 “외교적 차원에서 양국관계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고 있으며, 결정은 마포구가 할 문제”라고 말했다. 

이미 ‘귀빈로’ 별칭 있어

하지만 마포대로의 지리·역사적 가치 때문에 학계와 지역시민단체는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마포대로는 마포대교 북단~아현교차로에 이르는 총거리 2.9km 구간이다. 5호선 마포역과 공덕역, 6호선 공덕역, 경의중앙선·공항철도 공덕역이 위치한 교통의 요지다.   

특히 600년 서울 도성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한강에서 도성을 연결하는 가장 중요한 길목이 마포대로였으며, 한강변에 위치한 마포나루는 조선시대~일제강점기까지 물류·상권의 중심이었다. 현재도 마포구는 마포나루를 재현한 ‘새우젓 축제’를 매년 열고 있다. 1960년대까지 존재했던 ‘마포종점’(전차종점)은 서민들의 애환을 담은 대중가요로 유명세를 타는 등 한국적 정서가 흠뻑 배인 곳이다.  

안창모 경기대 건축대학원 교수는 19일 CNB에 “외교·실리적 차원에서 볼 때 사우디 측의 제안이 국익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점은 분명히 있다”면서도 “자기 회사(에쓰오일)가 마포에 있다는 이유로 도로명 변경을 요구하는 건 문제가 있다. 만일 그 기업이 향후에 다른 데로 이전하면 그때는 어떻게 하나”라고 꼬집었다.  

▲마포대로는 마포대교 북단~아현교차로에 이르는 총거리 2.9km 구간(빨간선)이다. 외국사절들이 공항에서 청와대로 가려면 반드시 이 길을 지나야한다고 해서 ‘귀빈로’라는 별칭을 얻었다. (네이버지도)


지역시민단체와 주민들도 곱지 않은 반응이다. 마포에 적을 두고 있는 비영리민간단체 ‘환경과 사람’의 임용호 대표는 “(마포대로는) 해외 유명인사들이 서울 시내로 갈 때 꼭 지났다는 뜻에서 ‘귀빈로’라는 별칭이 있는데 갑자기 사우디의 도시 이름으로 바꾼다니 황당하다”며 “마포구만의 문제를 떠나 서울 전체의 역사성이라는 측면에서 이번 사안을 바라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마포구 토박이 주민 송영철(63)씨는 “토정동, 풍무골, 망원정 등 마포의 수백년 된 동네이름들이 사라지고 있는데 외국 도로명이 들어온다니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 기업이익도 좋지만 옛것에 대한 보존의식이 너무 없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에쓰오일 때문에? “말도 안돼”

하지만 이미 서울 중심부에 외국 지명을 딴 거리와 공원들이 여럿 있는 만큼 문제될 게 없다는 주장도 있다.   

서울시는 1977년 이란 테헤란시와의 자매결연을 기념해 강남구에 ‘테헤란로’ 명칭을 지정한 바 있다. 한불수교 100주년을 기념해 강서구 목동에 파리공원을, 터키 수도와 자매결연하면서 여의도의 한 휴게공간을 앙카라공원으로 명명했다. 

▲서울 마포구 마포대로의 19일 오후 모습. (사진=도기천 기자)


안 교수는 이들 지역의 역사성이 마포대로의 위상과는 차이가 크다고 지적했다.  

안 교수는 “테헤란로는 강남 개발 초기에 지정된 명칭이라 역사보존을 운운할 경우가 아니었으며, 공원은 도로와의 상징성이 전혀 다르다”며 “우리 전통이 담긴 고유 지명을 바꾸는 것보다는 새로 짓는 건축물이나 신도시의 도로에 사우디 측이 원하는 이름을 붙이면 서로 모양새가 좋게 된다. 신도심은 미래를 상징하는 만큼 양국이 앞날을 약속한다는 의미도 담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마포구는 이번 논란이 곤혹스런 표정이다. 마포구 관계자는 CNB에 “아직 정부의 적극적인 협조요청이 없는 상태라 뭐라 말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다”면서도 “기업의 요구에 따라 구 행정이 좌지우지 될 수는 없는 만큼, (외교부 요청이 들어오면) 주민·전문가 의견을 최대한 수렴해 신중하게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에쓰오일 관계자는 “외교부가 답변할 사항”이라며 취재에 응하지 않았다. 

(CNB=도기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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