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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억 혈세낭비? 국회 컴퓨터 교체의 ‘불편한 진실’

교체 전·후 정밀분석해 보니 “바꿀 때 됐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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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정의식기자 |  2016.05.27 10:15:25

▲지난 2010년 도입된 국회 PC(왼쪽)와 최근 교체 중인 신형 국회 PC. (사진=정의식 기자)

20대 국회 개원을 앞두고 국회 사무처가 국회의원 300명과 보좌진 2700여 명의 컴퓨터를 신제품으로 일괄 교체하고 있는 것에 대해 논란이 일고 있다. “아직 충분히 쓸 수 있는 PC를 굳이 새 것으로 교체했다”며 ‘혈세 낭비’를 주장하는 이도 있고, “6년간 사용했다면 바꾸는 게 맞다”는 의견도 있다. 논란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 전문가의 도움을 얻어 교체 전과 후의 PC를 비교해봤다. (CNB=정의식 기자)

보좌진 등 3000대 전면교체
‘듀얼 PC’ 방식 느리고 불편
업무효율·예산절감 대책 ‘시급’

▲구형 국회 PC의 측면부. 일반적인 PC의 포트들이 배치돼 있다. (사진=정의식 기자)

“혈세 낭비라고요? 이 컴퓨터 써본 사람이라면 그런 소리 못할 겁니다.” 

“정말이지 엄청나게 느려요. 속 터집니다.”

26일 오후 국회의원회관에서 만난 의원실 근무자들의 말이다. 이들은 최근 ‘혈세 낭비’라고 지목된 ‘멀쩡한(?) 컴퓨터’를 4년여 간 사용해왔다. 과연 그 컴퓨터의 사양이 어땠길래 이들은 불평을 늘어놓는 걸까.

이들이 사용하는 컴퓨터는 흔히 말하는 ‘일체형 PC’다. 19인치 모니터 후면에는 본체가 붙어 있고, 키보드와 마우스, 2개의 USB 포트, 광학 드라이브가 기본으로 포함됐다. 모델명은 ‘일체형 PC(AR-G66ND)’이며, 제조년월일은 ‘2010. 12’라 명시되어 있다.

▲내장된 2대의 PC ‘업무망’과 ‘인터넷망’을 오갈 수 있는 버튼이 배치돼 있다. (사진=정의식 기자)

특이한 것은 보안을 위해 2대의 PC가 하나의 본체에 들어 있는 ‘듀얼PC’라는 점이다. 모니터 하단에는 3개의 버튼이 있는데, 왼쪽과 오른쪽 버튼은 각기 ‘업무망’과 ‘인터넷망’이라 씌어 있다. 각기 다른 두 대의 PC 전원 버튼이다. 가운데 ‘선택’ 버튼을 누르면 두 PC 사이를 오갈 수 있다. 해킹을 비롯한 사이버 공격이 난무하는 현실을 감안하면, 이러한 설계도 납득이 간다.

문제는 2016년에 사용하기에는 지나치게 오래된 ‘사양’이라는 점이다. 외부와 접속이 가능한 ‘인터넷망’의 CPU는 ‘인텔 코어2듀오 E8400 3GHz’ 모델이며, 메모리 용량은 2GB에 불과하다. 더 심각한 것은 ‘인텔 셀러론 E3300 2.5GHz’ CPU와 2GB 메모리가 탑재된 ‘업무망’이다. 외부 접속이 안 되고, 국회내 자료 열람이 주목적인 것을 감안해도 지나치게 낮은 사양이다.

▲구형 국회 PC의 사양. 위쪽이 ‘인터넷망’이고, 아래쪽이 ‘업무망’이다. (사진=정의식 기자)

코어2듀오 E8400은 2008년 초 출시된 중급형 CPU고, 셀러론 E3300 역시 그 당시에 선택 가능했던 저가형 CPU이지만, 현 시점에 인터넷을 비롯한 여러 프로그램을 사용하기엔 분명 무리가 있는 사양이다. 

 때문에 의원실 근무자들은 그간 ‘업무망’은 내부 자료 검색용으로만 사용하고, 문서 작업 등 대부분의 작업은 ‘인터넷망’으로 처리해왔다. 두 PC간 자료 교환은 ‘공용 USB 포트’에 USB 메모리를 연결하는 방식으로 처리했다. 

당연한 얘기지만 낮은 PC 사양은 여러 애로점을 낳았다. 한 보좌관은 “게임같은 걸 할 것도 아니니 낮은 사양이라도 무방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청문회 자료 같은 건 문서 길이가 장난이 아니다. 문서 작업을 위해서는 여러 프로그램을 띄워야 하는데, 메모리 부족 사태가 발생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그간의 고충을 토로했다.
 

▲20대 국회 개원을 맞아 새로 교체된 신형 국회 PC. (사진=정의식 기자)

화면 커지고 사양 높아졌지만…

그렇다면 새로 도입된 PC는 근무자들의 숙원을 풀어줄 수 있을까? 불행히도 답변은 긍정적이지 못했다. 

이번에 새로 바뀐 PC를 사용하고 있는 또다른 의원실의 한 보좌관은 “새 제품이니 확실히 전에 쓰던 것보다는 빠르지만, 딱히 나아진 것 같지도 않다”며 “과연 비난까지 받아야 할 제품 교체였는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어차피 ‘혈세 낭비’라는 비난을 들을 거라면 좀 더 높은 사양으로 교체하는 게 나았다는 말이다.

▲신형 국회 PC의 측면부. 구형에 비해 많이 슬림해졌다. ‘업무망-인터넷망 전환’ 버튼도 측면에 슬림하게 배치됐다. (사진=정의식 기자)

‘행정자치부 고시 2015-39호 행정업무용 다기능 사무기기 표준규격에 따른 듀얼PC’로 명명된 신형 PC는 확실히 6년전 모델보다는 여러 면에서 개선됐다. 

우선 모니터가 4:3비율의 19인치에서 16:9 비율, 1920×1080 풀HD 해상도의 24인치 대형 화면으로 교체되어 작업영역이 훨씬 넓어졌다. 본체도 슬림화되어 이전 모델처럼 모니터 뒷면의 큼직한 공간을 차지하지 않는다. 얼핏 보면 그냥 모니터로 보일 정도다.

속도를 좌우하는 주요 사양도 ‘인터넷망’은 ‘인텔 코어 i5-4590 3.3Ghz’ CPU에 4GB 메모리, ‘업무망’은 ‘인텔 코어 i3-4170 3.7Ghz’ CPU에 4GB 메모리로 나쁘지 않다. 두 CPU 모두 2014년에 출시된 ‘4세대 하스웰 리프레시’ 모델로 이전에 비해 성능이 크게 개선됐다.

▲신형 국회 PC의 사양. 위쪽이 ‘인터넷망’, 아래쪽이 ‘업무망’이다. (사진=정의식 기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형 PC 사용자들이 성능 차이를 크게 체감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 번째는 현재가 2016년임에도 불구하고 2년 전에 출시된 하스웰 CPU를 채용했다는 점이다. 5세대 브로드웰, 6세대 스카이레이크 CPU가 이미 시장에서 대중적으로 사용되고 있고, 가격도 별 차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2년 전의 CPU가 사용됐다. 향후 6년간 사용될 것을 감안하면 가능한 한 최신 CPU를 탑재했어야 했다.

두 번째는 체감 성능 향상에 큰 효과가 있는 것으로 드러나 최근 대부분의 PC에 채택되고 있는 ‘SSD(Solid State Drive)’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신형 PC는 1TB 용량의 하드디스크 1개만 탑재되어 있었는데, 이는 느린 구동속도의 문제도 있지만, 바이러스·해킹·고장 등으로 인한 데이터 손실의 우려도 클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에 출시된 대기업 브랜드 일체형 PC의 경우 6세대 스카이레이크 코어 i5 CPU에 별도의 SSD 드라이브, 8GB 메모리를 갖추고도 가격이 120만 원대에 불과하다. 중소기업 제품의 경우는 20~30만원 더 저렴하다. 비슷한 사양의 데스크톱 PC들은 일체형 PC보다 더 저렴하면서도 강력한 성능을 보여준다. 

상당수의 의원실 근무자들은 집 또는 이전 근무지에서 이같은 사양의 PC들을 사용한 경험이 있을 것인데, 그런 경우 ‘신형 듀얼 PC’의 성능 향상을 체감하기는 쉽지 않다.

▲시중에서는 신형 국회 PC보다 더 나은 사양의 일체형 PC가 보다 저렴한 가격에 판매되고 있다. (사진=다나와 캡처)

“사기업에 다니는 동료는 2년마다 새 PC로 교체해준다는데, 우리는 6년째 같은 PC를 쓴다 하니 웃더라.”

“컴퓨터가 느려도 다 같은 걸 사용하는 상황에서 불평하기가 쉽지 않았다. 게다가 세금으로 구입한다는 것을 감안하면 더더욱 꺼내기 어려운 말이었다.”

이처럼 이번 국회 PC 교체는 “늦어서 문제였지 ‘혈세 낭비’로 지탄받을 일은 아니었다”는 게 여러 의원실 실무자들의 공통된 말이다.  

국회 PC는 ‘60개월 리스’ 방식으로 구입한다. 리스기간이 만료된 PC는 조달청이 회수하여 재활용한다. 

전문가들은 사기업의 사례를 감안해 리스 기간을 3년 내외로 줄이고, 사용연한이 만료된 PC는 필요한 곳으로 재배치하는 것이 국회의 업무효율도 높이고 세금도 아낄 수 있는 방안이라고 지적한다. 

국회의원 300명과 보좌진을 합치면 이번 교체대상 컴퓨터는 3000여 대, 비용은 52억원 가량이 소요된다. ‘대당 174만원’이라는 비싼 가격의 ‘듀얼 PC’를 고집하기보다는, 의원실에 ‘업무망 접속용 컴퓨터’ 1대를 별도로 설치하고, 나머지 PC는 빠르고 편리한 ‘일반 PC’로 통일하는 방안을 검토해보는 것은 어떨까?

(CNB=정의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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