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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천경자=미인도’는 5공 신군부가 탄생시켰다

“김재규 집에서 나온 것 아냐…군부가 조작 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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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도기천기자 |  2016.06.20 09:04:17

▲1979년 12월 8일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한 뒤 공개재판을 받고 있는 김재규 중앙정보부장. 함께 행동했던 직속부하 박흥주와 박선호에게 뭔가 말하고 있다. 신군부 세력은 이날 재판 직전에 김재규의 비리를 발표했는데 그 중의 일부가 ‘김재규 집에서 고서화 1백여점이 발견됐다’는 것이었다. ‘미인도’는 이렇게 탄생한 것으로 짐작된다. (사진=문화체육관광부 e영상역사관)

국립현대미술관이 고(故) 천경자 화백(1924~2015년)의 작품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미인도’의 진위 여부를 가리기 위한 검찰 수사가 본격화 된 가운데, 미인도가 1979~1980년 신군부의 정권 찬탈 과정에서 탄생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 수십년 간 계속돼온 미인도 논쟁은 “(당시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집에서 고서화 1백여점이 발견됐다”는 1979년 12월 8일 신군부의 발표에서 비롯됐는데, 당시는 신군부가 김재규를 파렴치한 부정축재자로 몰아 쿠데타의 명분을 확보하려던 시기였다. 따라서 미인도 자체가 신군부에 의해 가공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지만, 이런 의혹은 미술계의 위작 공방에 가려져 왔다.
   
이에 CNB가 언론 최초로 당시 발표에 대해 ‘합리적인 의심’을 품기로 했다. 김재규, 천경자, 미인도를 김재규에게 전달한 것으로 알려진 오모 씨 모두 유명을 달리했기에 CNB 취재는 당시 자료와 주변 생존자들의 증언을 통해 구성됐다. (CNB=도기천 기자)

김재규 집에서 나왔다는 그림들 오리무중  
‘부정축재 혐의’ 당시 재판 기록에 없어
재야원로들 “신군부 발표 새빨간 거짓말” 

미인도 위작 논란은 1991년 4월 천 화백이 직접 가짜 의혹을 제기하며 불거졌다. 당시 국립현대미술관(이하 현대미술관)은 ‘움직이는 미술관’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미인도를 복사해 보급하고 있었다. 뒤늦게 이를 알게 된 천 화백은 “내가 그린 그림이 아니다”고 언론에 알렸다.  

그러자 그림 원본을 갖고 있던 현대미술관 측은 “미인도가 1979년 10‧26(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을 일으킨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의 소장품이며,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전두환·노태우 등 신군부세력)가 수사 과정에서 압수해 재무부로 넘겼고 이후 문화공보부를 거쳐 현대미술관에 보관돼 왔다”며 “감정 결과 천 화백의 작품이 분명하다”고 발표했다. 

이후 25년간 양측의 진실공방이 계속돼 왔고, 미술계 또한 양분돼 미인도 위작 논란에 휩싸였다. 이런 가운데 천 화백은 지난해 8월 미국에서 생을 마감했다. 

이후 천 화백의 차녀 김정희 교수(美메릴랜드주 몽고메리대 미술과)는 “미인도가 천 화백의 작품이 아님에도 진품처럼 주장하고 있다”며 바르토메우 마리 국립현대미술관장 등 6명을 사자명예훼손, 저작권법 위반, 허위공문서 작성 및 행사 혐의로 고소·고발했다. 서울중앙지검 형사6부(배용원 부장검사)는 지난 8일 현대미술관으로부터 미인도를 제출받아 감정에 착수했다. 

▲계엄사 합동수사본부는 1979년 12월 8일 “김재규의 집에서 고서화 1백여점이 발견됐다”고 발표하면서 목록은 공개하지 않았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이 고서화들 중 하나가 ‘천경자 화백의 미인도’였다고 밝혔지만 천 화백은 죽는 날까지 ‘내 작품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합수부 발표 내용을 보도한 당시 경향신문(왼쪽)과 미인도.


현대미술관이 지난해 11월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의원에게 제출한 ‘천경자 작(作) 미인도 위작 시비 경과 보고’ 문건에 따르면, 현대미술관이 문화공보부로부터 그림을 이관 받은 시점은 1980년 4월 30일이었다. 

앞서 신군부는 1979년 12월 8일 김재규의 비위 사실을 발표했다. 공금 10억 횡령, 재직 당시 땅 2만평 매입, 5억원 비자금 조성, 수백평 호화주택 개축 등 비리를 저질렀다는 주장과 함께 “주방 냉동실에 고기류가 즐비했고, 썩어서 버리면서도 한집에 근무하는 경비요원, 운전수에게는 먹이지 않았다” “유부녀를 간통 후 소실(후처)로 삼았다” 등 인신공격성 내용이었다. 

특히 신군부는 “호화자개장, 고려청자 등 고가 자기류, 고서화 1백여점이 발견됐는데 (너무 많아서) 진열이 곤란하자 그대로 창고에 방치해둔 상태였다”고 설명했다. 신군부와 현대미술관의 주장을 종합하면, 발견된 고서화 1백여점 중에 미인도가 있었으며 창고에 방치된 걸 압수해 미술관 측에 넘겼다는 얘기가 된다.

당시 주요언론들은 발표 내용을 여과 없이 실었고, 일부 신문은 “재판할 가치도 없는 자”라고 김재규를 힐난했다.   

▲전두환·노태우 등 신군부 세력은 김재규를 희대의 패륜범죄자로 몬 뒤, 김재규에게 동조했다는 이유로 계엄사령관인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숙청하고 5.17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했다. 하지만 이들은 김영삼 정권 때 내란죄 등으로 기소돼 옥고를 치렀다. 1996년 8월 26일 12.12 및 5·18사건 등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전두환(오른쪽), 노태우 전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비리 부풀리는 과정서 ‘고서화 1백점’ 등장 

하지만 당시 김재규 구명 및 진상규명 운동을 벌였던 학계·종교계 인사들은 당시 발표가 부풀려졌거나 조작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김재규의 역사 재평가를 주장해 온 재야 원로 함세웅 신부(민주주의국민행동 상임대표)는 지난 16일 CNB기자와 만나 “김재규 집에서 고서화 1백여점(미인도 포함)이 나왔다는 건 신군부의 새빨간 거짓말” 이라며 “당시 재판기록 어디에도 고서화 등에 관한 기록이 없었으며, 신군부가 쿠데타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김재규를 파렴치범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나온 조작된 얘기”라고 강조했다. 

함 신부는 이돈명·강신옥 등 당시 재야 1세대 인권변호사들과 함께 종교계에서 구명운동을 이끌었던 터라 재판의 모든 과정을 기록해둔 인물이다.

2012년 <의사 김재규>를 발간한 도서출판 매직하우스의 백승대 대표도 CNB와 만나 “김재규는 한 치의 사심도 없는 사람이었다. 책을 펴내면서 여러 자료를 수집하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봤지만 그가 비리를 저지르거나 부정축재를 했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김재규가 거금의 비자금을 조성해 호화생활을 누리고 고서화(미인도 등)를 뇌물로 받았다는 신군부의 주장은 쿠데타를 정당화하기 위해 꾸며낸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신군부 세력은 1979년 12월 12일 계엄사령관인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김재규에게 동조했다는 이유로 제거(12.12반란)한 뒤 군부를 장악했는데, 김재규의 비위사실이 발표된 것은 나흘 전인 12월 8일 이었다. 신군부는 또 5.17쿠데타(비상계엄 확대)를 통해 국회를 해산하고 영장 없이 수천여명의 재야 인사들을 구금했으며, 이에 저항하는 광주시민들을 무력 진압(5.18민주화운동)했다. 

신군부 입장에서는 이같은 일련의 폭거가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김재규가 ‘패륜범죄자’로 낙인 찍혀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미인도’가 탄생 했을 것이라는 게 일부 재야인사들의 시각이다.

▲천경자 화백으로부터 미인도를 받아 김재규에게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던 중앙정보부 직원 오모씨는 훗날 여성동아와의 인터뷰에서 ‘와전된 얘기’라며 ‘김재규 전달설’을 부인했다. 당시 인터뷰가 실린 지면.


중정 직원 오씨 “미인도 전달한 적 없다”

천 화백의 유족들도 처음부터 그림이 조작됐을 가능성을 의심하고 있다. 유족 측이 결성한 ‘위작 미인도 폐기와 작가 인권 옹호를 위한 공동변호인단’은 미인도가 1980년 문화공보부로부터 이관 받은 게 맞는지, 애초에 김재규 소장품이 맞는지 등 근본적인 의혹을 제기해 왔다. 

특히 천 화백의 차녀 김정희 교수(美메릴랜드주 몽고메리대 미술과)는 ‘미인도는 1980년에 존재한 그림이 아니다’고 주장하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이 보관해 온 그림은 어머니 천 화백이 자신을 스케치한 후 1981년에 완성한 ‘장미와 여인’을 위작 작가가 복제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실제로 색을 빼낸 뒤 둘을 겹쳐보면, 윤곽선이 거의 일치한다.  

천 화백으로부터 미인도를 받아 김재규에게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던 당시 중앙정보부 직원 오모 씨도 훗날 한 여성지와의 인터뷰에서 ‘전부 와전된 얘기’라고 밝혔다.  

오씨는 “천 화백에게서 그림 한 점을 받은 일은 있지만 천 화백이 돈을 받지 않아 다시 그림을 돌려줬다”고 말했다. 또 “김재규 부장의 집에게 신년하례차 간부 30여명이 함께 방문한 적은 두 번 있지만 개인적으로 찾아간 적은 없다”고 밝혔다. 

천 화백은 생전에 “오씨에게 그림 한 점을 준 적이 있는데, 현대미술관이 갖고 있는 미인도가 아니다. 크기가 작고 전혀 다른 그림”이라고 밝힌 바 있다. 

천 화백과 오씨 모두 사망해 사실관계를 밝히는데 한계가 있지만 두 사람의 생전 주장을 종합해보면, 김재규의 집에서 나왔다는 미인도는 이들이 주고받았다는 그림이 아닌 것은 분명해 보인다. 

▲1974년 교수직 사임 후 해외스케치 여행길에 오른 천경자 화백. 한 시대를 풍미했던 그녀는 1991년 미인도 진위 논란에 휘말려 쓸쓸한 말년을 보내다 지난해 지병으로 세상을 등졌다. (사진=CNB포토뱅크)


사라진 그림들…압수물품 목록 없어
 
신군부가 미인도를 압수할 당시 증거로 남긴 사진이 없다는 점도 의혹을 더한다. 신군부는 압수목록 발표 때 ‘고서화 1백여점’이라고 언급했는데 어디에도 물품목록은 없었다. 언론을 완전 통제하고 있던 상황이라 이에 대해 따진 기자는 아무도 없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현대미술관 측도 미인도를 넘겨받을 때 증거 사진이 없었다고 밝힌 바 있다. 미인도가 문화공보부를 거쳐 현대미술관으로 이관 될 때 공문에는 ‘천경자 미인도 그림 1점 30만원’이라고 적혀 있을 뿐 사진, 규격표시 등은 없었다. 

지난 십수년 간 미인도를 본인이 위조했다고 주장하고 있는 권춘식씨(69)가 최근 검찰조사에서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는 점도 위작 가능성에 무게를 싣고 있다. 권씨는 지난 2월 SBS스페셜 ‘소문과 거짓말-미인도 스캔들’에 출연해 이틀 만에 미인도를 완성하는 과정을 보여줬다. 

앞뒤 상황을 종합해보면, 김재규의 집에서 발견됐다는 미인도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신군부가 김재규를 부정축재자로 만들기 위해 어디선가 가짜 그림을 가져와 압수물품 목록에 끼워 넣었거나 김재규 집이 아닌 다른 경로를 통해 현대미술관에 흘러 들어갔을 수 있다. 1991년 4월 4일 연합뉴스는 미인도가 원래 재무부 청사에 걸려 있던 ‘가짜 그림’이라고 보도한 바 있지만 후속취재는 이뤄지지 않았다. 

▲1974년 해외스케치 여행 이후 화려하고 두꺼운 채색의 ‘천경자식 화풍’이 본격 시작됐다. ‘미인도’는 이 당시 천 화백이 그린 여인상들을 조합해 만든 것으로 짐작된다. (사진=CNB포토뱅크)


신군부 각본에 의해 탄생?

설령 김재규의 집에서 실제로 미인도가 나왔더라도 신군부가 이에 대한 검증을 하지 않았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김재규를 희대의 비리행위자로 몰고 가는 상황에서 굳이 진품 감정을 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한 원로 재야인사는 “없던 것도 만들어서 (김재규의) 죄를 불리고 있던 당시 상황에서 미인도가 가짜로 드러나면 김재규의 비리 발표 자체가 의심 받게 된다. 부정축재 금액을 최대한 늘려야 하는 신군부가 왜 불필요한 일을 하겠냐”고 말했다. 

현대미술관 측의 미인도 인수 과정도 이런 정황을 뒷받침하고 있다. 미술관 측은 그동안 ‘미인도를 감정 한 뒤 가져왔다’고 밝혀왔지만, 당시 미인도를 현대미술관으로 옮겼던 미술평론가 오모 씨(훗날 현대미술관장 역임)는 최근 SBS스페셜과의 인터뷰에서 “(문화공보부에) 작품이 여러 점 있었고 그 중에 가져갈 수 있는 건 가져가라 해서 (미인도를) 가져온 것이며, 감정 같은 건 없었다”고 털어놨다. 

미술계 한 원로인사는 “당시 시대 분위기로 볼 때 신군부가 이미 ‘천경자의 미인도’라고 이름 붙여둔 것을 누가 ‘아니다’고 할 수 있었겠나. 이미 짜맞추어진 각본에 의해 미인도가 탄생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인도는 위작 논란이 제기된 1991년 이후 25년 만에 국립현대미술관 수장고에서 나와 검찰 손에 넘어간 상태다. 미인도가 가짜냐 진짜냐를 밝히는 작업은 미인도의 가치 평가를 넘어, 한 시대와 함께 했던 두 사람(천경자·김재규)의 명예를 규명하는 일임은 분명해 보인다.      

(CNB=도기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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