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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르포] 기로에 선 운명의 바다…대우조선해양 거제조선소에서 ‘희망’ 찾다

까맣게 타들어가는 그들과 ‘10시간 동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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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김유림기자 |  2016.07.20 11:29:14

▲부산과 거제도를 이어주는 거가대교. (사진=김유림 기자)

조선·해운업계가 긴 터널을 지나고 있다. 중국·일본 조선업계의 공격적인 시장 확장, 글로벌 경기악화 등으로 인해 수십 년간 지켜온 세계1위 조선강국의 영예는 빛바랜 초상이 된 지 오래다.

그 중에서도 대우조선해양은 조선업계 추락의 주연이 돼 검찰 타깃이 됐다. 수사와 총파업, 구조조정이 얽혀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대우조선의 거제도 옥포조선소를 CNB가 지난 금요일 찾았다. 여전히 사람들은 분주했고 ‘희망’은 그들을 하나로 묶어세우고 있다. (CNB=김유림 기자) 

구조조정·파업…거제도는 ‘폭풍전야’
발길 끊긴 복덕방·식당 ‘개점휴업’
“지금부터 진짜 시작” 희망 못버려

대우조선해양 조선소는 거제도 옥포동에 자리 잡고 있다. 부산 가덕도와 경남 거제도를 잇는 거가대교를 지나 옥포동으로 가는 길목에 들어서면 ‘대우조선해양’ 마크를 달고 있는 거대한 ‘골리앗 크레인’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옥포동 시내 곳곳에는 대우조선의 회색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다.

▲거제도에 들어서면 대우조선해양 마크를 달고 있는 골리앗 크레인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사진=김유림 기자)

조선·해운업계는 어느 때보다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다. 해마다 수조원대 적자를 기록해온 대우조선을 비롯, 삼성중공업·현대중공업 등 ‘조선 빅3’는 인력감축 등 강도 높은 자구책 시행에 돌입했으며, 채권단 자율협약에 들어간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은 가까스로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한 상태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대우조선은 5조원대 분식회계 혐의로 검찰 수사까지 받고 있다. 이미 남상태(66)·고재호(61) 전 사장이 구속수감 됐으며, 대우조선에 천문학적인 자금 지원을 한 산업은행도 자유롭지 못한 상태다. 

인력감축 등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시작되면서 ‘조선 빅3’와 현대미포조선, 현대삼호중공업, 한진중공업, STX조선해양, 성동조선해양 등이 가입된 조선업종노조연대는 연대 총파업을 예고한 상태다.

이 때문에 언론에서는 연일 거제도를 “길거리가 휑하다”, “어두운 표정의 근로자들”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 금요일 CNB가 만난 거제 옥포동은 겉으로 보기에는 여느 도시와 다를 바 없었다. 길거리에 사람도 많았고, 퇴근 시간이 되자 도로 위는 자동차로 가득 찼다.

▲대우조선해양 근로자들이 옥포조선소 정문에서 퇴근하고 있다. (사진=김유림 기자)

오후 6시. 하루 일과를 마친 대우조선해양 근로자들이 정문에서 나오기 시작한다. 보통의 직장인들과 마찬가지로 퇴근하는 표정이 밝다.

연일 나라 안팎을 떠들썩하게 하고 있는 이 회사 직원들의 속내는 어떨까.

생산라인 근로자 박모 씨(37)는 “비리는 위에서 저지르고 구조조정 한답시고 노동자들만 죽어나가고 있다”며 “주인 없는 회사라서 이런 꼴이 난 것”이라고 말했다.

20년 숙련공인 왕고참 주모 씨(48)는 “20년을 회사를 위해 일했는데 너무 억울하다”며 “이미 협력업체 구조조정은 거의 끝났고, 다음이 우리 차례인데 한 가정을 책임지고 있는 아버지(본인)가 길거리에 나앉게 생겼다”며 한탄했다. 대부분 근로자들은 회사 비리와 경영난을 자신들 탓으로 돌리는데 대해 분개하고 있었다. 

▲거제도 옥포동 길거리에는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하는 대우조선 근로자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사진=김유림 기자)

하청·협력업체 직원들의 두려움은 더 커 보였다. 조선업계 특성상 거제조선소에는 본사 직원보다 연관기업의 근로자들이 더 많다.   

선박 영접 협력업체 직원 김모 씨(45)는 “신규 수주가 끊기면서 직격탄을 맞았다. 예전에는 야근·특근까지 해도 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일이 많았지만, 지금은 하고 있는 공사가 마무리 되면 회사 문이 닫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옆에 있던 동료 정모 씨(42)는 “현장에서 밤새 땀 흘리며 일한 하청업체 노동자들이 무슨 죄냐”며 거들었다.

이들과 딴 세상에 살고 있는 이도 있다. 선박 AS를 전문으로 하는 한 기업의 파견직원 이모 씨(34)는 “우리 회사는 대우조선 이외에도 여러 외국계 회사와 거래하고 있어 별 타격이 없는 것 같다”며 “조선업 불황을 못 느낄 정도로 바쁘다”고 말했다. 이씨의 말을 곱씹어보니 우리나라 수주 물량이 외국으로 많이 넘어갔다는 얘기로 들려 씁쓸했다.

“조선업에 청춘 바쳤는데…”

대우조선 근로자들에게 매출을 의존하던 옥포동 주변 음식점들은 과거에 비해 손님이 크게 줄었다. 

인근 호프집 주인 오모 씨(61)는 “저녁 장사로 먹고 살았는데, 회식이나 직장동료들끼리의 간단한 술자리도 이젠 거의 없어졌다”며 “다시 대우조선이 살아나길 바라지만, 솔직히 희망이 안보인다”고 말했다. 

거제도 맛집으로 알려진 한 장어전골집의 최모(54) 사장은 “예전에는 장어탕 맛집으로 유명세를 타면서 번호표를 뽑아야 할 정도였지만, 지금은 손님이 많이 줄었다. 그나마 다른 곳에 비해서는 사정이 나아 위로삼고 있다”고 전했다.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가 위치해 있는 거제도 옥포동은 현재 부동산 매매 거래가 거의 없는 상태다. (사진=김유림 기자)

대우조선의 위기는 옥포동 부동산 시장에도 쓰나미가 됐다.

“2010년 거가대교가 생기고 나서 부산에서 거제까지 출퇴근이 가능해졌어요. 이때부터 부동산 거래가 꾸준히 감소하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이번에 대우조선해양 때문에 옥포동 아파트 매매는 거의 없다고 보면 돼요”(부동산 중개인 이모 씨(58))

1997년 외환위기(IMF) 때도 대한민국 조선업은 흔들리지 않았다. 대우조선과 삼성중공업이 있는 거제도는 돌아다니는 강아지도 만원짜리 지폐를 물고 다닌다고 할 정도로 호황을 누렸다.

▲거제도 옥포동 길거리를 지나가다보면 대우조선해양이 만들고 있는 선박들을 볼 수 있다. (사진=김유림 기자)

2016년 7월의 거제도는 폭염과 한파가 동시에 몰아치고 있다. 연일 30도가 넘는 날씨지만  3만명의 실직자가 예고된 거제도의 몸과 마음은 얼어붙었다. 청춘을 바친 회사가 비리의 온상이 돼 무너져 가는 것을 바라보는 ‘아버지’들의 속은 까맣게 타들어가고 있었다.

기로에 선 운명의 바다는 그래도 ‘희망’이라는 끈을 놓지 않고 있다.

(CNB=김유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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