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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텔링] 회장님은 ‘딸 같은 비서’를 뭐라고 부를까

대기업 호칭·직급·서열 파괴의 ‘두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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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도기천기자 |  2016.07.29 10:38:59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7월 청와대에서 열린 재계 총수·CEO들과의 간담회를 마치고 대화하며 함께 웃고 있다. 기업문화의 변화를 반영한듯 이날 총수들은 전부 노타이 차림이었다. (맨 앞줄 왼쪽부터)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허창수 GS그룹 회장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 구본무 LG그룹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사진=연합뉴스)

“어제까지 이사님이라고 부르던 자식 연배의 여직원이 갑자기 내 이름을 부르니 몹시 당황스러웠다. 적응하는데 서너 달은 걸린 것 같다” (대기업 임원 A씨)

지난 2000년 CJ그룹이 재계 최초로 직급 호칭을 폐지하고 이름 뒤에 ‘님’자를 붙이면서 시작된 변화는 이제 다양한 형태의 기업문화 혁신으로 이어지고 있다. 호칭 파괴는 물론 정시퇴근 캠페인, 휴가 늘리기, 회의 없는 날, 복장자율화 등 진화의 속도가 예측불허다. 부작용도 있다. 승진해도 ‘옛날 선배’들처럼 어깨에 힘이 들어가지 못한다. ‘연식’이 될수록 밀리는 분위기다. (CNB=도기천 기자)

근무시간 줄이고 휴가 늘리고
‘직급’ 없애고 ‘이름’으로 통일
“승진해도 실감 안나” 부작용도
외래문화 ‘묻지마 도입’ 주의보

변화의 바람은 여러 기업에서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올해 초 스타트업 컬처혁신 선포식을 열어 수평적 조직문화 구축, 업무생산성 제고, 자발적 몰입 강화 등의 3대 전략을 발표한 삼성전자는 지난달 27일 직급 단계를 줄이고 수평적 호칭 등을 시행키로 했다. 불필요한 회의와 야근도 줄이기로 했다. 

이번 개혁안에 따라 임직원 간의 공통 호칭은 ‘성씨+직급+님(예=홍 과장님)’의 형태에서 ‘이름+님(예=홍길동 님)’으로 바뀌었다. ‘선후배님’ ‘영어 닉네임’ 등의 사용도 권장한다. 신속한 의사결정을 위해 직급을 기존 7단계(사원1·2·3, 대리, 과장, 차장, 부장)에서 4단계로 줄였다. 재계1위 삼성의 이런 분위기는 다른 대기업들에도 상당한 영향을 주고 있다.     

LG전자는 팀장없는 날, 회의없는 날, 플렉서블 출퇴근제, 안식휴가제 등을 잇따라 도입한 데 이어 올 연말 또는 내년 시행을 목표로 진급·평가제도 혁신작업에 착수한 상태다. 

직급 체계는 기존 5직급 호칭을 유지하면서도 파트장, 프로젝트 리더 등을 도입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평가제도는 S·A·B·C·D 등 5등급으로 이뤄지는 현행 상대평가제에서 최고 수준인 S등급과 최저인 D등급은 상대평가로 유지한 채 대다수 직원이 받는 A·B·C는 절대평가로 전환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상대평가에 절대평가를 접목하면 프로젝트 성패 여부에 따라 팀 전원이 A등급을 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일부 부서는 팀장없는 날에 맞춰 회의없는 날도 동시에 적용하고 있다.

삼성전기는 지난 5월부터 자율출퇴근제를 도입했다. 정기 회의를 생략하는 부서도 잇따르고 있다. 

SK하이닉스는 마일리지형 신인사제도를 도입한데 이어 조직활성화 차원에서 최근 ‘소중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익명 추천으로 조직 내 숨은 일꾼을 찾아내는 프로젝트다. ‘마일리지 인사’는 누적된 마일리지 점수가 일정부분에 도달하면 승진하는 제도다. 정기승진은 폐지한지 오래다.   

SK텔레콤은 2006년부터 직원들끼리 매니저 호칭을 사용하고 있다. 본부장, 실장 등 간부급을 제외한 직원들은 매니저로 통일됐다. 신세계·롯데·현대백화점 등 유통기업들도 오래전부터 ‘매니저’ 호칭을 사용해왔다.  

▲여성가족부의 ‘기업문화 개선 캠페인’에 홍보대사로 나선 대기업 CEO들. 이들의 홍보 캠페인 모습. (사진=CNB포토뱅크)


사장들 “제발 빨리 퇴근해라” 캠페인

‘저녁이 있는 삶’을 갖자는 분위기도 확산되고 있다. 여성가족부는 지난달부터 정부 핵심과제인 일·가정 양립을 위해 국내 주요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들이 참여하는 ‘기업문화 개선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LG전자 조성진 사장, KT 임헌문 사장, 매일유업 김선희 사장, 포스코 황은연 사장, 한화생명 차남규 사장, 한국IBM 제프리 로다 대표이사, 지비스타일 박용주 대표이사, 문화프로덕션도모 황운기 대표이사 등 8명의 CEO가 홍보대사를 자처했다.  

이들은 ‘정시퇴근이 행복한 출근을 만듭니다’, ‘회의는 짧게, 소통은 깊게!’, ‘일하는 방식의 스마트한 변화, 직원에겐 행복을 회사에는 성장을!’, ‘육아휴직은 배려가 아닌 부모의 권리입니다’ 등의 메시지를 광고 영상물 등을 통해 전하고 있다. 

LG전자 H&A사업본부는 오후 7시30분을 기준으로 업무를 종료하도록 하는 ‘730’ 활동을 시행 중이다. 삼성전자도 평일잔업과 휴일특근을 해마다 줄이고 있다.

경기불황에 어쩔 수 없이 야근을 없앤 기업들도 있다. 조선업 위기를 겪고 있는 현대중공업은 고정연장근무를 전격 폐지했다. 기업문화개선 차원이 아니라 직원급여를 줄이기 위해서다.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도 같은 이유에서 근무시간을 줄이고 있다.

기업들의 휴가도 계속 늘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에 따르면 전국 5인 이상 529개 기업들의 이번 여름휴가는 평균 4.4일로 지난해 4.1일보다 0.3일 늘었다. 이는 2009년(4.4일) 이후로 가장 긴 휴가다. 

주 5일 근무제가 시행된 이후 2011년(4.0일)까지 휴가일수가 줄어드는 추세였으나, 이후 점차 늘어나 올해가 가장 길게 됐다. 삼성전자의 경우 △연차 15일 이상 무조건 사용 △임원은 1주일에 1회 반드시 휴무 등의 새 근로 가이드라인을 전직원에게 전달했다.

▲이달 초부터 평일 반바지 근무가 허용된 SK이노베이션 직원들이 점심을 먹기 위해 회사를 나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일사불란하면 망한다? 

복장 파괴도 이어지고 있다. 무더위가 업무효율을 떨어뜨린다는 판단에서 ‘쿨비즈’(캐주얼복장) 시행이 확산되고 있다. 

현대기아차는 6월~9월말까지 4개월간 ‘노타이, 노재킷’으로 일한다. 금호아시아나그룹, 한진그룹의 ‘대한항공’ 등도 5~9월에 쿨비즈를 시행하고 있다.
 
2000년부터 대부분 계열사에서 비즈니스 캐주얼을 근무 복장으로 시행하고 있는 LG그룹은 6월 초부터 9월 초 사이에는 반팔 남방과 면바지 착용도 허용된다.  

삼성전자는 올해부터 ‘여름철 반바지 출근’을 시작했다. 비즈니스 반바지 스타일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는데, 삼성물산 패션부문에서 운영하는 남성복 브랜드 ‘빈폴’이 가이드라인에 ‘딱 맞다’는 게 알려지면서 때아닌 매출호조로 이어지고 있다. 수원 삼성전자 본사 인근 백화점의 남성복 매장은 전년 대비 90%까지 매출이 올랐다. 

SK그룹은 이미 오래전부터 비즈니스 캐주얼이 정착된 터라 겉옷을 입든 반팔로 다니든 상관없으며, 별도로 정한 쿨비즈 기간도 없다. 

대기업 뿐 아니라 중소·중견기업에서도 이런 문화가 확산되고 있다. 한 중견언론사는 아예 편집국 취재회의를 없앴다. 보수적인 언론사 문화에서 데스크 중심의 회의는 창의성을 저해한다는 이유에서다. 주로 ‘단톡방’에서 아이디어와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 3월 ‘스타트업 삼성 컬처혁신 선포식’을 갖고 기업문화 쇄신에 나섰다. (사진=연합뉴스)


‘변화’보다 ‘소통’이 먼저
 
하지만 자율적인 문화가 확산되는데 대한 우려도 있다. 재계는 대체로 변화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기업별 업무특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신중론을 펴고 있다. 안전과 직결되는 업종인 건설 자동차 조선 철강 등 분야는 여전히 위계질서가 필요하다는 것. 운송·항공업계도 승객 안전을 위해 최소한의 ‘군기’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주로 남자들이 많은 건설업 특성상 너무 심한 변화는 역풍을 맞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항공업계 종사자도 “기장들이 대부분 공군장교 출신이라 수직적인 질서가 엄격하다”고 전했다.  

직급 체계 단순화가 오히려 직원들의 사기를 떨어뜨린다는 지적도 있다. 한 대기업 직원은 “직급이 줄어들어 3~4년 주기의 승급 기회가 7~8년으로 길어지게 됐다. 직원들 사이에 일할 맛이 안나다는 말이 많다”고 전했다. 이른바 ‘명함 바꾸는 재미’를 앗아갔다는 것. 

이러다보니 서열을 폐지했다가 다시 부활시킨 기업도 있다. KT는 2012년 ‘매니저’로 직급을 통일했지만 2014년 황창규 회장이 취임하면서 다시 예전 직급제로 돌아갔다. 공기업 잔재가 남아있는 기업문화와 승진의욕 감소 등이 문제가 됐다. 

한화그룹도 매니저 제도를 도입했다가 2015년 직급제를 부활시켰다. 근속연수에 관계없이 매니저로 불리다 보니 위아래도 불확실하고 승진 동기도 축소됐다는 이유에서다.  

은행권이 옛날 직급체계를 고집하는 것도 비슷한 이치다. 은행에는 계장, 주임, 부부장 등 다른 업종에서는 찾기 힘든 호칭·직급이 수십년간 이어져 왔다. KEB하나은행·KB국민은행·신한은행·우리은행 등 4대 은행 모두 10~12개 직위를 두고 있다. ‘주임-계장-대리-과장-차장-부지점장(부부장)-지점장(부장,센터장)-본부장-임원’ 체계다. 

정세현 경영컨설턴트는 “서구적 기업문화를 ‘묻지마’ 식으로 도입하는 건 되레 역효과를 초래할 수 있다. 직급과 호칭을 바꾸는 게 우선이 아니라 어떻게 소통하는 문화를 만드느냐가 더 중요하다. 소통만 잘되면 문화는 얼마든지 몸에 맞게 바꿔 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CNB=도기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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