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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씁쓸한 8.15…올해도 광화문광장에 태극기 못 단다

서울시 vs 보훈처 ‘팽팽’…정부 중재 사실상 ‘불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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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도기천기자 |  2016.08.12 13:12:37

▲폭염이 맹위를 떨치고 있는 지난 11일 서울 광화문 광장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이 힘든 표정으로 걷고 있다. 이들의 뒤로 서울시가 광복절을 맞아 설치한 대형 꽃태극기가 보인다. 시는 광화문에 일시적으로 꽃태극기를 설치했지만, 보훈처의 광화문 광장 내 대형태극기 게양 요구에는 응하지 않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서울 광화문 광장에 대형태극기를 설치하려던 보훈처와 이를 불허한 서울시가 갈등을 빚으며 행정조정에 들어간 지 8개월이 지났지만, 해당 정부기구인 행정협의조정위원회(행조위)가 단 한 차례도 조정회의를 열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올해 광복절에는 광화문에서 대형 태극기를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던 보훈단체들은 허탈한 표정이다. 반면 각종 민주화운동 관련 정부위원회 심의는 상대적으로 활발해 형평성 논란이 일고 있다. (CNB=도기천 기자)

정부, 8개월 간 조정 회의도 못 열어
보훈단체들, 행조위 조속한 결단 촉구 
서울시 “광장 의미 사라져” 반대 고수
양측 치킨게임…‘광화문 태극기’ 표류

행조위를 주관하고 있는 국무총리실 소속 국무조정실 관계자는 12일 CNB에 “(광화문 광장 태극기 설치에 대한) 서울시와 보훈처 간의 입장 차이가 커 아직 조정회의를 열지 못하고 있다”며 “광화문이 국가의 상징적인 장소인 만큼 권고안을 내는 것보다 양측이 합의하는 선례를 남기기 위해 실무 논의를 계속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무총리실 소속의 정부위원회인 행조위는 중앙행정기관과 지방자치단체가 업무를 둘러싸고 마찰을 빚을 때 이를 조정하는 기구다. 강제권은 없고 권고만 할 수 있다.

행조위에 따르면, 서울시는 태극기와 게양대의 규모가 커 경복궁·인왕산 경관을 헤칠 우려가 있고 ‘광장’이라는 용도가 훼손될 수 있다며 반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반면 보훈처와 보훈단체들은 서울시가 애초 약속을 어겼다고 주장하고 있다. 여기다 행조위의 조정 시한이 법에 명문화돼 있지 않아 차일피일 지체되고 있다.    
  

▲보훈처는 한국전쟁 중 ‘9.28 서울 수복’ 때 중앙청에 태극기를 게양한 역사성을 감안해 당시 중앙청 자리(현 광화문)와 가장 가까운 광화문 광장에 태극기를 상시 게양하자고 서울시에 요구하고 있다. 사진은 1993년 9월 28일 서울수복 기념행사에서 6.25 참전용사들이 중앙청 태극기 게양을 재현하고 있다. (사진=문화체육관광부 e영상역사관)


태극기 논란은 1년 2개월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난해 6월 서울시와 국가보훈처는 광복 70주년 행사의 일환으로 ‘광화문 광장 대형태극기 설치를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보훈처는 광화문 광장에 높이 45.815m의 대형 태극기를 ‘영구적’으로 설치하는 방안을 추진했으나, 서울시는 ‘한시적’ 설치만 가능하다며 이를 거부해 마찰을 빚었다. 시는 광화문광장 옆 시민열린마당에 8월15일부터 연말까지만 태극기를 설치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MOU에는 태극기를 언제까지 설치한다는 문구가 없어 양측은 아전인수 격으로 상반된 주장을 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당시 언론 인터뷰에서 “태극기 설치 자체를 반대하지 않는다. 다만 항구적으로 광장에 뭔가 설치하는 건 조심해야 하며 한시적으로 설치하거나 이동할 수 있게 하면 좋겠다는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반면 보훈처는 한국전쟁 중 ‘9.28 서울 수복’ 때 중앙청에 태극기를 게양했는데, 당시 중앙청 자리(현 광화문)와 가장 가까운 곳이 광화문 광장이라 상징성이 큰 만큼 ‘상시 게양’ 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보훈단체들도 성명, 기자회견, 서울시 항의방문을 이어가며 시를 압박했다. 

하지만 시가 ‘한시적 설치’ 입장을 굽히지 않자 보훈처는 지난해 12월 행조위에 행정조정을 신청했다.

▲국가보훈처가 서울시에 제시한 광화문광장 태극기 게양대 예상도. (보훈처 제공)


서울시 ‘광장 지키기’ 왜?

이로써 일단락되는 듯 했던 ‘태극기 논란’은 올 들어 다시 점화됐다. 

대한민국상이군경회(상군회)와 4.19민주혁명회 등 14개 국가보훈단체가 연대해 중앙보훈단체안보협의회(회장 김덕남)를 지난 2월 발족하면서 ‘광화문 태극기 상시게양’을 첫 사업으로 공표한 것. 

협의회는 상군회를 비롯, 대한민국재향군인회, 전몰군경유족회, 재일학도의용군동지회, 4.19혁명희생자유족회, 6.25참전유공자회, 월남전참전자회 등 국가보훈처 산하 보훈단체들이 총망라된 기구다. 

이들은 박원순 서울시장과의 면담을 요구했지만 보훈 담당인 복지정책과와 광화문 광장 관리를 맡고 있는 자치행정과가 서로 책임을 미루면서 시일이 지체됐다. 결국 류경기 서울시 행정1부시장이 지난 3월 보훈단체 대표단을 면담했지만 접점을 찾지 못했다.

시는 보훈단체들의 요구에 대한 답변공문에서 “광화문광장은 시민참여와 소통이 가능한 ‘비움’ ‘열린’ 공간의 취지에 따라 영구시설물 설치를 일관되게 지양해 왔다. 경복궁과 북악산의 조망권, 시민들의 이용편의 등을 고려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며 사실상 거부의사를 밝혔다. 

이처럼 양측의 입장 차가 커 행조위 중재가 난항을 겪으면서 이번 광복절에도 광화문 광장에서 태극기를 볼 수 없게 됐다. 

보훈단체 안팎에서는 서울시 입장을 일부 받아들여 호국보훈의 달과 광복절이 있는 매년 6~8월에만 한시적으로 태극기를 달자는 말도 나오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운 얘기다. 

태극기를 게양하지 않는 기간에는 대형 국기게양대가 빈 공간이 돼 흉물스럽게 비춰질 수 있기 때문. 국가상징물을 자주 올려다 내렸다 하는 것이 관례에 맞지 않는데다, 광화문이 외국인들이 많이 찾는 명소라는 점에서 외교 품격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상이군경회 이수덕 기획실장은 CNB와 만나 “태극기는 국가의 상징인데, 이 상징물을 일정기간에만 게양하자는 건 말이 안 된다. 중재안 자체가 성립될 수 없는 사안”이라며 “따라서 정부가 입장을 정해 조속히 권고안을 내 국론분열 상황을 끝내도록 해주는 게 최선책”이라고 말했다.     

▲행자부 최근 자료에 따르면, 정부 산하 총 34개 위원회의 연 평균 회의 횟수는 4.3회였다. 하지만 광화문 광장 태극기 설치와 관련된 행정협의조정위원회 회의는 보훈처가 행정조정을 신청한지 8개월이 지났지만 단 한 차례도 열리지 않았다. (자료=행정자치부)


보훈단체 역차별 논란
  
한편에서는 정부가 이번 사안에 적극 나서지 못하는 것을 보수단체에 대한 역차별로 보는 시각도 있다.  

행자부 최근 자료에 따르면, 행조위를 포함한 정부 산하 총 34개 위원회의 연 평균 회의 횟수는 4.3회였다. 

이 중 부마민주항쟁 관련자 명예회복 심의위원회,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는 각각 16회, 5회씩 열려 비교적 활동이 활발했다. 한국전쟁 당시 미군이 자행한 노근리 사건을 다루는 ‘노근리사건희생자심사 및 명예회복위원회’는 올해 7억8000만원의 예산을 받았다. 

반면 광화문 태극기 게양 문제와 관련된 행조위 회의는 단 한 번도 열리지 않았다.    

행조위 관계자는 “회의를 열어 권고안을 낼 수도 있지만 강제력이 없어 상대방이 불응하면 어쩔 도리가 없다. 따라서 결정 보다 중재에 힘을 쏟고 있다”고 말했다. 
 
(CNB=도기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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