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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르포] 대구, ‘포스트 박근혜’를 말하다

만촌동에서 칠성시장까지 6Km 걸으며 들어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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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도기천기자 |  2017.03.20 16:51:54

▲서문시장과 함께 대구 전통시장의 양대 축을 이루고 있는 대구시 북구 칠성시장의 지난 17일 오후 모습. (사진=도기천 기자)

대구에 가까워질수록 봄 햇살이 더 따가웠다. 벌써 양지바른 곳에서는 개나리가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었다. 대통령 탄핵 후 일주일이 흐른 지난 17일, 대구를 찾아가 바닥 민심을 들었다. 공원, 시장통, 식당 등지에서 만난 시민들은 거침없이 속내를 털어놨다. 생각보다 변화는 빠르고 크게 느껴졌다. (CNB=도기천 기자)     

탄핵후 첫 불복집회 열리던 날
봄 전령 개나리 꽃망울 터트려

박근혜 바라보는 심정 ‘만감’ 교차
섭섭함·안타까움 넘어 변화 기대감

“안타깝지요, 정말 안타깝지요, 잘못했으니 벌은 받아야겠지만 우리 마음이 좋을 리 있겠어요?”

KTX로 동대구역에 내려 대구 정치1번지로 떠오른 수성구 만촌동으로 이동하는 15분 동안 50대 중반으로 보이는 택시기사는 안타깝다는 말을 여러 번 되풀이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처벌 받는 게 당연하다면서도 몇 번이나 한숨을 쉬었다.

‘80.14%’. 2012년 20대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가 대구에서 받은 득표율이다. 이 택시기사뿐 아니라 대구시민 10명 중 8명이 그녀에게 표를 던졌다. 

대구는 박정희-박근혜 부녀의 사실상 ‘고향’이다. 대구에서 차로 30분 거리인 경북 선산(현 구미시)에서 태어난 박정희는 대구에서 학교를 다녔다. 

그의 딸은 대구에서 태어나 유년기를 보냈다. 서른살 나이에 영남대 이사장을 맡았고 1998년 대구달성구 지구당위원장을 시작으로 정치에 입문해 달성구에서 내리 4선(15~18대)을 했다. 

박정희-박근혜 이름 석 자만 들어도 눈물짓는 이들이 수없이 많은 곳이 대구다. 총선, 지자체, 보궐 등 지난 수십년 간의 모든 공직선거에서 그녀와 함께 찍은 사진 한 장 없이는 명함도 못 내미는 곳이다.    

하지만 탄핵 이후 일주일간 여러 조사기관이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대구 시민의 절반 가량이 박 전 대통령을 구속수사 해야 한다고 답했다. ‘탄핵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답한 이들은 60%를 넘었다.  

▲대구 정치1번지로 떠오른 수성구의 수성구청 앞 도로변 풍경. 명문고들이 몰려있어 ‘대구의 강남 8학군’으로 불린다. (사진=도기천 기자)


마음 돌렸지만 옛 향수는 남아

정말 민심은 돌아선 걸까.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수성구청 인근에 하차했다. 

수성구는 대구에서 가장 ‘핫’한 곳이다. 다수의 국회의원을 배출한 경북고 등 명문교들이 몰려있어 ‘대구의 강남 8학군’으로 불린다. 토박이보다 경북 등지에서 온 외지 출신들이 더 많다고 한다. 들이 신흥부촌을 이룬 곳이다 보니 연령대가 젊고 생각이 비교적 개방적이다. 작년 총선 때는 민주당 김부겸 의원과 비박계 주호영 의원이 수성갑,을에 나란히 당선돼 큰 파란을 일으킨 곳이기도 하다. 

▲대구 시민들이 지난 17일 오후 개나리가 만개한 신천변에서 자전거 라이딩을 즐기고 있다. (사진=도기천 기자)

이곳에서 대구 최대 재래시장인 칠성시장까지 약 6킬로를 걸으며 공원, 식당, 시장통 등에서 바닥 민심을 들었다. 한 중식당에서 혼자 종편(탄핵 관련 뉴스)을 보고 있는 노신사에게 다가가 “대통령이 저리돼서 섭섭하시죠?”라고 말을 건넸다. 잠시 머뭇거리던 그에게서 돌아온 대답은 의외였다. 

“섭섭할 게 뭐 있노. 벌써 맘 떠난 지 오랜기라. 거 공천한 거 봐라. 대구 사람들을 너무 만만케 봐서 저리 된 거 아니겠나” 지난해 총선 과정에서 있었던 ‘진박(眞朴) 내려꽂기’ 때 이미 마음을 돌렸다는 얘기다.  

작년 4월 총선은 친박계의 ‘비박계 학살공천’으로 불릴 정도로 박 전 대통령의 의중이 강하게 작용했다. ‘해도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든 당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공천장에 찍는 도장을 들고 한동안 잠적하기까지 했다. 일명 ‘옥새 투쟁’이었다. 대구는 유사 이래 가장 극심한 공천갈등을 겪었고 그 결과 민주당과 무소속, 비박계가 여럿 당선됐다. 그나마 당선된 ‘진박’ 후보들도 과거에 비해 성적표가 초라했다. 대구 사람들은 당시 상황을 두고 “박근혜의 진지(陣地)가 그때 이미 무너졌다”고 말한다.

마음이 돌아섰다고 옛 향수와 애정까지 사라진 건 아니다. 나이 지긋한 분들은 대부분 박 전 대통령의 구속에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구속 돼야 한다는 이들도 ‘안됐다(안타깝다)’는 말을 빼놓지 않았다.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아직도 대구 시민의 절반은 박 전 대통령의 구속수사에 반대하고 있다. 70% 안팎의 국민이 ‘구속 찬성’인 것과는 온도차가 있다. 탄핵 되던 날 서울 민심이 기쁨, 환호, 정의 같은 단어로 표출됐다면 대구는 안타까움, 착잡함, 실망 등이 빅데이터를 이뤘다. 

▲지난 17일 오후 대구시 수성구 범어네거리에서 친박 단체들이 탄핵 인용 후 첫 불복 집회를 열고 있다. 예전에 비해 참가자 수가 크게 줄어든 모습이다. (사진=도기천 기자)


초라한 친박 집회…시민들 외면

이날 오후 2시경 수성구 범어네거리에서는 탄핵 인용 후 처음으로 불복 집회가 열렸다. 칠성시장을 향해 걷고 있던 발걸음을 그곳에서 잠시 멈췄다. 

집회 참가자 수는 많지 않았다. 300여명 남짓한 이들이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며 헌재와 국회를 규탄했다. 집회 타이틀이 ‘헌재 장례식’인 터라 일부 참가자들은 상복 차림이었다. 대구에서의 첫 탄핵무효 집회인 만큼 9개 친박단체들이 공동위원회를 구성하는 등 공을 들인 행사라고 한다.  

하지만 지난달 26일 탄핵반대집회 때 5000여명이 모였던 것에 비하면 초라한 수준이다. 500여명이 참석한 지난 8일 집회 때보다도 인원이 줄었다. 

자유대한민국지키기중앙회장 김동렬 씨는 연단에서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깨끗한 대통령을 국회와 헌재가 누명을 씌워 탄핵 시켰다”며 울분을 토했다. 태극기행동본부 공동대표 최병국 씨는 “새누리당 배신자들(바른정당)과 야당이 합류해서 이런 결과를 만들었다. 이게 있을 수 있는 일이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집회참가자들은 시종일관 “불법 탄핵 무효”를 외쳤고, 눈물을 흘리는 이들도 많았다. 

▲봄기운이 완연한 대구 신천의 지난 17일 오후 풍경. 이곳은 서울로 치면 한강 같은 곳이다. 물가의 수양버들이 벌써 연두빛을 띄고 있다. (사진=도기천 기자)


범어네거리를 벗어나 신천 둔치공원에 들어섰다. 신천은 서울로 치면 한강 같은 곳이다. 80년대 급격한 도시화에 밀려 생명이 살 수 없는 5급수로 전락했다가 최근 하천 복원 사업으로 3급수 수준으로 올라섰다. 대구시는 2025년까지 물놀이를 할 수 있는 1급수로 바꾸겠다고 공약한 상태다.

이날 대구의 한낮 기온은 17~18도까지 올랐다. 둔치에는 자전거를 타는 시민들과 어린 자녀를 데리고 나온 유모차 부대가 눈에 띄었다. 천변의 개나리는 이제 막 노란 꽃망울을 터트렸고, 수양버들은 벌써부터 연두빛 자태를 뽐냈다.   

자전거를 타다 휴식을 취하고 있던 정화범(46)씨는 ‘대구의 변화는 시간’이라고 말했다.

“박정희 시대의 향수는 50대 이상만 기억하는 추억이고 아픔일 뿐이죠. 지금의 10대에서 30대는 아예 그 시절이 뭔지를 모릅니다. 결국 시간이 흐르면 상식적인 대구가 될 수밖에 없겠죠”

▲대구시 북구 칠성시장의 지난 17일 오후 모습. (사진=도기천 기자)


“생각 바꿔야 경제도 잘돼”

신천 길을 따라 종착지인 칠성시장에 다다랐다. 칠성시장은 서문시장과 함께 대구에서 가장 오래되고 큰 규모의 재래시장이다. 

여기서는 좀 특별한 시간을 갖기로 했다. 평생 대구에서 나고 자란 대학 동창을 15년 만에 만나 ‘백종원의 3대 천왕’에 소개됐다는 석쇠불고기 집을 찾았다. 석쇠불고기는 돼지 다리살을 간장 양념에 숙성시켜 연탄불에 굽는 대구 음식이다.

대구 전통주인 불로막걸리를 주고받으며 정치 얘기를 안주로 꺼냈다. 청소년기 두 아이의 아빠인 그는 “대구가 언제부터인가 수구꼴통 같은 고리타분한 이미지로 인식되고 있다”며 한탄했다. 

“적폐청산이란 건 말이야. 대통령 한사람을 끌어낸다고 되는 게 아니거든. 대구의 교육, 문화, 경제 등 모든 부분을 개혁해야해. 전국에서 가장 보수적인 (대구)교육감이 시국선언한 전교조 교사들을 앞장서서 징계하는 걸 애들이 보면 뭐라고 생각할까? 그런 식이면 미래가 없는 거야. 전부 갈아 엎어야해. 사고가 열려야 경제도 돌아가는 거야“

그 친구와 함께 낮에 걸었던 신천 둔치를 다시 걸었다. 낮보다 많은 사람들이 산책하고, 자전거를 즐기고 있었다. 3월 중순의 저녁 무렵인데도 전혀 춥지 않았다. 누가 대구를 동토의 땅이라고 했던가. 대구의 봄은 벌써 대지를 녹이며 온갖 생명을 부화(孵化)시키고 있었다.   

(CNB=도기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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