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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초등학생 ‘혼밥족’과 헤르만 헤세의 '한스 기벤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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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선명규기자 |  2017.03.20 18:12:37

▲사진=연합뉴스

최근 초등학생 ‘혼밥족’(혼자 먹는 밥)이 늘고 있다는 뉴스를 보고 떠올린 건, 나의 학창시절을 관통하는 1990년대 대치동이었다. 지금은 고유명사가 된 ‘사교육 1번지’의 태동기. 늘어난 학원 간판만큼이나, 학생을 실어 나르기 위한 차들이 학교 주위를 에워싸는 게 흔한 풍경이었다. 오늘날 대치동의 모습은 20년 전에 이미 완성된 것이다. 

나는 여느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사교육 광풍을 타고 학원과 학원 사이를 떠밀려 다녔다. 깊은 밤, 집으로 가는 길은 고단한 회사원들과 지친 아이들의 휘청거림으로 뒤엉켰다. 집 밖에서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아이들은 지금처럼 많지도, 잘 돼 있지도 않은 편의점에서 곧잘 끼니를 때우곤 했다. 바삐 음식을 넘길 때면 왠지 어른이 된 것 같은, 드라마에서 보던 샐러리맨이 된 것 같은 기분에 우쭐하기도 했다. 근래 생겼다고 하는 ‘혼밥 문화’는 나에겐 이미 익숙한 것이었다.

그 무렵 나의 친구이자 위안은 한스였다. 모두의 기대를 받는 영민한 아이. 수영을 하고, 낚시를 하고, 토끼 기르는 것이 최고의 유희였던 아이. 강길을 걷고 강이 주는 모든 것이 좋아 마침내 강물과 하나 된 아이.

헤르만 헤세가 1906년 발표한 <수레바퀴 아래서>의 한스 기벤라트는 독일 남서부의 작은 마을 슈바르츠발트의 자랑이었다. 주(州) 시험을 통과해 튀빙겐의 신학교 수도원에 들어갈 수 있는 자질을 가진 전무후무한 아이이자, 장차 목사나 교수가 되어 집안과 마을을 빛낼 수 있는 아이가 한스였다. 

한스의 일과는 이랬다. 오후 4시에 학교 수업이 끝나면 교장 선생님으로부터 그리스어 수업을 받고, 6시에는 마을 목사에게 라틴어와 종교학에 대해 배운다. 일주일에 두 번, 저녁 식사 후에는 수학 수업이 기다리고 있다. 모든 수업이 끝나면 복습과 예습을 해야 한다. 교육 열풍에 휩싸인 오늘날 대한민국과 19세기 독일이 어딘가 겹쳐 보인다.

한스는 2등으로 주 시험을 통과해 수도원에 입성한다. 합격의 기쁨에 겨워 공부에 더욱 매진한 한스는 그곳에서도 영특함을 인정받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과 낯선 기숙사 생활 때문이었을까. 원인모를 두통과 착시에 시달리던 한스는 결국 수도원 생활을 포기하고 고향으로 돌아온다. 천재 소년이라 칭송하던 주민들은 한스에게 실패자란 낙인을 찍고 외면한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처럼 위태롭게 살아가던 한스는 결국 인생의 수레바퀴를 감당하지 못해 깔리고 만다.

부쩍 길어진 해가 건물 사이로 넘어갈 무렵, 대치동을 찾았다. 창을 두고 어둠과 빛이 교차하는 편의점에는 어린 혼밥족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5~6학년쯤 돼 보이는 한 아이는 컵라면과 삼각김밥을 욱여넣으며, 김 서린 안경을 닦아 내고 있었다. 시간에 쫓기는 듯 손과 입이 분주했다. 무엇이 그 아이를 초조하게 하는지는 충분히 예상 가능했다.

이제와 돌이켜 보면, 시험을 통해 인생의 단계를 밟는다는 것은 고통이었다. 성취의 기쁨은 잠깐이고, 또 다른 시험대에 오를 준비를 해야 하는 막막함은 몸과 마음을 지치게 했다. 한스가 그 어렵다는 주 시험을 통과한 뒤 수도원에서 급격히 무너져 내린 것도 같은 이유 아니었을까, 짐작해 본다. 한스가 고향에 돌아왔을 때 주민들이 어린 그의 실패를 응원해주었더라면 강물에 가라앉지 않고 여봐란듯이 성장했을 거라고, 믿어본다. 

속절없이 타들어 가는 밤. 어느 편의점에서 긴박한 저녁을 보내고 있을 어린 혼밥족들을 생각하니, 영롱한 달빛마저 애잔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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