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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텔링] 딸들의 반란…재계 여성시대 올까

유리천장 두껍지만…‘사모님’ 꼬리표 떼고 홀로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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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도기천기자 |  2017.10.13 11:33:30

▲(왼쪽부터) 임세령 대상 전무, 이서현 삼성물산 패션부문 사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 (사진=연합뉴스, MBN캡처)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 남녀고용평등과 다양성 존중 등 변하고 있는 사회 분위기에 편승해 재계에서 여성들의 역할이 커지고 있다. 섬세함과 세련된 감각을 요구하는 산업분야가 늘면서 여성들이 저성장에 빠진 한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이런 분위기는 보수적인 재벌가(家)에도 영향을 줘 장자·장남 경영승계 원칙을 허물고 있다. CNB가 확 달라진 재계 분위기를 스케치했다. (CNB=도기천 기자)

산업 전반에 ‘우먼 파워’ 부상
재벌家 ‘금녀의 벽’ 깨며 ‘여풍’ 
20~30대 딸들, 경영전면 진출
 
고용노동부 적극적 고용개선조치 전문위원회의 최근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500인 이상 대기업·공공기관의 여성 근로자 고용비율과 관리자비율은 10년 전에 비해 각각 7.03%, 10.17%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기업의 여성비율은 37.80%, 여성관리자비율은 20.39%로 전년(37.79%·20.09%) 대비 각각 0.01%, 0.3% 증가했다. 

증가세가 미미하긴 하지만 대기업의 여성임원도 조금씩 늘고 있다. 여성가족부가 매출액 기준 500대 기업의 지난해 사업보고서를 통해 분석한 여성임원 현황을 보면, 전체 임원 중 여성은 406명으로 2.7%다. 2014년 2.3%, 2015년 2.4%에서 조금씩 증가하는 추세다. 

이 중 여성 임원이 가장 많은 곳은 삼성그룹이다. 기업평가사이트 CEO스코어에 따르면, 삼성그룹의 여성 임원은 83명이었고 그중 삼성전자가 50명이다. 삼성SDS는 6명, 삼성SDI와 제일기획은 각각 3명이었다.

CJ그룹은 여성 임원이 30명으로 삼성 다음이다. CJ제일제당(12명), CJ E&M(6명), CJ오쇼핑(5명), CJ㈜(3명), CJ대한통운·CJ CGV(각각 2명) 순이다. 

이밖에 현대자동차그룹은 21명, SK·LG그룹은 각각 16명, 한진그룹 7명 등이었다. 현대중공업, 에쓰오일, LS 등 8개 그룹사는 여성 임원이 한 명도 없다.

회사 규모는 작은 편이지만 여성임원 비율이 높은 경우로는 시리얼 식품기업인 농심켈로그가 눈에 띈다. 한종갑 대표이사 사장을 포함 총 8명의 임원 중 4명(대표이사, 영업, 공장, IT)이 남성이며 나머지 4명(인사, 재무, 마케팅, 홍보)이 여성이다. 

▲농심켈로그 여성임원들이 회의하는 모습. 이 회사는 임원 8명 중 4명이 여성이다. (사진제공=농심켈로그)


여인천하 ‘유통 빅3’

특히 롯데, 신세계, 현대백화점 등 유통대기업들은 업종 특성상 여성 임원과 여성 근로자가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증가세도 뚜렷하다. 여성 고객 비중이 크다보니 마케팅·홍보·상품개발 등 사업전반에 있어 트렌디 한 여성적 감각이 요구되기 때문. 이들 기업은 육아휴직 기간 확대, 회사 내 어린이집 설치, 임산부 직원을 위한 각종 프로그램 등 여직원 복지 혜택을 경쟁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롯데그룹은 여성 인재 채용을 적극 시행해온 결과, 여성 신입사원 비율이 2005년 25%에서 2016년 40%까지 늘어났다. 2012년에 처음으로 내부승진을 통해 여성임원을 배출했고, 당시 3명에 불과했던 여성임원은 현재 21명으로 5년 동안 7배나 증가했다. 롯데그룹은 앞으로 신입 공채 인원의 40% 이상을 여성으로 선발할 계획이다. 

현대백화점그룹은 여직원 비중이 유통대기업 중 가장 높다. 2012년 33.2%에서 2015년 43.6%, 2016년 43.8%로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여성임원도 현재 13명에 이른다. 이대로라면 2020년 안에 ‘여성이 절반인 회사’를 이룰 수 있을 것으로 예측된다. 

신세계그룹도 꾸준히 여성복지 프로그램 강화하며 여직원 비중을 늘리고 있다. 이마트는 기존 희망자에 한해 승인하던 임신기 2시간 단축 근무를 지난해부터 신청 여부와 상관없이 모든 임신부 직원에게 적용하고 있으며, 신세계백화점은 여성의 생활 패턴을 고려해 자녀들을 걱정 없이 양육할 수 있도록 단축 근무제와 탄력 근무제를 운영하고 있다.

▲금호家 첫 여성 임원인 박찬구 금호석유화학그룹 회장의 장녀 박주형(37) 금호석유화학 상무(왼쪽)와 국내 대기업 여성 임원 중 가장 나이가 젊은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장녀 이경후(33) 상무대우.


재벌 3~4세 젊은女, 재계 리셋 중 

이처럼 산업 전반에 여성 파워가 부각하면서 재벌가의 경영승계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과거에는 여성으로의 경영승계가 남성에 비해 더 따가운 눈총을 받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장자·장남 경영승계 원칙이 무너지면서 ‘딸’들이 전면에 포진하는 사례가 늘고 있으며, 국경을 초월한 4차산업혁명이 도래하면서 나이 장벽도 점차 허물어지고 있다.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장녀인 이경후 상무대우(미국지역본부 통합마케팅팀장)는 국내 대기업집단 계열사 여성 임원 중 가장 나이가 젊다. 작년까지는 1983년생인 대한항공의 조현민 전무가 최연소 자리를 지켰지만, 1985년생 이 상무대우가 올해 임원으로 승진하면서 기록이 깨졌다. 

재계에서는 이 상무대우가 이 회장 자녀 중 맏이인데다 첫 임원 승진이라는 점에서 오너 4세 경영이 본격 시작됐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이 상무대우는 미국 콜럼비아대 석사 졸업 후 2011년 CJ(주) 기획팀 대리로 입사해 CJ오쇼핑 상품개발본부, 방송기획팀, 미국지역본부 등을 거쳤다. 미국에서 CJ 계열사들의 현지 마케팅을 진두지휘해 좋은 성과를 거둔 것으로 알려졌다.    

박찬구 금호석유화학그룹 회장의 장녀인 박주형 금호석유화학 상무(37)는 ‘금녀의 벽’을 깼다는 점에서 주목받는 인물이다.  

금호그룹은 1946년 고 박인천(1901~1984) 창업주가 전남 광주에서 포드 35년형, 내쉬 33년형 등 중고 택시 2대를 구입해 광주 황금동에 ‘광주택시’란 상호로 사무실을 열면서 시작된 기업이다. 당시 박 창업주는 아들만 경영에 참여하고 딸은 일체 회사 일에 관여하지 못하도록 하는 가풍을 세웠다. 

이에 따라 박 창업주의 아들들인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과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이 그룹을 이끌고 있으며, 집안 여성들은 대부분 전업주부의 삶을 살고 있다. 

그런데 박찬구 회장이 딸인 박 상무를 회사 전면에 등장시킨 것. 1980년생인 박 상무는 2015년 7월 금호석유화학의 구매자금부문 담당 상무로 입사하면서 금호가(家)의 첫 여성임원이 임원이 됐다. 부친의 뜻에 따라 활발한 경영행보를 펼치고 있어, 재계에서는 향후 여성 CEO가 될 인물로 꼽고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차녀 최민정(26) 해군 중위(오른쪽)와 어머니 노소영 아트센터나비 관장. (사진=연합뉴스)


“후계 분쟁은 없다”…사이 좋은 자매들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두 딸들도 틀을 깬 인물들이다. 최 회장의 맏딸 윤정(28) 씨는 기존 회사를 퇴사하고 지난 6월부터 SK바이오팜 경영전략실 산하 전략팀에서 선임매니저(대리급)로 근무 중이다. 윤정씨는 오는 21일 결혼을 앞두고 있는데 상대는 전 직장인 베인앤드컴퍼니에서 함께 근무했던 평범한 가정의 일반인이다. 흔히 재벌가에서의 혼사가 정략결혼 성격이라는 점에서 윤정씨 뿐 아니라 최 회장이 파격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여겨진다. 

최 회장의 차녀 민정(26)씨도 재벌가 굴레를 벗어난 여성으로 평가받고 있다. 2014년 해군 소위로 임관해 현재 중위로 복무 중인데, 총수 일가 여성 중에는 최초 사례다. 그녀는 4400t급 구축함인 충무공이순신함의 전투정보보좌관 직책을 수행했고, 소말리아 아덴만 파병 임무를 수행하는 등 군의 인재로 성장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민정씨가 군(軍) 장성 출신인 노태우 전 대통령의 외손녀라는 점에서 군인의 피를 이어 받았다는 얘기가 나온다.    

대상그룹에서는 임창욱 명예회장의 두 딸 임세령(41)·임상민(38) 자매가 여성파워를 과시하고 있다. 지난해 임대홍 대상그룹 창업주가 별세한 뒤 나란히 전무로 승진해 보폭을 넓히고 있다. 임세령 전무는 대상의 식품BU 마케팅담당중역을 맡고 있고, 임상민 전무는 식품BU 전략담당중역 겸 소재BU 전략담당중역으로 근무 중이다. 

재계에선 이들 자매가 본격적인 경영 승계 작업에 들어간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이들이 그룹총수 자리에 오르게 되면 재계 최초의 ‘자매 회장님’이 된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오른쪽 세번째)이 지난달 19일 서울 잠실 시그니엘서울에서 열린 ‘롯데그룹 여성임원 간담회’에 참석해 여성임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경영세습 면죄부 될 순 없어” 

이밖에도 남성 중심의 재벌 1·2세 시대가 저물면서, 뒤를 이어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3·4세 여성 오너들이 많다. 대표적으로 신라호텔 이부진 사장과 삼성물산 이서현 사장 자매, 신세계 정유경 사장, 대한항공 조현민 전무 등이다. 이들 보다 한 세대 앞서 그룹을 이끌고 있는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등은 원조 여성 CEO다.  

CEO스코어가 상위 50대 그룹의 총수 일가 208명의 경영 참여 현황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재벌가 자제들은 평균 29살에 입사해 33살에 임원으로 승진했으며, 이 중 여성의 진출도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 

한국재벌사연구소 이한구 소장(수원대 명예교수)은 CNB에 “여성의 사회참여는 세계적 트렌드이며 재벌가도 예외가 아니다. 총수 2세들의 나이가 대부분 60~70대인데다 자식들 숫자는 일반인에 비해 적은편이다 보니 상대적으로 딸들이 경영에 나설 기회가 확대되고 있는 측면도 있다”며 “인수합병·매각 등 대규모 빅딜에 있어 남성에 비해 결단력이 부족한 면도 있지만, 전반적으로는 여성의 섬세함과 꼼꼼함이 경영에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사회전반의 여성참여와 재벌가 여성세습은 구분해서 봐야한다는 지적도 있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산업계 전반에서 여성파워가 커지고 있는 점은 당연히 바람직한 현상이지만, 그렇다고 경영세습에 있어 여성이라고 해서 남성에 비해 더 용인하는 듯한 분위기는 경계해야 한다”며 “우리나라 재벌만의 오랜 병폐인 세습 경영은 자녀의 성별을 떠나 신중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CNB=도기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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