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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서울 상암동 옛 일본군관사 앞에 ‘소녀상’ 세워진다

일제강점기 병참기지 한복판…아픈 역사 되새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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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도기천기자⁄ 2017.10.25 11:49:21

▲서울 상암동 월드컵파크 10단지 앞에 자리잡은 옛 일본군관사의 25일 오전 모습. 수년간 이 건물을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자 최근 주민들은 여기에 소녀상을 세우기로 했다. (사진=도기천 기자)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이축복원 된 옛 일본군 장교관사 앞에 일제강점기 때 강제로 끌려간 어린 여성들의 넋을 기리는 ‘평화의 소녀상’이 건립 추진 중인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특히 이곳은 맞은편에 일본인학교와 과거 일본군 병력과 군수물자를 실어 날랐던 수색역이 자리 잡고 있어, 역사적 의미와 파장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CNB가 소녀상이 이곳으로 오기까지의 과정과 배경을 단독 취재했다. (CNB=도기천 기자)

흉물 된 일본군관사 앞에 ‘소녀상’ 건립
일제강점기 끌려가던 소녀들 아픔 기려
건너편이 종군위안부 출발역인 ‘수색역’ 

옛 일본군관사 앞에 소녀상을 세우자는 발상은 지난 3월 이봉수 마포구의원(서강·합정동)의 제안으로 구의원 9명이 결의안을 내면서 비롯됐다. 이들은 결의문에서 “잘못된 과거를 부정하고 진심 어린 사과 없이 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했다고 하는 일본 정부를 강력히 규탄한다”며 “아픈 과거를 잊지 말자는 뜻에서 역사전시관으로 꾸면 놓은 일본군관사는 소녀상 건립을 위한 최적의 장소”라고 강조했다.      

이후 이 의원 등은 거리서명, 기금마련 콘서트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쳐왔다. 최근에는 일주일에 2~3차례 마포구 관내 중·고등학교를 순회하면서 학생들을 상대로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그동안 상암고, 홍익대부속여중고, 서울디자인고, 광성중고, 신수중, 창천중 등 20여 곳을 다녀왔다. 오는 28일에는 서교동의 한 카페를 빌려 일일찻집을 연다. 

여기에는 평범한 직장인, 가정주부에서부터 인디밴드, 동물보호단체, 시민운동활동가 등 다양한 이들이 ‘소녀상건립추진위원회(대표 차경숙)’를 구성해 함께하고 있다. 이들은 현재 ‘앉아있는 소녀상’과 ‘서 있는 소녀상’ 등 두 가지를 놓고 여론을 모으는 중이며, 내년 3.1절에 맞춰 제막식을 가질 계획이다.

이 의원은 24일 CNB와 만나 “종군위안부와 강제징용, 강제징집의 역사가 고스란히 단긴 수색역사와 인접한 일본군관사 자리에 소녀상을 건립한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상당히 의미 있는 일인 만큼 열일을 제쳐두고 뛰어 다니고 있다”며 “(소녀상이 건립되면) 마포구가 살아있는 근대역사기행의 명소가 되리라 확신 한다”고 말했다.  

▲마포구민들이 중심이 된 ‘소녀상건립추진위원회’가 홍익대부속여중고 앞에서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사진=소녀상건립추진위 제공)


관할 기관인 마포구청도 적극적인 모습이다. 위안부피해자법(일제하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생활안정지원 및 기념사업 등에 관한 법률) 제11조 따르면, 지방자치단체는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에 관한 기념사업, 역사적 자료의 수집·보존·관리·전시 및 조사·연구, 교육·홍보 및 학예활동, 명예회복을 위한 국제교류 및 공동조사 등 국내외활동 등을 수행할 수 있다. 

마포구 문화진흥과 관계자는 CNB에 “뼈아픈 우리의 근대역사를 잊지 말자는 취지에서 일본군 장교용 관사에 독립운동과 관련된 전시공간을 만들었고, 역사강연과 문화공연을 비정기적으로 추진하고 있다”며 “이런 맥락에서 소녀상 건립 또한 주민여론을 수렴해 지원할 부분이 있으면 적극 검토 하겠다”고 말했다.  

마포구는 지난 2015년 8월 광복 70주년을 맞아 일본군관사에서 ‘한국의 역사 체험’을 주제로 위안부를 소재로 한 김준기 감독의 애니메이션 ‘소녀이야기’와 창작뮤지컬 ‘꽃신’의 갈라쇼를 공연했으며, 지난해에는 ‘일제 강점과 독립운동’이라는 주제로 강연회를 연 바 있다.   

▲일본군관사의 24일 저녁 모습. 거무스름한 외관에 조명시설도 갖춰지지 않아 흉가 같은 느낌이다. (사진=도기천 기자)


소녀상 오기까지 ‘기막힌 사연’ 

일본군관사에 소녀상을 세우려는 데는 오랜 사연이 담겨 있다. 이야기는 200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서울시 산하 SH공사는 상암동에 대규모 택지를 조성하면서 일본군 장교관사로 추정되는 목조건물 22개동을 발견했다. 동네주민들로부터 일본사람들이 거주했던 건물이라는 것을 확인한 SH는 문화재청에 이 사실을 통보했다. 문화재관리법에는 건설사가 택지를 조성할시, 문화재로 추정되는 유물 등이 발견되면 문화재청에 즉시 통보해야 한다. 

문화재청은 지표조사를 통해 “일본군관사 마을이 역사적인 보존가치가 있다”는 결론을 내리고 SH공사 측에 보존대책을 마련할 것을 통보했다. 당시 조사결과에 따르면 일본군관사는 1930년대 일본군 경성사단이 위관급 장교들을 위해 지은 숙소였다. 상암동과 인접한 수색역 일대는 경의선을 통해 전쟁 물자를 수송하던 대규모 병참기지가 있던 자리였다.  

이후 상명대 박물관팀, 한강문화재연구원 등 권위 있는 전문기관들이 발굴조사를 벌였으며, SH공사와 문화재청은 일본군관사 22개동 가운데 상태가 양호한 2개동을 현재 장소(상암동 월크컵파크 10단지 앞)로 옮겨 복원하기로 결정했다. 총사업비 13억원을 들여 3~4년에 걸쳐 작업이 진행됐으며, 2010년 10월경 이축복원이 완료됐다. 

하지만 당시 상암2지구 아파트단지에 막 입주한 주민들이 단지 앞에 복원된 일본군관사를 보고 민원을 넣기 시작했다. 복원된 위치가 학생들의 통학로(관사 바로 옆에 하늘초등학교가 있고, 인근 상지초, 상암중, 상암고로 등교하는 학생들은 관사 옆을 거쳐야 한다) 한복판인데다, 목조건물이라 화재위험까지 안고 있다 보니 반대가 심했다. 거무스름한 외관에 조명시설도 갖춰지지 않아 공포심을 느끼는 주민들도 많았다. (관련기사: [단독]서울 한복판 ‘일본군 관사’ 4년째 흉물방치 ‘왜’ 

▲일본군관사와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일본인학교가 자리 잡고 있다. (사진=도기천 기자)


일본군관사와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일본인 학교가 자리 잡고 있는 점도 의혹을 샀다. 서울시가 복원 부지를 정할 때 일본인 학교 유치를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의심이었다. 
 
더구나 복원비용이 아파트 분양대금에 포함됐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고분양가 논란으로 번졌다. 2011년 국정감사와 그해 10월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는 일본군관사 문제가 정치쟁점으로 떠올랐다. 

논란이 커지자 문화재청은 수차례 심의를 거친 끝에 결국 등록문화재 지정을 보류했다. 수년간 공들여 발굴·복원한 건축물을 문화재로 지정하지 못한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경우다.  

마포구청 또한 한동안 SH공사로부터 일본군관사를 넘겨받지 않았다. 관련법규에 의하면 택지개발지구에서 발견된 유물은 시행사가 보존대책을 수립해 복원 등의 절차를 밟은 뒤 관할 지자체에 기부채납 해야 한다. 

하지만 주민여론을 의식한 마포구는 수년간 일본군관사를 이관 받지 않다가 문화재 지정이 보류된 이후에야 넘겨받아 행정재산으로 등재했다. 

▲마포구는 일본군 장교관사 내부를 독립운동역사관으로 꾸몄다. 그러다보니 독립열사와 일본군장교가 같은 방에 거주(?)하게 되는 모양새가 됐다. (사진=도기천 기자)


소녀상이 일제 잔재 물리칠까

‘애물단지’를 떠안게 된 마포구는 궁여지책으로 일본군관사를 역사전시관으로 꾸몄다. 건물외형과 방공호, 우물, 마당, 정원, 각종 도구와 살림살이 등 주요 복원물은 건드리지 않은 채, 실내 일부 공간에 항일독립운동과 관련된 역사자료를 전시했다. 그러다보니 독립열사와 일본군장교가 같은 방에 거주(?)하게 되는 기막힌 모양새가 됐다. 

인근 아파트에 8년째 거주하고 있는 주부 박모(48) 씨는 CNB에 “밤에는 불빛 한 점 없어 흉가를 보는 것 같아 등골이 오싹하다”며 “전시실을 마련해 역사교육의 장으로 활용한다지만 결국 갓 쓰고 양복 입은 꼴이 된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이처럼 일본군관사가 지역의 골칫거리가 되자 일부 구의원들이 소녀상을 세우자는 안을 냈고, 시민들이 동참하면서 실행에 옮겨지게 된 것이다.  

마포에서 20년째 거주하고 있는 조각가 오종선(50) 씨는 “일본인학교와 병참보급로였던 수색역이 일본군관사와 더불어 삼각대형을 이루고 있어 마치 이 지역이 거대한 일본역사전시관을 방불케 하는데, 그 가운데에 소녀상에 제막되면 일거에 아픈 역사를 되새기는 역사명소로 탈바꿈하게 된다”며 “특히 소녀상 위치가 어린 소녀들이 끌려간 자리(수색역) 바로 앞이라는 점에서 더 의미가 깊다”고 말했다.   

▲소녀상 건립을 최초 제안한 이봉수 마포구의원(오른쪽)이 소녀상 건립 기금마련 콘서트에서 학생들과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소녀상건립추진위 제공)


하지만 건립이 순조로울 지는 장담하기 힘들다. 마포구의회가 적극적인 자세지만 길 건너편에 일본인학교가 자리 잡고 있는 점은 부담이 되고 있다. 

일본인학교는 일본군관사가 복원완료된 시점인 2010년 9월27일 개교했다. 유치원에서 중학과정까지 가르치며 학생수는 400여명 정도다. 원래는 강남구 개포동에 학교가 있었으나, 상암동에 택지가 조성되면서 서울시로부터 부지를 사들여 이전했다. 

또 일부 주민들은 소녀상으로 인해 일본군관사가 영구적으로 자리 잡게 될 수도 있다는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한 주민은 “흉물스러운 일본군관사를 없애는 것이 소녀상을 세우는 일보다 더 시급하다. 소녀상 때문에 관사가 영구보존 되는 건 아닌지 염려된다”고 말했다. 

(CNB=도기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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