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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낯선 나와 마주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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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선명규기자 |  2018.01.11 09:43:54

▲이미지=픽사베이

일어선다. “누가할래?” 부장의 말에 엉덩이가 먼저 반응한다. 오늘도 그렇게 일을 떠맡고 평판을 높인다. 퇴근 후. 신발 벗기 무섭게 소파와 한 몸이 된다. 벗어던진 건 신발만이 아니라 만들어진 미소와 성실(誠實)의 가면이다. ‘분리수거하라’는 아내의 타박에 더욱 눅눅하게 눌어붙는다. 귓전을 찌르는 날카로운 고음에도 꿈쩍하지 않는다. 소파와 만나 물아일체가 된 나, 사서 일을 끌어안고 으쓱해하는 나, 누가 진짜 나인가.

M. 나이트 샤말란 감독 영화 ‘23 아이덴티티’의 케빈은 스물세 가지 자아를 가졌다. 해리성 정체감 장애가 있는, 일명 다중(多重) 인격자다. 개별 자아는 나이도 성별도 자의식도 다르다. 결벽(潔癖)이 있는 데니스, 9살 소년 헤드윅, 여성으로 자각하고 여장(女裝)을 하는 패트리샤. 소녀들을 납치한 데니스, 그런 데니스를 나무라는 패트리샤, 초롱초롱한 눈으로 소녀들을 흥미롭게 바라보는 헤드윅. 진짜 케빈의 모습은 무엇인가.

케빈의 여러 인격을 알고 있는 플레처 박사는 말한다. "뇌스캔을 해보면 그 환자들(해리성 정체감 장애가 있는)은 생각만으로도 몸의 화학적 구조가 바뀌어요"

현관을 사이에 두고 달라지는 나와 케빈은 모두 낯선 인간이다. 내가 봐도, 남이 봐도 하나가 아니다. 시시각각 변한다. 자아를 침범한 이방인이 들끓는다. 분열된다. 회사에선 빠릿빠릿한 동료, 집에선 소파와 분간이 안 되는 인간, 10대 소녀들을 납치해 유린하는 놈, 그 놈을 제지하는 정상적 인간. 당신은 오늘 몇 개의 자아를 품었는가.

2018년도 벌써 열흘이 지났다. 새해다짐 단골문구인 ‘금연·다이어트·운동’이 수년째 책상 한 편에 붙어 있는 것은 아닌지. 매년 허공에 흩어지는 그런 희미한 결심 말고 새로운 다짐을 해보면 어떨까. 나도 모르는 나, 지금껏 몰랐던 진짜 그에 대해 알아보는 것. 올해는 조석으로 찾아오는 이방인들과의 관계를 끊어보자.

오르한 파묵의 장편 ‘내 이름은 빨강’에서 빨강은 말한다. “나는 빨강이어서 행복하다! 나는 뜨겁고 강하다. 나는 눈에 띈다.” 진짜 나를 끌어내 비로소 마주한다. ‘나는 나 자신을 밖으로 드러낸다. 나를 기다리는 여백을 나의 의기양양한 불꽃으로 채우는 것은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나를 보라, 산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산다는 것은 곧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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