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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텔링] 삼성 vs LG ‘TV전쟁’의 숨은 내막

LG, 선제공격 나선 배경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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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도기천기자 |  2019.09.18 10:24:30

4년전 서로 간의 모든 소송을 취하하며 ‘통큰 합의’를 이뤘던 삼성전자와 LG전자가 글로벌 TV시장에서 다시 격돌하면서 과거의 ‘휴전’ 약속이 무색해지고 있다. 한때 ‘기술공유(크로스라이선스)’까지 고려했던 양사가 서로 등을 돌린 이유는 뭘까. 그동안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CNB=도기천 기자)

 

2015년 당시 삼성과 LG 간 합의문. 양사는 법적분쟁을 끝내고 서로 협력하기로 합의했지만 불과 2년 뒤 약속이 깨졌다. (사진=도기천 기자)
 

브라운관→LED→8K, 30년 TV전쟁史
‘미래먹거리’ 사업 혁신…2차공세 배경

삼성, ‘무시→맞불’ 대응전략 전면수정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상호 진행 중인 법적 분쟁을 끝내고, 향후 갈등·분쟁이 발생할 경우 대화와 협의를 통해 원만히 해결하도록 한다.”

2015년 3월 30일 당시 삼성전자 권오현 대표(현 삼성전자 종합기술원 회장)와 LG전자 구본준(구광모 LG 회장의 삼촌) 대표 간의 합의 내용이다. 이에 따라 당시 진행 중이던 삼성과 LG 간의 세탁기 파손 사건,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기술 유출 사건 등 모두 5건의 소송이 전격 취하됐다.

양사는 “엄중한 국가경제 상황을 슬기롭게 헤쳐 나가는데 힘을 모으기로 했다”고 기자들 앞에서 선언했다. 한발 더 나가 물밑에서 합의를 이끌어온 김기남 당시 삼성디스플레이 사장(현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양사가 특허를 공유하는 방안을 생각 중”이라고 밝혀 전세계 전자·IT업계를 긴장시켰다.

하지만 이런 화해무드는 오래가지 못했다.

2017년 10월, 삼성전자가 유튜브에 ‘QLED 대 OLED, 12시간 화면 잔상 테스트’라는 제목의 광고 영상으로 LG전자의 OLED(올레드) TV를 저격하면서 ‘짧은 휴전’이 깨졌다. 이 영상은 삼성과 LG 화면을 비교하는 내용이다. 게이머들이 12시간 연속 비디오게임을 한후 TV를 껐을 때 올레드TV는 잔상(얼룩)이 남았지만 QLED에는 잔상이 나타나지 않았다. 경쟁사 제품을 직접 공격한 도발적인 광고였다.

 

8K TV 시장을 놓고 삼성과 LG가 정면 충돌했다. LG전자는 17일 설명회를 열어 삼성전자의 8K TV가 국제표준에 미달한다고 주장했다(오른쪽). 같은날 용석우 삼성전자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 개발팀 상무가 LG 주장을 반박하는 설명회를 열고 있다(왼쪽). (사진=연합뉴스)

 

‘9월 총공세’ 나선 LG

당시 크게 반박하지 않았던 LG전자는 2년 후 본격적인 반격 포문을 열었다.

지난 6일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유럽 최대 가전·IT 전시회 ‘IFA 2019’에서 LG전자 TV사업운영센터장인 박형세 부사장이 삼성의 QLED 8K(해상도7680X4320) TV에 대해 “해상도 기준으로는 8K가 아니다”, “비싼 8K TV를 사는 소비자들을 오도하는 것” 등 작심 발언을 쏟아냈다.

연이어 이튿날 LG전자는 삼성전자 QLED TV를 겨냥한 광고를 선보였다.

‘차원이 다른 LG 올레드 TV 바로 알기’라는 제목의 이 영상물은 발광다이오드(LED) TV와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TV를 비교하며 올레드TV의 장점을 소개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광고에는 LED TV의 앞글자가 ‘A, B, F, U, Q, K, S, T’ 등으로 교체되는 장면과 함께 “앞글자가 다른 LED TV도 백라이트가 필요한 LED TV”라는 멘트가 나온다. 이어 “백라이트 없이 스스로 빛나는 건 OLED TV뿐”이라고 강조한다.

특히 영상은 LED TV의 앞글자가 ‘Q’가 된 상태에서 비교적 오랜 시간 머무는데, 삼성전자 QLED TV를 겨냥한 것으로 추정되는 대목이다. LED TV에는 백라이트가 필요하기 때문에 블랙 표현이 정확하지 않거나 컬러가 과장될 수 있고 얇아지기도 어렵다는 게 LG 측의 설명이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17일에는 서울 여의도 본사 트윈타워에서 기자들을 상대로 ‘8K TV 기술설명회’를 열었다.

 

지난 6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가전전시회 ‘IFA 2019’에 마련된 삼성전자 전시장에서 관람객들이 ‘QLED 8K TV’를 감상하고 있다. 이 행사에서 LG전자 박형세 부사장은 “삼성의 8K TV는 해상도 기준으로는 8K가 아니다”고 주장했다. (사진=삼성전자 제공)
 

8K기술 ‘정면충돌’…양측 맞불 설명회

이같은 LG의 ‘9월 총공세’는 상당히 정교한 시나리오 하에 진행됐을 것이라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해외(유럽 가전전시회)와 국내(광고, 설명회)에서 동시에 삼성을 공격한다는 것은 충분한 사전준비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특히 17일 설명회에서 삼성전자의 8K TV가 국제표준을 정립하는 ICDM(국제디스플레이계측위원회, International Committee for Display Metrology)의 화질 선명도(Contrast Modulation) 기준을 통과하지 못한 ‘규격 미달’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다. LG 측은 삼성 QLED 8K TV와 LG 올레드 4K TV를 나란히 들고 나와 화질을 비교한 것은 물론 삼성 TV를 부품별로 분해해 전시하는 ‘파격’을 연출했다.

통상 신제품 출시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경쟁사 제품과 ‘비교시연’을 진행하는 경우는 있지만 단순히 경쟁업체의 문제점을 꼬집기 위해 행사를 연 것은 전례 없는 일이다.

일련의 과정을 보면 유럽 가전 전시회에서 경쟁사 제품을 비판한 것은 준비된 ‘선전포고’였고, 이후 일들은 실제 행동에 돌입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CNB에 “유럽 행사장에서의 (박형세 부사장) 발언이 ‘선언적’ 수준이었다면, 그 후는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를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과정이었다. 이런 단계별 플랜을 준비하는데는 최소 수개월 이상 걸렸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또 “수십만명이 방문하는 국제행사에서 한국기업끼리 치고받는 모습을 먼저 보였다는 비난을 감내할 정도라면, 후폭풍에 대비한 다음 단계 시나리오 또한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삼성의 반격을 충분히 대비하고 있을 것이라는 얘기다.

이같은 LG의 공세에 대해 그동안 ‘공개 반박’을 자제해왔던 삼성도 이번에는 적극적인 대응에 나섰다.

삼성전자는 LG가 설명회를 연 날(17일) 서울 서초구 서울R&D캠퍼스에서 ‘8K 화질 설명회’를 열고 LG측 주장을 정면 반박했다. LG전자가 화질 선명도(CM)라는 특정 잣대만으로 8K 기술을 설명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점을 강조하며 ‘화질 비교’ 시연까지 진행했다. ‘맞불 놓기’인 셈이다.

삼성은 유럽 전시회 때까지만 해도 “1등을 헐뜯는 건 기본” “신경 쓰지 않는다”(영상디스플레이(VD)사업부장 한종희 사장)며 ‘무시’ 전략을 구사했지만, 이후 동시다발적인 공세가 계속되자 상황이 심상치 않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13년 연속 세계 TV 시장 1위인 삼성전자 입장에선 자신들의 주력 제품인 ‘QLED’ 시리즈 중에서도 프리미엄급인 8K TV의 품질 논란이 제기된데 대해 자존심이 구겨졌을 수 있다.

 

LG의 삼성에 대한 선제공격은 OLED 사업을 미래먹거리로 설정한 구광모 LG 회장의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지난해 9월 평양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에 경제사절단 자격으로 참석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왼쪽)과  LG 구광모 회장이 평양 옥류관 만찬장에 나란히 앉아있다. (사진=CNB포토뱅크)

 

치킨게임 치닫나? 충돌배경 해석 분분

하지만 미중 무역분쟁과 일본과의 통상마찰 등으로 글로벌 시장 상황이 악화된 가운데,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양대 수출기업인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상호비방’에 나선 것은 국익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특히 양사의 과거 전례로 볼 때 단순히 TV 경쟁에 그치지 않고 다른 제품으로 확전될 우려도 있다.

실제 이들은 2015년 직후의 휴전 시기 외에는 TV, 세탁기, 냉장고 등 주력 분야마다 신제품의 경쟁력을 놓고 한 치 양보 없는 팽팽한 기싸움을 벌여왔다.

1992년 LG전자와 삼성전관(현 삼성SDI)이 브라운관 TV 시장에서 특허권을 놓고 소송전을 벌인 것을 시작으로, 2000년대 들어서는 OLED 특허기술을 둘러싼 법적 분쟁을 수년간 계속해왔으며, 심지어 2014년에는 국제행사장에서 LG전자 세탁기연구소장이 삼성 크리스털 블루 세탁기를 훼손한 사건까지 발생했다.

최근에는 삼성전자가 LG전자의 건조기 논란을 틈타 자사 제품인 ‘그랑데 건조기’ 마케팅을 강화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 8월 한달간 ‘대한민국 안심 건조 페스티벌’을 진행했는데, 이는 누가봐도 건조기 품질 논란을 일으킨 LG전자를 겨냥한 것으로 보였다.

 

전자업계는 삼성과 LG의 TV전쟁이 다른 제품들로까지 확산될 경우, 경쟁국 앞에서 아군끼리 총질하는 격이 된다며 우려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지난 6일 유튜브를 통해 공개한 건조기 ‘그랑데’ 소개 영상의 한 장면. 건조기 품질 논란을 일으킨 LG전자를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유튜브 영상 캡처)
 

이런 앞뒤 흐름으로 볼 때, 이번 ‘TV전쟁’이 쉽게 끝나기는 힘들 전망이다.

더구나 올해 초까지만 하더라도 8K TV 시장이 당분간 급성장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으나 관련 콘텐츠가 쏟아지는 데다 업스케일링(4K 이하 콘텐츠를 8K 화면으로 전환) 기술이 활성화되면서 ‘8K 대세론’이 확산되고 있는 추세라 주도권 싸움은 더 치열해질 전망이다.

일각에서는 작년에 새로 출범한 구광모 회장 체제의 사업혁신이 이번 TV전쟁의 배경이 되고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특히 LG디스플레이는 실적부진을 극복하기 위해 대대적인 조직개편 및 OLED 사업을 대폭 강화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CNB에 “8K 주도권 선점이 향후 글로벌 TV 시장의 패권 장악을 위한 관건이라 판단하고 두 회사가 사활을 건 것으로 보인다”며 “자사 제품이 경쟁사보다 우수하다고 홍보하는 것을 두고 뭐라 할 수는 없겠지만, 서로 간에 최소한의 룰은 지켰으면 좋겠다. 이러다가 다른 제품들로까지 비방전이 확산된다면 결국 중국·일본 등 경쟁국 업체들이 ‘어부지리’로 덕을 보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CNB=도기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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