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태승 우리금융그룹 회장 연임이 복병을 만났다. 금융감독원(이하 금감원)으로부터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와 관련해 중징계를 받은 것. 회장직 연장이 불투명해진 가운데 숙원사업인 ‘우리금융 완전 민영화’ 또한 안갯속 상황에 처해졌다. CNB가 과거부터 미래까지 민영화의 현주소를 들여다봤다. (CNB=이성호 기자)
# 현재… 터널속 갇힌 민영화
금감원은 DLF사태와 관련한 제재심의위원회의 의결안 지난 3일 최종 결재했다. 제재 내용은 손태승 우리금융 회장(우리은행장 겸직)에 대한 ‘문책경고’(일종의 중징계)다.
금감원의 결정으로 손 회장의 거취에 먹구름이 드리웠다.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 등에 따르면 중징계를 받으면 향후 3년간 금융사의 임원으로 취업할 수 없기 때문.
손 회장은 지난해 12월 말 우리금융지주 임원후보추천위원회로부터 차기 대표이사 회장 후보로 단독 추천돼 오는 3월 말 정기주총에서 있을 최종 승인만 기다리고 있었지만, 이번 금감원의 의결로 연임은 사실상 불투명해진 상황이다.
금융권에 따르면, 현재 상황에서 손 회장이 연임을 할 수 있는 방법은 크게 2가지다. 우선, 금감원 제재의 불복절차로 이의신청, 행정심판, 행정소송 등을 제기해 이번 징계안에 대해 다툴 수 있다.
다음으로는 금융위원회의 의결이 미뤄질 경우다. 이번 징계 절차는 금감원 차원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상급기관인 금융위의 최종 의결이 이뤄져야 완성된다.
만약 금융위 의결이 우리금융의 정기주총 이후로 미뤄지면 손 회장 연임이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3월 예정된 정기주총에서 손 회장이 회장으로 선출(연임)된 이후, 금융위 의결이 진행된다면 회장직을 유지할 수 있다. ‘중징계 받은 임원은 취업이 불가능하다’는 의미는 신규취업의 경우를 의미하기 때문에, 이미 회장이 된 경우는 이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이 금융권의 해석이다.
하지만 이 두 가지 방안 모두 녹록지 않다. 먼저 불복조치는 향후 금융당국과 두고두고 척을 지어야 한다는 부담으로 작용하고, 또한 DLF 사태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고 연임을 위한 꼼수로 보일 수 있다는 점에서 싸늘한 여론이 후폭풍으로 예상된다.
금융위 일정 역시 단정하기는 어려우나 주총 전에 제재절차를 마무리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일각에서는 오는 7일 예정된 우리은행 정기이사회에서 손 회장이 직접 거취를 밝힐 것으로 보고 있지만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우리금융 내부에서는 “우리금융지주 이사회가 아닌 은행 이사회에서 본인이 가타부타 직접 입장을 밝히지는 않을 것”이라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이처럼 우리금융의 앞날이 불투명해지면서 최대 숙원인 ‘완전 민영화’에도 일단 제동이 걸린 상태다.
앞서 작년말 우리금융그룹 임원추천위원회(임추위)가 손 회장을 차기회장 단독후보로 추천한 것은 우리금융의 완전 민영화를 성공시킬 적임자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손 회장 거취가 안갯속인 만큼 민영화 작업 또한 멈춰 선 형국이다.
# 과거… 왜 ‘손태승’인가
우리금융 민영화와 손 회장을 ‘한 몸’으로 보는 이유는 손 회장이 과거부터 민영화에 사활을 걸어왔고 그만큼 가시적인 성과를 거뒀기 때문이다.
그 과정은 다음과 같다.
우리금융은 지난 1998년 외환위기 극복과정에서 출범한 국내 최초의 금융지주사다. 1998년부터 한빛·평화·광주·경남은행·하나로종금 등 5개 금융사의 부실을 정리하고 이들을 묶어 2001년 우리금융지주가 설립되는 과정에서 예금보험공사(이하 예보)가 투입한 공적자금은 무려 12조8000억원에 달했다.
즉, 예보가 우리금융 지분 100%를 가지게 됨으로써 금융당국과 우리금융의 숙원은 공적자금 회수를 위한 ‘민영화’였다.
정부의 공적자금 회수를 위한 경영권 매각 과정에서 우리금융의 증권계열은 NH금융, 경남은행은 BNK금융, 광주은행은 JB금융에 각각 인수됐다.
이후 최대주주인 예보가 가지고 있던 나머지 보유 지분 51.06% 중 29.7%를 쪼개서 IMM PE(낙찰물량 6%), 동양생명(4%), 유진자산운용(4%), 키움증권(4%), 한국투자증권(4%), 한화생명(4%), 미래에셋자산운용(3.7%) 등 총 7개사에게 팔았다.
손 회장은 민영화 과정에서 우리금융의 가치를 한층 높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가장 큰 성과는 우리금융을 지주사 체제로 전환했다는 점. 지난 2014년 11월 금융당국은 매각(민영화)에 속도를 내겠다는 명분하에 우리은행을 존속회사로 하고 우리금융지주를 소멸회사로 해 두 회사를 합병했다.
하지만 이 조치는 우리은행의 위상을 실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국내 자산순위 5대 시중은행(신한은행, KB국민은행, KEB하나은행, NH농협은행, 우리은행) 중에서 우리은행만 지주체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은행법상 은행은 자기자본의 20%를 넘어 출자를 할 수 없다. 그러나 지주로 회귀할 경우 130%까지 가능해져 사세를 크게 확장할 수 있다. 이에 손 회장은 지주사 체체로의 복귀를 진행했고 마침내 2019년 1월 주식의 포괄적 이전 방식으로 우리금융지주를 설립했다. 우리은행 및 우리은행의 자회사였던 우리에프아이에스, 우리금융경영연구소, 우리신용정보, 우리펀드서비스, 우리프라이빗에퀴티자산운용이 지주사의 자회사로 편입됐다.
또한 우리금융은 적극적인 포트폴리오 확대 전략을 통해 2개의 자산운용사와 부동산신탁사를 그룹에 신규로 편입시키는 등 종합금융그룹으로서의 구색을 차근차근 갖춰 나갔다. 그룹의 해외 네트워크도 474개까지 늘리며 글로벌 시장 확대와 고객을 위한 디지털 혁신도 지속 추진 중이다.
이렇게 우리금융의 가치를 높인 덕에 실적이 크게 향상됐다. 2019년 3분기 누적 당기순이익이 1조6657억원으로 경상기준 역대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이 같은 손 회장의 리더십은 그룹 내에서 인정을 받았고, 임추위는 우리금융의 새로운 도약을 이끌 적임자로 그를 다시 선택한 것이다.
# 미래… 새인물 찾기 난항
그러나 금감원으로부터 중징계를 받으며 승승가도에 제동이 걸렸다.
금융당국은 예보가 갖고 있는 우리금융 잔여지분을 올해부터 2022년까지 3년 내에 모두 매각할 방침이다. 손 회장이 당초 예정대로 올해 3월 최종적으로 차기 회장으로 결정되면 공교롭게도 그 임기와 정부의 로드맵 기한이 겹친다.
우리금융이 비은행 금융회사의 편입을 통한 자회사간 긍정적 시너지 창출, 수익기반 확충, 글로벌 경쟁력 강화 등을 순조롭게 이뤄내 기업가치를 올리게 되면 결국 국민의 재산인 공적자금 회수 가치도 증대될 수 있다.
하지만 그 선봉장 역할을 해야 할 손 회장의 연임이 불분명해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차기 우리은행장 선출 절차도 멈춰섰다. 애초 임추위는 지난달 31일 차기 우리은행장 최종 후보를 결정할 계획이었지만 손 회장에 대한 제재로 인해 이 일정까지 연기됐다.
은행장은 손 회장과 호흡을 맞춰가며 완전민영화를 일선에서 지휘할 역할이라는 점에서 민영화에 제동이 걸린 것이다.
이런 앞뒤 상황들로 볼 때, 만약 손 회장이 사퇴할 경우, 새 회장을 선임하는 데는 상당한 진통이 따를 것으로 관측된다. 애초에 손 회장이 제재심 등 리스크에도 불구하고 우리금융의 완전 민영화를 이끌 적임자로 유일무이하게 낙점된 것은 한편으로는 대안이 없었다는 것을 방증하기 때문이다.
강행이냐 중단이냐 갈림길에선 손 회장의 선택지와 이후 상황 변화에 초미의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CNB에 “우리은행 노조 등 구성원들은 내부통제 부실에 따른 책임으로 경영진까지 제재하는 것은 너무하다는 시각을 견지하고 있고, 사외이사들 또한 손 회장에 대해 변함없는 지지를 보내고 있다”며 “따라서 현재로서는 완전 민영화를 이뤄낼 대체자를 찾기가 쉽지 않아 별다른 대안이 없어 보인다”고 내다봤다.
(CNB=이성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