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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텔링] ‘금산분리’ 완화에도…총수들 무덤덤한 이유

‘대기업 CVC’ 소 닭 보듯? 제각각 셈법 들여다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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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도기천기자 |  2020.08.05 09:24:06

정부가 대기업 지주회사가 기업형 벤처캐피탈(CVC)을 보유할 수 있도록 방침을 정했지만, 이미 법망을 피해 우회적으로 CVC를 운영하고 있는 대기업들에게는 ‘그림의 떡’이 되고 있다. 현재 롯데, SK, 한화는 CVC를 보유하고 있다. 사진은 각사 사옥. (사진=CNB포토뱅크)

금융당국이 대기업 지주회사가 기업형 벤처캐피탈(CVC)을 완전자회사 형태로 보유할 수 있도록 허용하면서 재계가 술렁이고 있다. 투자의 장벽이었던 금산분리 원칙이 완화됐다는 점에서 일단 환영하고 있지만, 이미 지주회사 밖에 독립적인 금융회사를 차려둔 기업의 경우 지주사 체제로 편입시키기가 쉽지 않다. ‘재벌의 사금융화’를 우려하는 시민단체의 시선도 따갑다. CNB가 ‘동전의 양면’ 같은 CVC를 들여다봤다. (CNB=도기천 기자)

정부, ‘대기업 소유 금융사’ 부분 허용
이미 우회운용 중인 기업들 셈법 복잡
시민단체 반발에 규제도 많아 ‘시큰둥’


“CVC(기업형 벤처캐피탈)가 온전한 모습을 갖추려면 지주사가 CVC 지분 100%를 보유해야 하는데 이게 쉽지 않습니다. 아예 없어서 새로 만드는 건 어렵지 않지만, 이미 가동 중인 CVC를 지주사 밑으로 옮기는 건 꽤 까다롭습니다” (A대기업 임원)

정부는 최근 대기업이 벤처투자에 적극 나설 수 있도록 공정거래법을 연내 개정해 일반지주회사의 CVC 보유를 허용키로 했다. 그동안 금융과 산업간 상호 소유나 지배를 금지하는 금산분리 원칙에 따라 일반지주회사는 금융회사인 CVC를 보유할 수 없었는데 몇가지 조건을 달아 규제를 완화한 것.

우선 일반지주회사가 지분을 100% 보유한 완전자회사 형태로만 CVC를 설립해야 한다. 지분을 일부만 가진 자회사, 손자회사 등의 형태로는 만들 수 없다.

CVC 차입 규모는 벤처지주회사 수준인 자기자본의 200%로 제한한다. 기존 창투사(1000%)나 신기사(900%)보다 축소한 것이다. 또 펀드를 조성해도 총수 일가가 지분을 가진 회사에는 투자할 수 없다. 외부자금도 조성액의 40%까지만 조달이 가능하다.

일단 투자의 발목을 잡아온 금산분리 원칙이 일부 완화됐다는 점에서 재계는 환영하는 분위기다.

전국경제인연합회 배상근 전무는 정부 발표 직후 기자들에게 “이번 정책의 취지는 어려운 벤처기업의 생존과 미래지향적 벤처창업에 도움을 주려는 것인데, CVC가 제한적으로 허용돼서 당초 기대한 효과를 얻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그간 엄격하게 금지되던 일반지주회사의 CVC 보유가 허용된 점은 환영한다”고 말했다.

 

정치권 일부와 시민단체들은 대기업의 기업형 벤처캐피탈(CVC)을 보유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정의당 배진교 의원(가운데)이 지난달 31일 국회 소통관에서 CVC 허용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CVC 내보낸지 1년만에? 골치아픈 롯데

하지만 법망을 피해 이미 우회적으로 CVC를 운영하고 있는 대기업들에게는 당장은 ‘그림의 떡’이 될 수 있다. ‘100% 완전자회사’라는 조건이 달리면서 정리가 쉽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지주사 체제 밖에 있는 계열사나 해외법인을 통해 중소기업창업투자회사(창투사), 신기술사업금융업자(신기사) 등 형태로 CVC를 운영하고 있는 곳은 롯데액셀러레이터(롯데그룹), SK텔레콤벤처캐피탈(SK그룹), 타임와이즈인베스트먼트(CJ그룹), 한화인베스트먼트(한화그룹), 코오롱인베스트먼트(코오롱그룹), 대교인베스트먼트(대교홀딩스), 이수창업투자(이수그룹), 유티씨인베스트먼트(대상홀딩스), 지온인베스트먼트(네오위즈홀딩스), 씨케이디창업투자(종근당홀딩스) 등 수십 곳에 이른다.

롯데그룹의 경우 금산분리 요건을 충족하기 위해 지난해 롯데액셀러레이터를 지주사 밖으로 내보냈는데, 이번에 바뀐 규정대로라면 다시 지주사 밑으로 컴백 시켜야 한다.

롯데그룹은 2017년 10월 지주사(롯데지주) 체제로 전환하면서 보유하고 있던 롯데액셀러레이터 지분을 전부 매각했다. 지금은 호텔롯데(29.96%), 신동빈 롯데 회장(19.99%), KB증권(19.98%), 하나금융투자(19.98%) 등이 롯데액셀러레이터 지분을 나눠 갖고 있다.

물론 롯데가 지금처럼 우회적으로 CVC를 운영할 수도 있다. 하지만 CVC가 지주 체제 내에 있어야 여러 이득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CVC가 지주사 안에 있으면 기업투명성이 강화되고 계열사 간 시너지 효과를 높일 수 있다. 대기업집단은 지주사를 중심으로 계열사와의 자금거래, 출자, M&A(인수·합병) 등이 이뤄지므로, CVC가 지주사와 한 몸처럼 움직일 때 비로소 틀이 완성된다는 얘기다.

여기에다 익금불산입제도(법인이 자회사로부터 지급받는 배당금의 일정 비율을 과세소득에서 제외)에 따라 세제 혜택도 기대할 수 있다.

이는 비단 롯데만의 사례가 아니다. 이미 CVC를 운영하고 있는 대부분 대기업집단은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CNB에 “대부분 CVC가 비상장회사이고 적자회사라서 주식가치를 매기기가 어려운 상황에서 지주사가 주식을 전부 사들여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대기업 지주회사의 CVC 소유 허가와 관련, 여당 내에서도 금산분리 원칙 훼손에 대한 우려가 일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이 지난 6월 ‘CVC 규제완화는 혁신인가? 재벌특혜인가?’ 토론회에서 개회사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재벌家, 주판알 튕기며 ‘눈치’

CVC에 대한 당국의 감시·통제 수위가 높은 점도 기업들을 망설이게 하는 요인이다.

일반지주회사가 보유한 CVC는 출자자 현황과 투자내역, 자금대차관계, 특수관계인 거래관계 등을 공정위에 정기적으로 보고해야 한다. 공정위와 중소벤처기업부, 금융위원회로부터 각종 행위제한과 요건, 투자의무 등에 대한 조사·감독도 받는다.

한편으로는 일부 정치권과 시민단체가 여전히 CVC를 곱지않은 시선으로 보는 점도 부담이다. 참여연대는 총수 일가가 CVC를 통해 계열회사를 우회 지원할 가능성 등 부작용을 우려하고 있다.

특히 투자자금 중 외부자금 비율을 최대 40%로 허용한 점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현재 30대 재벌 대기업의 사내보유금이 950조원에 이르고 있음에도 CVC의 투자펀딩에 외부자금을 허용한 점을 납득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참여연대는 관계자는 CNB에 “재벌 대기업이 외부자금을 활용해 지배력을 넓힐 수 있고, 중소벤처기업을 자본력으로 잠식할 우려가 있기에 추가적인 보완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CVC 자금조달 및 투자구조. (공정위 제공)
 

이런 우려의 뿌리에는 과거 동양그룹 사태 등에서 경험한 재벌에 대한 강한 불신이 자리잡고 있다.

동양그룹 사태는 자금난을 겪던 동양그룹이 2013년 동양증권을 통해 4만여 명의 개인투자자들에게 기업어음(CP) 및 회사채를 불완전 판매해 경제적 피해를 입힌 사건이다. 그룹의 주요 계열사인 (주)동양과 동양레저, 동양시멘트, 동양네트웍스, 동양인터내셔널 등이 연달아 법정관리를 신청하면서 회사채는 휴지가 됐다.

2012년 2천억원대 사기성 기업어음(CP)을 마구 발행한 LIG그룹 오너 일가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경영권을 지키려고 투자자들 돈을 끌어모아 망해가는 LIG건설의 수명을 억지로 연장하려다 수많은 피해자를 양산했다.

이후 금융당국은 대기업의 금융사 소유·지배를 엄격히 금지했다. 금산분리 원칙이 이처럼 투자자 보호를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로서 탄생했다는 점에서, 시민단체들이 이번 CVC 완화 조치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여러 난제들로 인해 대부분 기업들은 정부의 이번 조치를 ‘소 닭 보듯’ 하는 분위기다. 실제 공정위가 지주사가 있는 대·중소기업 68개사를 상대로 CVC 설립 의사를 타진했는데 18개사만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재계 관계자는 CNB에 “지주회사가 100% 지분을 가져야 한다는 요건 때문에 기존 CVC를 갖고 있는 기업의 경우 정리가 쉽지 않은데다, 각종 규제가 많아 부담이 되는 게 사실”이라며 “서두르면 마치 재벌이 금융사를 소유하려는 것처럼 비춰질 수도 있어 시간을 갖고 면밀하게 득실을 분석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정부는 이번 개정안을 올해 안에 국회에 상정할 계획이다. 여당 내에서도 금산분리 원칙 훼손과 재벌의 ‘문어발식 확장’에 대한 우려가 여전해 입법 과정에서 진통이 예상된다.

(CNB=도기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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