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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의 성지 안동, '임청각 복원' 본격 가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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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이경미기자 |  2021.02.25 14:09:28

임청각 복원사업 조감도. (사진=안동시 제공)

경북 안동에 방문하면 꼭 가봐야 할 곳이 있다. 안동댐 초입에 있는 임청각(보물 182호)이다.


임청각은 일제 강점기에 거국음(去國吟,“이 땅에 적의 그물 쳐진 것을 보았으니 어찌 대장부가 제 한 몸을 아끼랴”)을 읊조리며 53세의 나이에 만주로 향해 독립운동에 일생을 바친 석주 이상룡의 생가다.


올해는 일제가 임청각을 반 토막내며 가로질러 설치한 철로가 철거됐다. 이제 임청각 복원도 본격적으로 가시화되고 있다.


안동시는 2018년 임청각 복원 계획을 수립했고 오는 2025년까지 280억 원의 예산으로 임청각을 원형의 모습으로 복구하고 주변을 정비할 계획이다.


지난 1월 30일 임청각 앞 철로가 철거됐고 오는 6월까지 레일과 침목, 자갈, 방음벽, 문화재 조사, 토공, 구조물 순으로 철거 공사가 진행된다.


앞으로 임청각 보수와 함께 멸실된 가옥, 수목, 나루터를 복원하고 주차장‧화장실 등 편의시설도 설치된다. 이와 함께 역사문화공유관 건립 등도 추진될 예정이다.


석주 이상룡은 1858년 11월 25일 안동 임청각에서 태어났다. 원래 이름은 상희였다. 한말 퇴계학통의 유학자로 고성 이씨 17대 종손이다.


1910년 8월 29일 일제의 침략으로 국권이 상실되자 1911년 1월 5일 노비들을 해방시키고 조상 신주를 땅에 묻고는, 힘을 길러 나라를 찾겠다고 고향을 떠났다.


만주로 망명한 후 서간도 최초의 독립운동 조직인 경학사를 만들고 훗날 독립군을 양성한 신흥무관학교의 전신인 신흥강습소를 설립했다.


1913년 독립자금이 부족하자 대종택 임청각을 팔아 군자금으로 보탰다. 1925년 이러한 공로로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에 추대됐다. 하지만 끝내 조국 독립을 보지 못하고 중국 지린성에서 1932년 숨을 거뒀다.


자신을 비롯해 3대에 걸쳐 11명이 평생을 독립운동에 투신하며 조국 독립의 밑거름이 됐다. 1990년이 되어서야 그의 유해가 국내로 봉환됐고 2009년이 되어서야 국적이 회복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제72주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독립운동의 산실이자 대한민국 노블레스 오블리제의 상징적 공간이라고 극찬한 임청각은 오늘날 특히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안동시 관계자는 “임청각 복원을 통해 아픈 역사를 청산해 진정한 독립을 이루고, 기득권을 포기하며 독립운동에 일생을 바친 숭고한 희생을 기리고 본받을 수 있는 살아있는 학습장이 되도록 사업 추진에 만전을 기하겠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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