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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보니&비즈] 스타벅스에서 모닥불을? ‘불멍’ 때리기 체험해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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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선명규기자 |  2021.06.17 09:35:15

스타벅스 별다방점의 명물 ‘모닥불’
작은 불꽃 앞에서 너도나도 멍하니
앞만 보고 달린 나에게 “잠시 쉬어”
1열 명당 차지하려 자리 경쟁 치열

 

 

모닥불이 작은 규모 극장의 스크린처럼 펼쳐졌다. 이 앞에서 사람들은 침묵을 동반한 '불멍'을 때린다. 스타벅스 별다방점의 명물은 바로 지직지직 타오르는 모닥불이다. (사진=스타벅스)


모이지 말고 움직임도 줄이고 마스크 없이는 대화도 금해야 하는 ‘자제의 시대’. 출타는 왠지 눈치 보입니다. 그래서 CNB가 대신 갑니다. 재밌고 새롭고 어쨌든 신선한 곳이라면 어디든가서 발과 눈과 손과 귀에 담은 모든 것을 전해드립니다. 이번 편은 캠핑장이 아닌 실내 카페에서 모닥불에 빠져든 이야기입니다. <편집자주>

 

 


타오르는 장작 앞에서 모두 침묵



‘유리가 뜨겁습니다’

‘화상주의’

경고문이 그악스럽게 붙었다. 이 말을 무시했다간 크게 델지도 모른다. 정말 뜨겁다. 호기심 강한 어린이는 물론이고, 철없는 어른도 조심해야 한다. 방금 새 필름을 붙인 액정 화면 같은 깨끗한 투명벽 너머에서 실제 불이 꿈틀댄다. 75인치 TV 두 대를 나란히 붙인 크기쯤 되려나. 그 안에서 불꽃이 그루브를 타며 춤사위를 뽐낸다. (주)스타벅스코리아가 명동역 인근에 별칭을 그대로 내세워 문 연 스타벅스 ‘별다방점’의 명물은 지직지직 타오르는 모닥불이다.

일고여덟 명 정도 수용 가능한 작은 영화관처럼 생겼다. 사람들은 거기에 둘러앉아 ‘불멍’(불을 바라보며 멍하니 있는 행위)을 누린다. 혼자 찾은 이도, 무리 지어 관객석을 차지한 이들도 있지만 대체로 조용하다. 대화 소리가 조금 들리나 싶다가도 이내 조용해진다. 타오르는 불길에 주의를 빼앗겨 말문이 막히는 것이다.

저무는 태양 아래 수평선처럼 잔잔히 흔들리는 화톳불을 바라보면 내 동공도 진동한다. 작은 움직임 속에 눈을 가만 두고 머리를 비우면 꼬였던 생각의 실타래가 술술 풀린다. 시인 황지우는 “기다림은 삶을 녹슬게 한다”고 했는데, 모닥불 앞에서라면 이 말이 달라질 수 있다. “기다림은 삶을 농익게 한다” 불꽃 앞에서 사유는 깊어진다.

가스레인지 화구 위에 장작이 올라간 모양새다. 불길은 지속적으로 피어오르는데, 나무는 멀쩡하다. 실내에서 매캐하게 나무를 태울 순 없는 일. 스타벅스 관계자는 CNB에 “도시가스로 불을 올린다. 장작으로 보이는 물체는 불연성 소재”라고 설명했다.
 

'유리가 뜨겁습니다' '화상주의'. 이 경고문을 무시해선 안 된다. 정말 뜨겁다. 한발치 떨어져서 바라보기만 해도 충분하다. (사진=선명규 기자)

 


작은별 아스라이 나리다



실내의 어둑한 조명 사이에서 장작불이 불야성을 이룬다. 그 옛날, 여름밤 해변에서 뜨거운 청춘을 보낸 누군가가 금방이라도 흥얼거릴 것만 같다. “조개껍질 묶어 그녀의 목에 걸고~”하는 그 노래다.

추억과 감상에 젖기에 충분하지만, 분위기 잡으라고 어둡게 한 건 아니다. 센서가 설치돼 있어 손님이 없으면 조명이 자동 차단되고 채광에 따라 내부 밝기가 조절된다. 스타벅스에 따르면, 이를 통해 전기료 절감효과가 있다고 하니 비단 쇼맨십을 발휘하기 위한 장치는 아닌 것이다.

객석 규모가 작다보니 자리를 차지하려는 경쟁이 치열하다. 실제로 지난 10일 누군가 일어서기만 하면 주변 테이블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득달같이 몰려드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안착이란 성공과 물러서야 하는 실패는 한 끗 차이였다. 주변인 모두 수면 아래서 치열한 눈치싸움을 벌이고 있던 것이다. 열을 내뿜는 불 앞에 모이고 또 모이는 상황이 초여름에 접어든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새로운 시각적 경험을 한 것은 한참 불멍을 때리고 일상으로 퇴장하려 찰나였다. 일어섰더니 시야에 남은 빛의 잔상이 떠다녔다. 작은 별들이 아스라이 내렸다.

 

'불멍'은 대세 콘텐츠다. 영화로도 개봉했고 유튜브에선 이미 인기 영상이다. 잔잔한 불길을 바라보기만 했는데 "머릿속 청소를 깨끗이 했다"는 간증이 이어지고 있다. (사진=선명규 기자)

 

그렇다면 심심할 정도로 정적인 불멍의 매력은 뭘까. 아마도 완전한 멈춤 상태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가령 불길이 고정돼 있으면 지루해서 집중력이 금세 흐트러질 게 분명하다. 살랑살랑 규칙없이 흔들려서 계속 보게 된다. 그러면서 의외로 마음이 차분해지는 경험을 한다. 고요한 침대보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버스에서 잠이 더 잘 오는 것과 같은 이치다. 전문가들은 대부분 “불멍을 때리면 심장박동이 안정을 찾는다”고 말하는데, 수긍이 간다. 때려보면 안다. 침착해진다.

한편 불멍 콘텐츠는 여러 분야에서 활활 타오르며 인기를 끌고 있다. 8시간 연속 모닥불이 타는 장면만 재생하는 유튜브 영상 조회수는 186만회나 된다. 최근엔 불멍이 소재인 영화도 개봉했는데, 제목조차 ‘불멍’이다. 러닝타임 31분 동안 이글거리는 모닥불만 보여준다. 이게 과연 실화인가 싶지만 본 사람들의 반응은 의외로 나쁘지 않다. 이런 관람평이 달렸으니까. “머릿속 청소를 깨끗이 하고 왔습니다. 고민스럽던 일을 다 태워버렸습니다”

(CNB=선명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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