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곤기자 |
2016.11.10 16:01:36
미국시간으로 지난 11월 4일과 5일 양일에 걸쳐 캘리포니아 산타아니타 경마장에서 ‘브리더스컵 월드 챔피언십’이 개최됐다.
총 13개 경주가 진행됐으며 이중 국내 경마관계자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건 바로 ‘Breeders’ Cup Juvenile Turf‘였다.
한국마사회를 마주로 둔 2세마 ’J. S. Choice‘가 당당히 출전명단에 이름을 올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과는 아쉬웠다. 14마리 중 13위를 기록한 것이다.
한국마사회 관계자는 “다양한 악재가 겹쳤다”며 “하지만 내년에 켄터키더비를 목표로 다시 한 번 매진할 것”이라고 의지를 밝혔다.
0.2%. 브리더스컵에 출전하기 위해 미국에서 태어난 2세마들이 뚫어야하는 장벽이다. 지난해 기준으로 미국에선 2만5000여두의 경주마(더러브렛)가 생산됐다. 하지만 올해 브리더스컵 2세마 경주(4개)에 출전할 수 있는 자격을 얻은 미국 경주마는 단 50여두에 불과했다.
때문에 ‘J. S. Choice’가 브리더스컵 출전을 확정지었단 소식이 들렸을 당시만 해도 한국마사회는 한껏 들뜬 분위기였다. 더해서 출발 게이트 운까지 따라주자 현지 조교사인 토드플레처 역시 “어려운 경주지만 4위 안에 드는 게 목표”라고 말을 전할 정도였다.
하지만 현실의 벽은 무서울 만큼 높았다.
지난달 ‘J. S. Choice’에게 뼈아픈 패배를 안기며 우승을 차지한 ‘Oscar Performance’를 차치해도 경쟁자들의 실력이 기대 이상으로 출중했다. 당초 토드플레처 조교사는 ‘J. S. Choice’의 능력을 100% 끌어내고자 초반 선두마와 5마신 이내를 유지하다 3, 4코너에서 추입기회를 노리는 작전을 구상했다.
레이스가 시작되자 ‘J. S. Choice’는 경쟁자들의 빼어난 선행력에 밀려 하위권에서 경주를 시작하게 됐지만 5~7 마신차를 유지하며 잘 따라붙었다. 1코너 시작점에서 다른 말과 충돌이 있었지만 이를 악물고 잘 버티며 3코너까지도 거리차를 유지했다.
문제는 4코너에서 발생했다. 기대를 걸었던 추입작전이 불발한 것이다. 펜스에 붙어 주행거리를 최소화하며 치고나가려던 찰나 8번 경주마와 충돌했고 그 여파로 ‘J. S. Choice’는 특유의 추진력을 잃어버렸다. 우승권에 들기 힘들 것이라 판단한 켄트데조모 기수는 결국 추입을 포기, ‘J. S. Choice’는 13위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그 사이 우승은 ‘Oscar Performance’가 가져갔다. 강력한 우승후보로 이름을 올렸던 경주마다운 주행이었다. ‘Oscar Performance’는 시종일관 선두그룹에 머물다 막판에 더욱 격차를 벌이며 손쉽게 우승트로피를 거머쥐었다.
관람대에서 차분히 경주를 지켜본 토드플레처는 “코너에서 다른 경주마와 충돌해 ‘J. S. Choice’가 제대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한 채 경주가 끝나 상당히 아쉬웠다”며 “그 외에는 좋았다. 충분히 가능성을 봤던 무대”라고 평했다. 켄트데조모 기수 역시 “코너를 돌 때 다른 말이 앞으로 튀어 나와 경주마를 잡아 끌 수밖에 없었다. 말이 부상을 입지 않아 다행”이라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한국마사회 관계자는 “아쉬움이 남는 경주였다”며 “하지만 유전능력상 중장거리에 강하며 앞으로도 잠재력이 무궁무진한 2세마라 내년이 더욱 기대된다”고 말을 전했다.
한편 한국마사회 관계자는 막판 기수교체도 경주결과에 큰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분석했다.
매번 ‘J. S. Choice’와 호흡을 맞췄던 이라드 오티즈 주니어 기수가 기승을 못하게 되자 조교사가 뒤늦게 찾은 기수가 켄트데조모였다.
산타아니타 경마장 토박이에다 노련미를 갖췄다는 점에 기대를 걸어봤지만 역시 브리더스컵과 같은 무대에서는 요행이 통하지 않았다.
브리더스컵은 미국의 켄터키더비와 호주의 멜버른컵, 홍콩국제대회, 두바이월드컵 등과 더불어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경마대회로 모든 경주가 미국 NBC를 통해 생방송되는 만큼 취재열기도 상당하다. 실제로 대회를 하루 앞둔 지난 11월 3일(현지시간), 산타아니타 경마장에선 경주마의 새벽조교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려는 많은 기자들이 자리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양일간 총 13개 경주로 진행되는 브리더스컵에서 가장 많은 이목을 끈 경주는 단연 ‘Breeders’ Cup Classic(G1)‘이었다. 총 상금이 6백만달러(한화 약 68억 원)에 달하며 ’California Chrome‘을 비롯한 명마들이 대거 출전하기 때문이다. 참고로 올해는 ’Arrogate‘가 영화 같은 추입을 선보이며 ’California Chrome‘을 제치고 우승을 차지했다.
하지만 정작 국내 경마관계자들의 관심은 다른 곳에서 터졌다.‘Breeders’ Cup Juvenile Turf‘가 바로 그것.
한국마사회를 마주로 둔 저력의 2세마 ‘J. S. Choice'가 출전명단에 이름을 올린 탓이다. 비록 결과는 만족스럽지 못했지만 이를 발판삼아 내년 켄터키더비에서 훨씬 뛰어난 성적을 만들어보겠다는 게 한국마사회 관계자의 입장이다.
사실 ‘J. S. Choice'의 브리더스컵 출전은 수 개의 인연이 만들어낸 성과였다.
첫 번째 인연은 ’케이닉스‘와 관련 있다. ’케이닉스‘는 유전자정보를 활용한 세계 최초의 선발․교배 프로그램으로 한국마사회는 현재 케이닉스Ⅲ까지 개발을 완료한 상황이다.
DNA 정보를 이용해 경주마의 잠재능력을 도출하는 게 핵심이며 그 우수성을 인정받아 특허는 물론, 해외 유명학지에도 수차례 게재됐다.
‘J. S. Choice’ 역시 케이닉스로 선발된 경주마다. 지난해 미국 경매시장에 나왔을 때만 해도 ‘J. S. Choice’는 부마와 달리 모마의 능력이 미 입증돼 구매자들의 눈길을 끌지 못했다.
하지만 한국마사회가 케이닉스로 분석해보니 유전자 상으론 부마와 모마의 조합이 월등히 뛰어났다. 이에 한국마사회는 현지에서 ‘J. S. Choice’를 단돈 7만5000달러에 구매했다. 한편 올해 거래된 ‘J. S. Choice’의 동생은 35만 달러로 몸값이 급등했다. ‘J. S. Choice’가 올해 뛰어난 기량을 보이며 모마의 씨말 능력도 함께 검증한 덕분이다.
두 번째 인연은 토드플레처 조교사와 관련이 있다. 토드플레처는 5000여명의 조교사가 활동하고 있는 미국에서도 첫 번째로 손꼽히는 인물로 연간 수득상금 1위를 10회 달성했으며 철두철미한 스케줄 관리와 스파르타식 훈련법으로도 상당히 유명하다.
실제로 한국마사회는 ‘J. S. Choice'를 포함해 7두를 맡겼지만 강도 높은 훈련과 부상 등으로 ‘J. S. Choice'를 제외한 나머지 경주마들은 아직 데뷔전조차 가져보지 못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오히려 이 같은 모습이 한국마사회의 마음을 움직였다.
한국마사회 이진우 종축개량벤처TF팀장은 “경주마 구매 차 미국 경매장을 방문했을 때 유독 눈에 들어오는 조교사가 있었다. 경매마를 대하는 태도가 의젓하고 강인해보였는데 그가 바로 토드플레처였다”며 “그 역시 한국마사회를 알고 있었고 흔쾌히 손을 맞잡았다”고 말했다.
토드플레처는 “오직 ‘J. S. Choice’만이 완벽하게 훈련을 소화해냈다”며 “강인한 마인드와 적응능력, 식성 덕분에 늘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대략적으로는 케이닉스와 ‘J. S. Choice’의 관계를 알고 있다”며 “상당히 흥미롭고, 때문에 앞으로도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싶다”고 말을 더했다.
브리더스컵 도전을 끝낸 ‘J. S. Choice’는 다시 플로리다로 돌아가 긴 휴식을 가지게 된다. 내년부터는 세계 최고의 경마무대 ‘켄터키더비’에 출전하는 것을 목표로 제2막을 시작할 계획이다. 자신감도 높다. 이진우 팀장은 “유전적으로도 중장거리에 강한 말이기에 오히려 3세가 되는 내년이 더욱 기대된다”고 의견을 밝혔다.
한국마사회의 케이닉스 사업은 총 4단계로 진행되는 초장기 프로젝트로 선발기술을 이용해 미국에서 경주마를 구매한 후 현지에 위탁하는 게 1단계며 브리더스컵이나 켄터키더비 등 미국 유수 경주에 출전하는 게 2단계, 3단계는 해당마를 미국에서 씨수말로 데뷔시키는 것이다. 마지막 단계가 바로 국내로 해당마를 데려와 씨수말로 활용하는 것이다.
이 프로젝트가 큰 의미를 가지는 이유는 마지막 단계와 관련이 깊다.
통상 해외 정상급 씨수말을 구매하려면 많게는 수천억원까지 지불해야 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국내에선 이를 감당할만한 기관이나 사업자를 찾기가 어렵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케이닉스 사업이 추진됐다.
유전능력이 뛰어난 경주마를 조기에 발굴해 미국에서 검증을 거치며 몸값을 불린 후 국내에 반입할 수만 있다면 아주 적은 돈으로도 큰 효과를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J. S. Choice’가 단계별 목표를 달성하기만 한다면 한국마사회는 단 7만5000달러로 수십억, 수백억 몸값의 씨수말을 데려올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한국마사회는 앞으로도 매년 케이닉스 사업을 통해 ‘J. S. Choice’와 같은 유전적 우수마를 확보할 방침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몇 년 후 한국이 메니피 이상의 뛰어난 씨수말을 다수 보유하는 것도 꿈은 아니다.
이진우 팀장은 “장기적으로 한국과 미국을 잇는 가교가 될 수 있을 것”이라며 “일단 미국에서 씨수말로 검증을 받으면 해외에서도 그 능력을 인정해주기에 장기적으로 농가소득이나 경주마수출에 큰 힘을 보탤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CNB=이병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