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이재명 대통령의 취임 30일 기자회견 현장에 필자도 참석했다. 질문 기회가 주어진다면 이런 질문을 하고 싶었다.
“G7 정상회의 때 보니 난생처음 만나는 브라질 룰라 대통령의 어깨를 두르고, 어색해하는 일본 이시바 총리가 당황해할 정도로 환한 표정으로 다가가 악수를 건냈습니다. 도대체 처음 만나는 외국인 정상과, 첫 외교 무대에서 어쩌면 그렇게 오랜 친구를 만나는 듯한 자세와 표정을 취할 수 있는지, 어떤 마음가짐으로 그렇게 하는지 비결을 알려주세요”라고.
필자의 이런 의문이 일부 풀렸다. 일본 기자의 질문에 답할 때였다. 답변 요지는 다음과 같다.
李 “전쟁 중에도 대화는 한다. 오른손은 싸워도 왼손은 잡고 대화한다. 이시바 만났을 때 엄청 반갑더라. 그분이 어떤 생각을 저에게 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상상해보건대 경계심을 가지고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나는 전혀 그럴 필요 없다는 걸 꼭 보여주고 싶었다. 한일간에 협력할 분야가 많이 있다. 북핵에 대응하는 안보 협력을 서로에게 도움 되게 할 수 있고, 경제적으로도 협력할 게 많다. ‘너는 손해 보고 나는 이익 보고’ 이런 관계가 아니라, 저쪽도 이기고 나도 이기는 방법으로. 사안을 분리했으면 하는 게 내 생각이다. 오해는 줄이고, 대화를 통해 협력할 건 협력하고. 북한으로 납치된 일본인 가족의 억울함을 가능하면 풀어주는 게 맞고, 우리 정부도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하겠다.”
이 대답에서 이 대통령이 인간과 세상에 임하는 여러 자세를 읽어낼 수 있다. 정리해보자.
1. 사안을 분리한다: 협력할 사안들(A)과 싸울 사안들(B)을 나눈다. A로 서로 윈윈하는 협력이 가능한데 B 탓에 감정 싸움부터 시작하고, 그러면서 A를 잊어버리는 어리석음을 피한다.
2. 난생처음이라도 반갑게 만나는 마음가짐: A(협력 가능한 사안들)를 생각하면 이시바처럼 난생 처음 만나는 사람도 반갑다. 상호 이득을 보려 만났는데 어찌 반갑지 않겠는가.
3. 가능한 일과, 불가능한 일의 분리: 위 대답의 마지막 문장, 즉 일본인 피납자 문제에 대한 대답에는 2개의 ‘조건절(if 문구)’이 들어가 있다. ‘가능하면’과 ‘할 수 있는 게 있다면’이다. 할 수 있는 건 하지만, 한계를 넘어가는 건 못한다고 선을 긋는다.
이 대통령의 치적으로 유명한 ‘경기도 계곡 불법 시설 철거’ 때도, 위의 세 가지 마음가짐으로 당시 이재명 경기지사는 임했을 것 같다. “계곡 불법 시설물을 제거하면서도 돈은 계속 벌게 해줄 수 있으니, 그리 되면 상인이나 도민들 모두 얼마나 좋겠어. 상인들이 거칠게 나오겠지만, 법적으로 가능하면 해주고, 불가능하면 못해준다고 설명하면 감정 싸움을 할 필요는 없잖아?”라는 마음가짐으로.
필자가 위에서 정리해본 1, 2, 3 항을 ‘이재명 식 만남의 삼(三)원리’로 이름붙여 보자. 이 삼원리는, 한국인 특유의 도덕주의(‘옳으냐 그르냐’가 첫째 판단 기준) 또는 좌파-극우의 ‘책에서 배운 논리가 최우선’과는 사뭇 다르다. 이재명 식 1~3항과 대비되는, 전통적 한국의 상식을 대비시켜보자.
1. 사안을 분리한다 VS 왜 분리해: 부도덕한 상대와는 협력 가능한 사안들이 있더라도 협력부터 할 수는 없다. 상대가 철저한 반성부터 하는 게 먼저고, 이득을 놓치더라도 할 수 없다. 모든 논리를 동원해 상대를 철저히 굴복시키는 게 먼저다.
2. 좋은 결과를 상상하며 반갑게 만난다 VS 적을 어떻게 웃으며 만나나: 상대는 나의 숙적이다. 어떻게 미소를 가장할 수 있나? 한국과 일본이든, 또는 우파와 좌파 사이든 서로 철천지원수이고, 경쟁 상대다. 웃으려 해도 지난 역사를 떠올리면 내 얼굴에 미소가 사라지고, 그러면 상대방도 미소를 거둔다. 대결이다. 만나기 전부터 두려운 마음과 경쟁심만 가득하다.
3. 가능-불가능을 나눈다 VS 어찌 야박하게 미리 나누는가: 안 될 일임이 분명해도 “최선을 다하겠다” “노력해 보겠다”고 해야지 어떻게 처음부터 조건절을 달아 “되는 건 되고, 안 되는 안 된다”고 할 수 있나? 안 될 게 분명하지만 면전에서는 듯기 좋게 말해주는 게 동방예의지국의 전통이다.
이재명 식 인간-세계관과 한국 전통(특히 엘리트 우파와 좌파의)의 인간-세계관을 대비시켜 봤다. 이재명 식이 밝고 전향적이라면, 한국 엘리트 방식은 어둡고 과거지향적인 측면이 분명히 존재한다.
이 대통령의 놀라운 ‘에너자이저 특성’이 화제다. 비서진의 코피가 터지고 잇몸이 물러진다는 데도 정작 가장 힘들 게 분명한 이 대통령 자신은 “하루가 24시간 아니라 30시간이면 좋겠고, 주말에도 일하고 싶지만 그러면 너무 많은 부하들이 힘들어지기에 할 수 없이 공관에서 일한다”고 기자회견에서 말했다.
‘이재명의 만남의 삼(三)원리’로 움직인다면, 사람을 만나면 만날수록, 또 일을 하면 할수록 긍정적 성과가 뽀록뽀록 올라오니 더욱 더 힘이 나는 게 아닌지 상상해본다.
그렇다면 누구나 성공을 원한다면, 아니 경쾌한 하루하루를 원한다면 ‘이재명 식 만남의 삼(三)원리’를 배울만 하지 않을까?
이재명 방식은 한국의 전통 방식과는 다르다. 그는 학벌 엘리트가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이재명의 대입 학력고사(현재의 수능시험에 해당) 점수는 285점으로 그 스스로의 표현대로 “서울대 법대나 의대도 노려 볼 만한 점수”였다. 이렇게 공부를 잘했지만 그는 스스로의 경로로 대통령에 올랐지, ‘학벌 덕을 본’ 일반 엘리트와는 철저히 다른 인생을 살아왔다.
그렇기에 그의 방식은 독특하다. 뉴스공장의 김어준 앵커는 그 원인을 “어렸을 때 중-고교를 못 다니고 시장통에서 배웠기 때문”이라고 해석하고 있지만, 시장통에서 자란 사람들이 한둘이 아닌데 시장통에서 배운다고 저런 독창적 인간-세계관이 나오는 건지는 아직 확정하긴 힘들다.
기자회견에서 살짝 드러난 이 대통령의 인간-세계관을 필자는 이 기자수첩에서 장님 코끼리 만지듯 짚어봤다. 이 대통령이 이 복잡하고 문제 많은 나라를 잘 이끈다면, 정말로 대한민국은 앞으로 경천동지할 변화를 맞이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리 된다면 ‘이재명學’이 반드시 태어나야 한다. 그런 날이 오기를 고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