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태기자 |
2025.12.23 11:36:26
매주 월요일마다 리얼미터와 여론조사꽃이라는 두 주요 여론조사 기관이 직전 주의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합니다.
어제(22일) 발표를 근거로 쓰인 기사들 중에는 [“생중계 업무보고 독 됐나”…이대통령 지지율 1%p 가까이 하락](주간조선), [이 대통령 지지율 53.4%, 0.9%P↓···“업무보고 공개 질책-고환율 여파”](경향신문)처럼 부처별 업무보고 생중계가 마치 지지율 하락의 원인인 것처럼 표현한 기사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포털들이 이런 기사들을 주요 기사로 헤드라인에 올렸고요.
궁금해서 리얼미터 홈페이지로 들어가 리얼미터의 발표한 내용을 봤습니다. 이런 문장이 떡 하니 앞부분에 쓰여 있더라고요.
[‘생중계 업무보고’는 ‘신선한 소통 방식’으로 긍정적 평가를 받았으나, 인천공항공사 사장에 대한 공개 질책이 ‘낙인찍기’나 ‘정치 보복’ 비판으로 이어져 지지율 하락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됨.]
생중계는 긍정적으로 국민들에게 받아들여졌으나(플러스 요인), 이학재 인천공항공사 사장에 대한 대통령의 공개 질책은 보기 좋지 않아(마이너스 요인), 플러스-마이너스 계산 끝에 지지율이 하락했다는 진단입니다.
전체적으로는 점수를 땄지만, 그 중의 ‘아주 작은 일부분’이 점수를 잃어 전체적으로 마이너스 결과가 됐다는 진단이니, ‘전체는 부분에 진다’는 비논리적 문장이네요.
리얼미터는 매주 화-수-목-금 4일간 ARS(자동응답)로 여론조사를 진행합니다. 그래서 매일매일의 데이터를 보니 ‘이학재 질타 탓에 대통령 지지율이 떨어졌다’는 보도자료의 문장과 맞지 않는 숫자들이 나옵니다.
이학재 사장에 대한 질타는 지난 12일(금) 생방송됐습니다. 이후 대통령에 대한 긍정 평가는 53.3%(12일) → 53%(16일) → 54.1%(17일) → 53.3%(18일) → 53.1%(19일)로 변했습니다. 거의 무(無)변화입니다.
또한 대통령 부정 평가는 41.5%(12일) → 43.8%(16일) → 41.9%(17일) → 41.7%(18일) → 41.3%(19일)로 변했어요. 16일에 솟았다가 제 자리로 돌아온 결과입니다.
데이터가 이런데도 ‘이학재 질타 탓 지지율 하락’이라고 리얼미터가 명기하고, 이를 일부 언론이 그대로 받아쓴 것은 ‘무리한 해석’ + ‘받아쓰기 언론’이라 비판해도 반박하기 힘들지 않을까요?
반면 같은 날 발표된 여론조사꽃의 설문에도 업무보고 생중계에 대해 물은 결과가 나왔는데 완전히 다른 세상입니다.
직접 전화를 걸어 응답을 받는 CATI(전화 면접)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무려 76.6%가 ‘긍정적’이라고 답했습니다. ‘부정적’이란 반응은 21.2%에 그쳐 열 중 거의 여덟이 좋게 봤습니다.
CATI 조사는 정치 고관여층이 아닌 일반 국민의 의견을 잘 반영한다고 평가됩니다.
여론조사꽃의 ARS(자동 응답) 조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습니다. ‘긍정적’ 64.8% 대 ‘부정적’ 32.4%여서, 열 중 여섯 이상이 좋게 봤습니다. ‘매우 긍정적’이 무려 54.6%였다니 업무보고 생중계에 대한 호감은 폭발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리 녹음된 설문을 듣고 답해야 하는 ARS 조사는 정치 고관여층의 의견을 잘 반영한답니다.
결론적으로 여론조사꽃의 조사를 보면 업무보고 생중계에 대한 국민의 반영은 ‘크게 환영’입니다.
단지 정치성향별, 지지 정당별로는 차이가 확실합니다. CATI 조사에서 더불어민주당 지지자라고 밝힌 응답자의 98.5%가 ‘긍정적’이라 응답한 반면, 국민의힘 지지자들은 61.3%가 ‘부정적’이었습니다. 무당층에서도 ‘긍정적’이 70.8%였다니 진보-중도는 업무보고 생중계를 두 손 들어 환영했지만, 보수 중에서도 국민의힘 지지자들은 반대가 많았다는 결과입니다.
ARS 조사에서도 진보층(86.3%)과 중도층(66.2%)는 ‘긍정’ 우세였지만, 보수층에선 ‘부정’이 58.4%로 과반을 기록했습니다.
이런 결과들을 보면, 업무보고 생중계에 대해 국민 일반은 대환영이고, 단지 국민의힘 지지자와 보수층에서만 부정이 더 많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론조사꽃의 조사에서는 또한 업무보고 생중계에 대한 긍정 평가가 대통령에 대한 긍정 평가보다도 7%p나 높아, ‘지지하지 않지만 생중계는 좋다’는 사람들이 꽤 있음을 알 수 있게 했습니다.
지난주 금요일(19일) 발표된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도 대통령에 대한 긍정 평가자들이 최고로 꼽은 요인이 ‘소통과 국무회의 생중계’였으니 ‘생중계 탓 지지율 하락’은 현실과 괴리된 진단임을 더욱 확실하게 알 수 있습니다.
리얼미터의 보도자료는 ‘이학재 질타 탓’을 했지만 정작 22일 유튜브 ‘김어준의 겸손은힘들다 뉴스공장’에 출연한 이택수 리얼미터 대표의 발언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는 “(생중계에 대해) 국민의힘 지지층에서 열에 여섯 명, 혹은 ARS 조사에서는 80%에 육박할 정도로 부정 평가했는데, 이거는 그냥 싫어서도 있을 것이고, 또 (이 대통령이) 너무 잘하니까, 국민의힘에는 좀 불리한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그래서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부분도 있을 것 같습니다”라고 풀이했어요.
이 방송에서 이택수 대표와 박시영 여론조사 전문가가 의견 일치를 본 사항은 ‘지방선거가 다가오니까 진영별로 뭉치는 듯한 현상’이라는 것이었습니다.
특정 현상에 대한 해석에는 세심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여론조사도 마찬가지에요. 여론조사의 결과 숫자는 오르락내리락 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이래서 올랐다” “저래서 내렸다”고 함부로 사후에 말 만들기를 하면 안 됩니다.
‘블랙 스완’으로 유명한 나심 탈레브는 2003년 사담 후세인의 생포 뒤 미국 언론에서 벌어진 ‘이랬다 저랬다’를 사후 설명의 오류(Narrative Fallacy)로 비웃었습니다.
후세인 생포 뒤 장 초반에 미국 국채 가격이 오르자 블룸버그 통신은 “후세인 생포로 테러 위협이 줄어들어 안전 자산인 국채 가격이 올랐다”고 헤드라인을 내보냈지요. 하지만 잠시 후 국채 가격이 내려가자 이번엔 “후세인 생포가 오히려 중동의 불확실성을 높여 국채 가격이 하락했다”고 헤드라인을 날렸습니다. 같은 언론사가 같은 팩트를 놓고 이랬다 저랬다 한 거지요.
탈레브는 “멋대로 설명해버리는 전문가들은 뻔뻔하고, 이 따위 해석은 아무런 정보 가치도 없다”고 비판했습니다.
변화는 변화로 받아들이되 함부로 입을 놀려 사후적으로(일이 일어난 뒤에 원인을 마구 찾아 갖다붙이며) 말을 지어내는 오류에 빠지지 말라는 경고입니다.
물론 ‘월가의 현인’으로도 불리는 탈레브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갑니다. 우매한 인간은 어차피 사후적으로 말을 이리저리 만들면서 “후세인이 잡혀서 국채가 오른다” “아니 그래서 국채가 내린다”며 이리저리 몰리게 마련이니, 현자가 할 일은 이런 어리석음을 이용해서 돈을 벌라는 게 그의 가르침입니다.
한국처럼 여론조사가 많이 진행되는 나라도 없습니다. 또한 일부 여론조사에서는 의뢰-조사 기관의 ‘숨긴 장난질’이 문제가 되기도 합니다.
특히 여론조사 설문을 교묘하게 작성해 장난을 치고, 해석을 마음대로 갖다 붙이면서 판을 흔들려 드는 장난질은 정파성이 강한 언론이 잘 하는 짓입니다. 선거가 다가오니 이런 사전-사후 장난질이 더욱 기승을 부릴 것 같습니다. 자꾸 속으면 속는 사람의 잘못입니다.
*리얼미터의 여론조사는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지난 15∼19일 전국 18세 이상 2521명을 대상으로 실시됐으며, 응답률 4.5%에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2.0%P다.
*여론조사꽃의 CATI 조사는 19~20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4명을 대상으로 실시됐으며, 응답률 10.3%에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다. ARS 조사는 19~20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7명을 대상으로 실시됐으며 응답률 2.2%에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이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