갯벌·논·숲이 잇는 먹이망…장항습지에 몰린 겨울 철새
지난해 25회 23톤 공급…AI 0건 성과 내세워
세관 압수 곡물도 먹이로…장항습지 ‘순환형 보전’ 실험
고양시가 겨울철 장항습지에 드론을 활용한 철새 먹이 공급을 시작했다. 시는 지난 6일부터 내년 3월까지 25차례에 걸쳐 회당 약 2.5톤 규모로 볍씨 등 곡물 총 64톤을 살포해, 겨울철 도래하는 약 3만 마리 철새의 먹이 공백을 줄이고 현장 위험과 서식지 훼손을 낮춘다는 계획이다.
장항습지는 겨울이면 한강 하구의 논습지와 갯벌, 버드나무 숲이 한 덩어리로 작동한다. 철새는 갯벌에서 갯지렁이와 물고기를 찾고, 논에서는 곡물과 식물 뿌리를 먹는다. 잠자리는 무논과 숲 가장자리로 이어진다. 먹이와 은신처가 가까운 데다, 민간인 통제구역으로 오래 유지되며 자연성이 남아 있는 점이 ‘겨울 손님’의 발길을 붙잡는 배경으로 꼽힌다.
이곳을 대표하는 새는 재두루미다. 잿빛 몸과 붉은 눈가가 특징인 재두루미는 무리를 지어 내려와 먹이를 찾고, 무논에서 밤을 난다. 개리도 장항습지를 겨울 기착지로 삼는다. 기러기류 가운데 부리와 목이 길고, 갯벌의 새섬매자기 군락과 논의 곡물 자원이 유지되는 곳을 따라 움직인다. 큰기러기, 큰고니 같은 대형 조류도 해마다 모습을 드러낸다.
장항습지의 ‘연결고리’는 철새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너구리와 삵, 고라니, 멧밭쥐 등 포유류가 서식하고,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기수역 환경이 생물다양성을 떠받친다. 여름철 습지 바닥을 누비는 말똥게는 겨울이면 굴속에서 동면하지만, 굴이 남긴 토양 구조와 영양분은 버드나무 숲의 생장에 보탬이 된다. 숲이 커지면 다시 철새와 야생동물의 은신처가 된다. 계절이 바뀌어도 먹이망과 서식처가 끊기지 않는 이유다.
문제는 겨울철 먹이 부족과 접근 위험이다.
시는 철새가 몰리는 시기에 사람의 출입이 잦아지면 서식지가 흔들리고, 갯벌·논습지 내 이동 과정에서 안전사고 위험도 커질 수 있다고 보고 관리 방식을 바꿨다. 핵심이 드론 급식이다. 사람이 직접 들어가 살포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상공에서 필요한 지점만 정밀하게 공급해 개입을 줄이겠다는 구상이다.
사업은 지난 2023년 전국 최초로 드론 급식을 시범 도입한 뒤 지난해 정식 사업으로 전환됐다. 지난해에는 한 해 동안 25회, 23톤을 공급했고, 시는 그 기간 조류인플루엔자 발생이 단 한 차례도 없었다고 설명했다. 서식지 훼손이 줄고 위험지역 접근이 감소한 점, 이동 동선이 단순해지며 관리 효율이 올라간 점도 함께 내세운다.
현장 운영은 ‘참여’로 굴린다. 매회 자원봉사자 8~10명과 드론 자격증을 보유한 농민·공무원 2~3명이 투입된다. 사전 안전·생태 교육과 소독 절차를 거쳐 현장 관리의 틀을 갖췄고, 농사 비수기 농민의 유휴 드론과 농업기술센터 장비를 활용해 비용을 낮추겠다는 게 시의 설명이다.
드론은 먹이 살포만 맡지 않는다.
시는 드론을 활용해 도래 개체군 변화와 서식지 환경을 모니터링하고, 조류인플루엔자와 환경오염 같은 위험 요인을 상시 감시한다는 방침이다. 축적된 데이터는 장항습지의 계절별 생태 변화를 읽는 기초 자료로 쌓인다.
먹이 조달 방식에는 ‘순환’도 얹었다.
시는 생태계서비스지불제 사업을 통해 장항습지 내 농민과 계약해 확보한 볍씨 23톤을 포함해, 인천본부세관이 압수한 곡물 31톤과 기업 ESG 기부 자원 8톤, 민간 어민이 제공하는 생태계 교란·무용 어종 등 폐기 자원을 먹이로 전환할 계획을 제시했다. 보호를 이유로 새 자원을 투입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버려질 자원을 생태 관리로 돌려 쓰겠다는 방향이다.
장항습지는 국제사회에서도 ‘도시형 습지 관리’ 사례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장항습지는 지난 2021년 국내 24번째 람사르습지로 등록됐고, 2019년에는 동아시아-대양주 철새이동경로 파트너십(EAAFP)에 등재됐다. 도심과 맞닿아 있으면서도 철새 기착지로 기능하는 점이 특징이다. 시는 재두루미와 개리, 저어새 등 멸종위기종 33종과 천연기념물 24종, 해양보호생물 5종이 확인됐다고도 밝혔다.
시는 지난 7월 짐바브웨에서 열린 제15차 람사르협약 당사국총회(COP15)에서 드론 급식과 시민참여, 자원순환을 결합한 관리 방식을 소개했다.
지난 9월에는 람사르협약 사무국이 주관한 ‘제2차 람사르 국가습지인벤토리 국제워크숍’ 현장학습지로도 선정됐다. 국립생태원과 유엔지속가능발전센터가 협력한 교육과정에 참여한 국제기구 관계자와 10개국 교육생 30여 명이 장항습지의 보전 활동과 조사·모니터링 체계를 둘러봤다.
시는 이번 겨울철 사업을 운영하면서 먹이 공급 시기와 물량, 살포 지점을 더 세밀하게 조정해 관리 정밀도를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장항습지를 ‘출입을 막아 지키는 공간’에 머물게 하지 않고, 기술과 시민참여, 자원순환을 묶은 관리 체계로 키워 도시와 생태가 함께 버티는 모델로 확장하겠다는 구상도 내놨다.
시 관계자는 “장항습지를 기반으로 국제사회와 공유할 수 있는 생태도시 모델을 지속적으로 고도화해 나가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