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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육사 시인-루쉰 작가 후손의 만남, 한중 문화 교류 마중물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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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손정호기자 |  2026.04.10 11:35:53

이육사 시인 (사진=안동시)

이육사 시인과 루쉰 작가 후손의 만남이 다가오면서 한중 문화 교류의 마중물이 될지 관심을 받고 있다.

10일 문학계에 의하면 중국 현대 소설을 정립한 루쉰 작가의 후손과 우리나라 독립운동가 겸 저항 시인인 이육사의 후손이 오는 5월 중국 저장성 사오싱에 있는 루쉰기념관에서 만날 예정이다. 루쉰 작가의 장손자이자 루쉰기금 이사장인 저우링페이 선생이 이육사 시인의 딸인 이옥비 여사를 초청한 상태다.

저우링페이 선생은 초청장에서 “루쉰과 이육사가 깊은 우의를 나눴고 이육사 시인이 ‘루쉰 추도문’을 통해 루쉰의 사상과 작품을 한국에 소개했다는 사실을 최근 알게 됐다”며 “루쉰 서거 90주년을 맞은 올해 고향인 사오싱에서 기념행사를 열어 선조의 정신과 문학적 유산을 기리고자 한다”고 밝혔다.

이육사 시인의 고향이자 이육사문학관이 위치해 있는 안동시 측에 의하면 루쉰과 이육사는 1933년 6월 중국 상하이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만났다. 이육사 시인은 난징의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에서 군사훈련을 마치고 귀국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혁명가이자 과학자인 양싱포의 장례식장에서 루쉰과 만나 친분을 쌓았다.

1936년 루쉰 작가가 별세했을 때 이육사 시인이 ‘루쉰 추도문’을 조선일보에 연재하며 존경심을 표현했다. 이육사 시인은 루쉰을 친절하고 익숙한 친구처럼 대해준 선배 문인으로 회상했다.

 

루쉰 작가 (사진=안동시)

루쉰 작가는 1881년부터 1936년까지 살았던 인물이다. ‘아Q정전’ ‘광인일기’ 등을 통해 중국의 근대화 시기에 평범한 사람들의 혼돈 등을 소설로 표현했다. 중국 근대 문학이 발전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든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이육사 시인은 1904년부터 1944년까지 생존했던 인물이다. ‘광야’ ‘청포도’ 등의 시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지금도 사랑받고 있다. 일제에 의해 여러 번 옥고를 치렀지만, 조선 독립에 대한 의지를 버리지 않고 서정적이면서도 강직한 시들을 여러 편 남겼다.

이육사 시인의 본명은 이원록이다. 필명인 이육사는 그의 수인번호로, 시인이 얼마나 치열하게 항일 독립운동을 했던 인물인지를 상징한다. 교보생명 창립자인 대산 신용호 선생이 일제 강점기 시절에 중국에서 이육사 시인을 만난 일화도 잘 알려져 있다. 이육사 시인은 신용호 선생에게 ‘동포들을 구제하는 민족 자본가가 되길 바란다’고 격려했고, 이에 감명을 받은 신 선생이 현재의 교보생명과 교보문고 등을 창업했다.

루쉰 작가와 이육사 시인 후손의 만남으로 한중 문화 교류가 더욱 활발해지는 계기가 될지 관심을 받고 있다. 우선 이육사문학관과 루쉰기념관은 상호 교류와 협력을 확대하고 공동 학술회의와 전시 등으로 인문 교류를 더욱 발전시킬 계획이다. 중국 내에 있는 이육사 시인의 시 창작 및 옥고와 관련된 유적지 등을 미래 세대를 위해 보존하는 사업도 추진될지 관심사로 보인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사드 배치 이슈로 인한 한한령으로 소원해진 중국의 한국 문화 콘텐츠 수용도 이전처럼 회복될 수 있을지도 관심을 받고 있다.

(CNB뉴스=손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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