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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세월호 참사, 우리 모두 죄인이고 공범이다

침몰한 국가재난체계,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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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도기천기자 |  2014.04.21 08:48:29

(CNB=도기천 정경부장) 이번에도 인재였다. 세월호 대참사는 사고 발생에서부터 구조 과정, 사후 대응에 이르기까지 하나같이 믿기 어렵고 이해할 수 없는 일투성이였다.


배가 가라 앉기까지 140분이라는 시간이 있었다. 그 시간 동안 우리는 눈을 뻔히 뜬 채 수백명의 아이들을 잃었다.
 
선장은 배가 기운지 20분이나 지나서야 신고했고, 신고 뒤에도 아이들을 대피시키지 않았다. ‘대기하라’는 안내방송이 아이들의 발목을 잡았다. 해경은 신고가 접수된 지 42분이 지나서야 현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잠수부들은 장비가 제때 도착하지 않아 발을 동동 굴렀다.


그렇게 140분이 흘렀다. 그 사이 아이들은 배안에 갇힌 채 ‘대기하라’는 방금 전 어른들의 목소리에 마지막 희망을 걸었을 것이다.
  
꿈많은 열여덟 나이에 떠나는 수학여행은 얼마나 가슴 설레였을까.


학생들의 웃음소리, 재잘거림이 배 안을 웅웅거린다. 누구는 파도에 넘실 거리는 배 위에서 감탄사를 외쳤고, 누구는 인증샷을 날리느라 정신이 없었을 것이다. 장난끼 어린 여학생들은 몰려다니며 재잘됐을 것이고, 호기심 많은 남학생들은 제주에서의 첫날 작전(?)을 짜느라 가슴 설렜을 것이다.


어느반 학생들은 선생님의 생일파티를 준비하고 있었다. 마침 배가 침몰한 그날이 담임교사의 생일이었다. 33명의 반학생들이 쓴 축하 편지들은 어른들의 가슴을 휘어 판다. 그 선생님과 아이들 대부분이 아직도 소식이 없다. 


그 아이들은 내 자식 또래다. “아빠, 왜 한사람도 못구하는 거야? 내려가서 꺼내주면 되잖아”라고 묻는 내 아들의 눈을 똑바로 볼 수가 없다.


몰래 눈물 훔치며 ‘내 자식이 아니어서 다행’이라 안도했지만 바로 그 이기적인 생각이 ‘죄악’이란 것을 깨닫는 데는 채 몇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1999년 화성 씨랜드 참사, 지난해 사설해병대 캠프 사고, 올해 경주 마우나오션리조트 참사… 우리 아이들을 참담하게 떠나 보낼 때마다 우리는 곱씹고 또 곱씹었다. 저 아이들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 말자고, 다시는 이런 일을 만들지 말자고.


‘통한의 140분’…도대체 왜 그랬나


하지만 변한 게 없다. 아무것도 고쳐지지 않았다. 결국 참사는 예견된 일이었다.


배를 고쳐서 승선 인원을 늘리고, 수백명의 아이들을 태우면서도 출항 전 점검 시간은 고작 10분이었다. 사고가 나면 그 즉시 펴져야 할 구명보트 46개 가운데 작동된 것은 단 1개뿐이었다. 선장과 선원들은 배를 버리고 먼저 탈출했다. 상황을 오판한 당국은 ‘전원 무사 탈출’ 오보를 날려 ‘골든타임’(사고때 목숨을 건질 초기 시간)을 날려버리는 결과를 자초했다. 사고 24시간이 지나도록 탑승 인원조차 집계하지 못한 당국의 초기대응은 할 말을 잃게 한다.
 

▲안산 단원고 2학년 어느 교실 칠판.

아이들이 마지막 들었던 어른들의 목소리는 “그대로 대기하라”였다. 물이 차오르고 배가 기우는데도 그 말을 믿었던 우리 아이들은 그 자리를 지켰다. 그들이 마지막 순간 느꼈을 좌절감은 어른들에 대한 원망 그 이상이었을 것이다.


결국 어른들의 탐욕이 아이들을 깊은 바닷 속에 남겨두게 됐다. 이런 세상을 만든, 이런 세상을 용인했던, 이런 세상에 눈감았던 우리 모두가 죄인이고, 공범이다.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 꽃은 만발했고 교회·성당에선 부활절 예배가 열렸다. 바다 깊숙한 곳에 우리들의 ‘푸른 봄들’이 묻혔는데, 꽃이 부활이 무슨 의미가 있으랴.


그렇더라도 이 참담함을 딛고 꼭 해야할 일이 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됐는 지를 하나하나 따져보자.


그토록 허술한 승선절차와 안점점검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왜 갑자기 배가 기울었는지, 수십년된 배가 어떻게 수명연장이 가능했는지, 선체진입이 나흘이나 지나 이뤄진 이유가 무엇이며, 민간잠수부 투입을 당국이 막았다는 건 또 무슨 말인지. 


‘전원 탈출’이란 허위발표는 어떻게 나오게 됐는지, 천안함 사건 이후에도 수중진입 장비·체계가 갖춰지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지, 첨단장비가 없었다면 미국·일본 등 주변국에 긴급요청을 할 수는 없었는지, 헬기와 함정을 대대적으로 투입했다 해놓고 왜 현장에 보이는 건 그리도 적었는지, 도대체 ‘대기하라’는 명령은 누가 내렸는지, 그 통한의 ‘140분’ 동안 무얼 했는지… 눈 뻔히 뜬 채 아이들을 잃게 된 이유를 낱낱이 밝혀야 할 것이다.


그래서 법과 시스템을 완전히 뜯어 고쳐 무너진 안전불감증, 국가재난체계를 다시 세워야 한다. 실종자 가족들은 국가피해자로 규정해 할 수 있는 모든 지원을 해야 한다.  


아무리 시간이 걸려도, 이 슬픔이 더 오래 가더라도, ‘이제 그만하자’는 말은 하지말자. 책임자 몇 명을 처벌해놓고 면죄부를 얻을 생각, 꿈도 꾸지 말자.


그러기에는 아이들에게 갚아야할 빚이 너무 크다. 아이들이 못먹는 밥을 먹고, 못쉬는 숨을 쉬는 어른들이 해야할 마지막 도리다. 


(CNB=도기천 정경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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