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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정권 수혜 입은 패터슨…이태원 살인사건 묻힌 진실은

정부·검찰 뒤늦은 후회…그들은 왜 조중필을 죽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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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최서윤기자 |  2015.09.30 10:12:08

‘이태원 살인사건’의 진범으로 지목된 아더 존 패터슨(36)이 지난 23일 한국에 송환됐다. 사건 발생 18년, 미국으로 도주한지 16년 만이다. 패터슨의 도주가 가능했던 배경에는 1998년 광복절 특별사면과 검찰이 출국금지를 연장하지 않은 것 등이 원인으로 꼽힌다. 우여곡절 끝에 오는 8일 패터슨을 피고인으로 한 첫 공판준비기일이 열린다. 이번엔 진실이 밝혀질까. (CNB=최서윤 기자)

▲‘이태원 살인 사건’의 진범으로 지목된 미국인 아더 존 패터슨이 도주한 지 16년 만에 23일 영종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국내로 송환됐다.(사진=연합뉴스)

무분별한 특사 남발 ‘도주’ 길 열어
검찰 “경황 없었다” 억지 해명
패터슨 “범인 아니다”…재판 난항

1997년 4월 3일. 서울 이태원의 한 햄버거 가게에서 대학생 조중필 씨(당시 22세)는 목과 가슴 등을 흉기에 9차례나 찔리며 잔혹하게 살해당했다. 현장에는 두 명의 용의자가 있었다. 미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를 둔 패터슨과 그의 친구인 재미교포 에드워드 리였다.

패터슨은 다음날인 4일 미군 범죄수사대(CID) 요원에게 체포됐다. 며칠 뒤 리는 아버지의 설득으로 검찰에 가서 자신은 구경만 했을 뿐 패터슨이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검찰은 둘을 공동 정범으로 보지 않았다. 리의 단독 범행으로 결론 내린 뒤 리만 살인 죄로 구속기소했다. 패터슨에게는 범행에 사용된 흉기에 대한 증거인멸죄와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만 적용했다.

1·2심 재판부는 리에게 각각 무기징역,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1998년 4월 증거 불충분으로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당시 이태원 살인사건의 상고심 주심을 맡은 이용훈 전 대법원장은 에드워드 리 대신 패터슨이 진범일 가능성을 제기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해 9월 서울고법이 리에게 무죄를 선고한 데 이어, 1999년 9월 대법원은 재상고심에서 리에 대한 무죄 판결을 확정했다. 리의 무죄가 확정되자 조중필 씨의 유족들은 패터슨을 상대로 소를 제기했다. 이미 패터슨이 미국으로 도주한 뒤였다.


살인혐의자 어떻게 출국 했나


패터슨은 어떻게 미국으로 달아날 수 있었을까? 당시 재판에서 에드워드 리는 증거불충분으로 살인 혐의를 벗었다. 동시에 현장에 함께 있던 패터슨이 유력 용의자가 됐다.
 
패터슨은 1998년 1월 서울고법에서 증거인멸 등의 혐의로 징역 장기 1년6월, 단기 1년형을 선고 받았다. 그는 상고 하지 않고 이를 받아 들였다. 패터슨인 복역 중이던 8월 15일 광복절 특사로 풀려났다. 몇 달 뒤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이를 다뤘다. 사건은 집중 받는 듯 했다. 이는 잠시였다.

패터슨은 출국금지가 풀린 다음날인 1999년 8월 24일 보란 듯이 미국으로 도피했다. 검찰은 때마침 인사이동으로 경황이 없어 출국금지 요청을 하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검찰은 2002년 10월이 돼서야 패터슨에 대한 기소중지를 결정했다. 2009년 9월 영화 ‘이태원 살인사건’이 개봉되면서 법무부는 미국 법무부와 공조해 패터슨에 대한 범죄인 인도를 청구했다.

2011년 6월 패터슨은 미국에서 체포돼 범죄인 인도 재판에 회부됐다. 검찰은 같은 해 12월 살인 혐의로 패터슨을 기소했다. 공소시효가 만료되는 2012년 4월 2일을 4개월 여 앞둔 상황이었다.

2012년 10월 미국 법원은 범죄인 인도 허가를 결정했다. 3년 후 패터슨은 한국으로 송환, 현재 서울구치소에 수감 돼 있다.

▲CNB가 입수한 1998년 건국 50주년 ‘8·15사면 발표문’. 이 문건에는 외국인 수형자 총 147명 중 79명에 대해 사면 조치했고, 79명 중 77명은 형집행정지로 석방, 본국 송환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2011년 11월 권재진 당시 법무부 장관은 “77명에 패터슨이 포함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사진=CNB)

1998년 광복절 특사 출국 대상에 패터슨 포함


결국 패터슨의 도주는 검찰의 허술한 감시 체계와 정부의 무분별한 특사 남용이 만들어낸 합작품으로 해석된다. 특히 검찰의 해명과 달리 정부는 패터슨을 출국 시키려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최근 CNB가 입수한 ‘8·15사면 발표문’을 보면 김대중정부는 1998년 광복절을 앞두고 ‘국난극복을 위한 국민대화합’을 내세워 건국 50주년 특별사면을 단행했다. 건국기념일인 8·15자로 총 7007명(가석방, 형집행정지 등 포함)에 대한 대규모 사면, 복권 등을 단행한 것.

법무부(당시 박상천 장관)는 “이번 사면으로 ▲공안사범과 공안관련사범 중에서 준법서약을 한 사람들 중 94명이 석방되고 9명이 감형되며 ▲ 5·18 및 12·12 사건 관련자 12명과 전직대통령 부정축재사건 관련자 2명이 특별복권되고 ▲일반형사범 2080명이 잔형집행면제와 가석방, 가출소 등으로 석방되고 집행유예 선고자 등 법적 제한을 받고 있는 4816명을 특별복권한다”고 밝혔다.

사면의 종류별 내역으로는 ‘석방, 복권 기타, 감형, 외국인 수형자’로 나뉘었다. 이 중 외국인 수형자의 경우 “인도주의적 견지에서 행형(行刑)성적이 양호한 외국인 수형자 77명을 형집행정지로 석방하여 본국으로 송환조치한다”고 기록돼 있다.

주목할 점은 ‘8·15사면 발표문’에 외국인 수형자 총 147명 중 79명에 대한 사면 조치다. 문건에는 ‘79명 중 77명은 형집행정지로 석방, 본국으로 송환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2011년 11월 권재진 당시 법무부 장관은 국회 대정부질문을 통해 “외국인 수형자 77명을 본국으로 송환하기 위한 일괄적인 형집행정지가 있었다. 거기에 패터슨이 포함된 것으로 파악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광복절 이후 패터슨을 출국 시키려 했다는 의구심이 드는 대목이다.


국회, 소 잃고 외양간 고치나

‘이태원 살인사건’을 계기로 패터슨과 같이 실형선고를 받은 범죄자가 해외 도피를 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이 24일 법무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해외 도피 실형 미집행자는 모두 355명(지난 6월 기준)이다.

연도별로는 2011년 292명, 2012년 325명, 2013년 341명, 2014년 330명에 이어 지난 6월 355명 등으로 꾸준히 증가했다. 공소시효가 지나 처벌이 불가능해진 해외 도피 사범은 89명으로 집계됐다.

이들이 가장 많이 도피하는 곳은 중국이 97명으로 1위를 차지했다. 패터슨이 도피한 미국은 40명으로 3위를 기록했다.

김진태 의원은 “재판으로 혐의가 입증되고도 해외로 도피할 수 있었던 것은 법무부의 출입국 관리에 허점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이에 대한 예방책과 해외 도피자의 검거대책이 요구된다”고 지적했다.

한편 패터슨은 23일 오전 4시26분 미국 로스앤젤레스발 대한항공편으로 인천국제공항에 도착, 서울구치소로 가기 전 자신은 범인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는 에드워드 리가 범인이라며 “내가 여기에 있는 것은 옳지 않다. 내가 한국에 온 사실이 충격적이다”라고 말했다.

검찰은 지난번 실수를 만회하겠다고 벼르는 분위기다. 2011년 패터슨을 기소한 박철완 부장검사가 이번에 직접 공소유지를 담당하게 됐다. 패터슨은 오병주 변호사를 선임했다. 오 변호사는 지난해 패터슨이 미국 법원에서 한국 송환 문제로 소송을 벌일 당시 그의 모친 부탁을 받고 법률 자문을 해 줬던 인연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과 변호인의 치열한 공방이 예상되는 가운데 ‘이태원 살인사건’의 재판 결과를 지켜보는 눈들이 많아지고 있다. 아울러 이번 사건으로 드러난 법의 허점들이 개선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CNB=최서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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