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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텔링] 어느 대작 알바생의 고백 “조영남 사건? 우린 을이에요”

‘관행’은 일부지만, 누군가에게는 ‘현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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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강소영기자 |  2016.05.19 14:56:33

▲조영남 작품이 ‘대작(代作)’임이 알려진 후 미술계는 발칵 뒤집어졌다. ‘대작 관행’이 일어나는 미술 장르가 있지만, 섬세한 붓 터치가 중요한 회화에선 대작을 할 이유가 없다는 지적 역시 나왔다. 관행의 현장에서 노동착취도 진행된다는 지적 역시 터져나왔다. (사진=연합뉴스)

조영남이 자신의 작품을 무명 화가에게 대신 그리게 했다는 대작(代作) 파문이 세상을 시끄럽게 하고 있는 가운데, 남의 작품을 대신 만들어주는 창작 문화가 미술계에 만연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설치미술·팝아트 등 여러 분야에 걸쳐 ‘대신 만드는’ 관행이 횡행하고 있다. CNB가 미술계 관계자들을 통해 ‘그럴 수밖에 없는’ 미술계 현실을 들여다봤다. (CNB=강소영 기자)

대작·열정페이 미술계 오랜 관행
조영남 사건의 본질은 ‘노동착취’
“우리는 그림자, 때 되면 숨어야"

남의 작품을 대신 제작하는 설치미술 알바를 했다는 A씨는 지난 17일 CNB기자를 만나 유명 설치 미술가의 성북동 작업실에서 주로 작업을 해왔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는 “작가가 “이런 느낌?”이라면서 콘셉트를 전화로 전하면 우리는 그 한 마디에 움직였다”고 말했다.

이어 “작업실에는 모두 비정규직도 아닌 알바(아르바이트) 30명이 있었다. 이들 중 일부는 1년 뒤 정규직이 될 것이란 말을 믿고 기다리는 이들도 있었지만, 1년이 지나도 고용주는 아무 말이 없었고, 고용주가 원하는 사람만 연장되곤 했다. 물론 근로계약서와 야근수당도 없었다”고 말했다.

또 A씨는 “우리가 고용되어 있다는 사실은 그림자처럼 아무도 알지 못해야 했다. 작가에 대해 외국에서 인터뷰라도 나오는 날이면 각 팀장들이 입단속을 시켰다. 우리는 해당 작가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회사라고 말했다”라고 전했다.

A씨는 “놀랐던 점은 내가 기형적인 고용 형태(정규직으로 고용하지 않는 등)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자 그게 왜 문제가 되느냐는 반응이 돌아왔다. 이후 야근을 하던 중 작업실로 피자가 배달됐다. 전무후무한 일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불만을 말하는 나를 보고 왜 영광스럽게 생각하지 않는지를 물었다”고 털어놨다. 

진중권 동양대 교수도 조영남 대작 파문과 관련, ‘노동 착취’를 들먹이며 ‘대작’이 문제가 아니라 ‘비정상적인 고용 행태’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진 교수는 18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개념미술이나 팝아트 같은 데서 작가의 개인적인 터치가 느껴지지 않는 부분에서 (대작이) 허용된다”면서도 “조영남 논란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10만원’으로 알려진 ‘노동의 댓가’였다. 노동을 제공한 사람에게 그에 응당한 댓가를 줬어야 한다”고 했다. 

A씨는 진 교수의 말에 동의했다. 그는 “이런 문제(부당노동 행위)를 제기하자 그들은 나를 이상하게 바라보았다. 불만을 얘기해도 대개 이미 굳어져 버린 관행을 당연하다고 믿으며 안주하고, 그래도 유명한 예술가의 밑에서 배울 수 있다는 것에 위안을 삼는 것 같았다”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지난 해 모 대학 미술과 실기에 참여한 학생들. 전문가들은 “미술 시장이 좁은데 인력은 많으니 ‘관행’을 하는 일부 이들은 값싼 노동력을 누리면서 기본적인 지침을 지키지 않는 경우가 있다”고 지적했다. (사진=연합뉴스)


작가 넘치지만 작품 수요 ‘태부족’

왜 그들은 ‘을’로서 살 수 밖에 없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을까. 

미술계 인사들은 조영남이 말하는 ‘관행’은 장르에 따라 다르며 미술계 일부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분개하고 있다. 이 경우 대작임을 밝히지 않고 ‘유명 연예인이 그린 그림’이라는 프리미엄을 얹어 상업 행위를 했다는 점이 비판 대상이고, ‘을’을 고용해 미술을 하는 사람들의 관행은 ‘또 다른 문제’라는 것이다. 

특히 조영남이 하는 평면 회화 분야에서는 ‘대작’이 드물다. 대신 기계적인 반복이 필요한 팝아트나 협업이 필요한 조각, 설치 미술 등에서 조수를 고용하는 경우가 많다. 드물게 경제적으로 어려운 작가들이 조수가 되기도 한다.

한 미술계 관계자는 “노동에 비해 부족한 댓가에 왜 불만이 없겠는가. 미술계에서는 소위 ‘줄’이 중요하다. 미술 시장이 워낙 좁아 유학까지 다녀와도 기존의 주류 그룹들(원로·중견·상업작가·개념미술·유학파 등)에 줄을 서지 않고는 재능을 펼치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박영택 미술평론가 겸 경기대학교 미술경영학과 교수는 CNB와 통화에서 “(미술계 처우가 열악한 것은) 첫째로 우리나라 미술 시장이 워낙 좁기 때문이다. 한 해 미술 작품 판매 금액이 3000억~4000억 정도다. 외국에 조 단위의 시장이 형성된 것을 생각하면 굉장히 제한된 것이다. 작품을 사는 사람들이 한정되니 공급도 적어진다. 미술을 전공한 사람들은 많은데, 꿈을 이룰 길이 한정되니 주류로서 자본을 가진 이들에게 모인다. 좁은 시장에 인력은 많으니 저임금 등 고용 문제가 개선되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둘째로 고용하는 이들의 생각이 바뀌어야 한다. 고용된 이들은 대부분 미술 전공자들로 유학을 마친 사람도 있다. 그에 맞는 대우를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미술시장에서 신인도 사회적으로 등용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평했다. 

(CNB=강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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