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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의문의 천경자 미인도 수사…검찰의 다섯가지 이상한 태도

우연이 반복되면 필연? ‘진품 결론’ 서두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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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도기천기자 |  2017.01.19 11:51:52

▲CNB가 단독입수한, 검찰이 미인도가 위작이라고 발표한 프랑스 감정단에게 보낸 이메일. “공식발표 전까지 한국 기자와 연락하지 않기를 권한다. 내(검찰) 결정이 내려질 때까지 침착하게 있어라”는 다소 위압적인 내용이 담겨있다. 프랑스 미술계는 한국 검찰의 이런 태도에 대해 분개하고 있다.

검찰과 고 천경자 화백 유족 간의 ‘미인도’를 둘러싼 진위공방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검찰이 무리하게 ‘진품’ 결론을 내린 정황이 곳곳에서 확인되고 있다. 미인도를 ‘가짜’라고 발표한 프랑스 감정단에게 강압적인 내용의 이메일을 보내는가하면,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의 집에서 미인도가 나왔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가공의 인물’을 수사 문건에 올린 사실이 CNB 단독취재로 확인됐다.  감정 과정 또한 석연찮은 점이 많아 의문이 커지고 있다. (CNB=도기천 기자)

檢 “김재규 유족들 미인도 맞다고 확인했다”
유족 측 “그림 파일만 봤고, 진품여부는 몰라” 

2015년 작고한 천경자 화백이 1991년 ‘미인도’가 위작(僞作)이라고 주장하며 시작된 진위 논란은 26년간 계속되고 있다. 6개월간 수사를 벌인 검찰이 지난달 ‘미인도는 천 화백이 그린 진품’이라고 결론 내렸지만, 앞서 미인도를 감정했던 프랑스 뤼미에르 테크놀로지 측이 ‘한국 검찰이 통계를 왜곡·조작했다’고 반박하면서 국제적인 사안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검찰이 서둘러 진품 결론을 내린 정황이 여러 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검찰은 미인도의 소장 이력을 발표하면서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이 소유했던 그림”이라고 밝혔다. 미인도가 김재규 자택 응접실 벽면에 걸려 있었다는 사실을 김재규의 부인 김모씨와 그의 딸을 통해 확인했다고 지난달 발표했다.  

하지만 CNB가 김재규 유족 측을 통해 확인한 결과, 검찰 주장은 상당히 부풀려진 것으로 보인다.
 
유족 측에 따르면, 법원으로부터 미인도 진위를 확인해 달라는 요청을 최초로 받은 사람은 김재규의 사위였다. 그는 아내(김재규의 딸)에게 이같은 사실을 알렸고 아내는 다시 삼촌(김재규의 동생)에게 이를 알렸다. 그러자 김재규의 동생은 형수(김재규의 처)에게 그림(미인도)의 확인을 요청했다. 

하지만 김재규 유족 중 어느 누구도 미인도를 직접 보지 못했다. 검찰에 출두해서 진술한 바도 없다. 검찰이 이메일로 보내온 이미지 파일(미인도 사진)을 보고 유족 중 한사람이 “과거 집에 걸어둔 그림과 비슷하다”고 답변한 게 전부였다. 특히 김재규의 딸은 이 과정에 전혀 관여 하지 않았다. 

유족 측은 “(김재규의) 딸이 진술했다는 검찰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며 “이미지 파일을 보고 옛날 집에 걸려 있던 그림과 모양이 비슷하다고 답변했다. 그 그림이 진품인지 가짜인지는 우리도 모르며, 그 점((가짜일수도 있다는 것)을 검찰에 분명히 전했다”고 말했다. 

김재규의 집에 미인도가 실제로 있었는지 여부는 진위 논란에서 상당히 중요한 부분이다. 10.26(김재규의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 직후 계엄사는 언론에 ‘김재규의 비위 사실’을 발표하면서 그림 1백여점이 그의 집에서 나왔다고 밝혔다. 이후 계엄사의 ‘김재규 증여(압수)물품 목록’에 미인도가 있었다. 검찰은 이를 근거로 “미인도의 소장 이력이 확실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재규 유족 측에 따르면, 40여년 전 김재규의 처가 숙명여대 동기동창인 절친으로부터 그림 한 점을 선물 받아서 응접실에 걸어뒀다. 그녀는 그 그림이 천 화백의 것인지 아닌지는 모른다고 밝히고 있다. 친한 친구로부터 위작을 선물 받았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검찰은 이런 가능성을 전부 배제했다. (관련기사: [단독] 천경자 미인도, 김재규 집에서 나왔다면 오히려 가짜일 가능성 크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작품분석카드에는 미인도가 ‘화선지에 담채’로 표기돼 있었다. 하지만 검찰의 불기소이유서에는 두꺼운 석채(암채) 기법이 사용됐다고 적혀 있다. 담채와 석채는 육안으로도 구분될 정도로 차이가 크다. 화랑계 일각에서는 누군가가 원래의 미인도에 손을 댔을 가능성을 의심하고 있다.


검찰, 프랑스 감정단 대놓고 압박 

검찰은 미인도가 위작이라고 발표한 프랑스 감정단을 노골적으로 압박하기도 했다. 지난해 11월 JTBC는 검찰에 앞서 미인도를 감정했던 뤼미에르 테크놀로지의 보고서를 입수해 미인도가 위작이라고 보도했다. 그러자 국립현대미술관(이하 국현)은 이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했다. 

이 즈음에 검찰은 뤼미에르 측에 이메일을 보냈다. 이메일에는 “공식발표 전까지 한국 기자와 연락하지 않기를 권한다. 내(검찰) 결정이 내려질 때까지 침착하게 있고, 그 이후에 너의 상대편과 맹렬히 논쟁을 벌여라. 그게 너와 한국 미술계에 모두 좋을 것이다. 한국의 과학적 기술력은 너희만큼 훌륭하다”는 내용이 담겼다. 메일의 발송 시기로 볼 때 국현의 반박에 대해 뤼미에르 측이 재반박하려는 것을 막기 위한 시도로 보인다. 

천 화백의 유족 측은 이를 두고 “감정인을 사실상 협박한 직권남용 행위며, 국제적 망신”이라고 비판했다. 

뤼미에르 테크놀로지팀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작품 ‘모나리자’ 속에 또 다른 여인상이 있다는 사실을 밝혀내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탄 감정단이다. 프랑스 미술계에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서 한국 법조계의 국제적 위상이 실추되고 있다.  

▲검찰이 지난달 19일 ‘미인도’가 진품이라고 발표하고 있다. 하지만 이후에도 소장 경로 및 진품 여부에 관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피의자 손에 수사자료 넘어가

국현의 발빠른 대처에 검찰이 도움을 줬다는 주장도 있다. 

지난해 6월부터 본격화된 미인도 수사는 천 화백의 차녀 김정희 교수(美메릴랜드주 몽고메리대 미술과)가 “미인도가 천 화백의 작품이 아님에도 진품처럼 주장하고 있다”며 바르토메우 마리 국립현대미술관장 등 6명을 사자명예훼손, 저작권법 위반, 허위공문서 작성 및 행사 혐의로 고소·고발한데서 비롯됐다. 

따라서 당시 국현은 피의자(피고소인) 신분이었다. 그럼에도 검찰로부터 각종 수사관련 자료를 넘겨받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실례로, 지난해 10월 뤼미에르 측이 최종감정보고서 파일을 검찰에 제출했는데, JTBC가 이 파일을 입수해 보도하자 바로 다음날 국현이 보고서에 대한 조목조목 반박하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냈다. 

보도자료 내용으로 볼 때, 검찰이 갖고 있는 최종감정보고서를 국현도 입수한 것이 분명해 보였다. 천 화백 유족 관계자는 CNB에 “검찰이 국현에 자료를 넘긴 것이 확실하다는 여러 정황증거를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국현 측은 “검찰이 수사의 필요에 따라 뤼미에르 측 보고서의 일부 내용에 대해 (국현에) 의견 개진 요청을 해왔고, 이에 따라 그 내용을 입장자료를 통해 밝힌 것”이라고 CNB에 알려왔다. 

▲프랑스 감정업체 ‘뤼미에르 테크놀로지’의 장 페니코 사장(왼쪽)이 지난 5일 파리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한국 검찰이 미인도 분석 통계를 왜곡·조작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담채→암채’로 둔갑 “왜”

재료 성분이 ‘담채’로 기록됐었던 미인도가 검찰 수사기록에는 ‘암채(석채)’로 분류된 점도 의문이다. 

담채는 물감을 엷게 칠하는 채색 기법이며, 암채는 광물질을 원료 물감으로 진하게 채색하는 화풍(진채)이다. 둘의 차이점은 육안으로도 뚜렷이 구분된다. 

국현 측은 그동안 미인도를 담채로 분류해 왔다. CNB가 단독입수한 2001년도 국현 홈페이지에 게시한 미인도의 작품설명, 2015년 국회에 제출한 작품분석카드 등에는 전부 미인도가 ‘화선지에 담채’로 표기돼 있었다. 

하지만 검찰은 지난달 불기소이유서(국현 관계자들을 무혐의 처리한 이유통지서)에서 미인도가 ‘암채’라고 밝혔다. 천 화백 만의 두껍고 독특한 석채 기법이 사용됐다는 것이다. 천 화백은 70년대부터 석채를 주로 사용해 왔다. 

그동안 담채로 분류된 이유에 대해서는 “국현이 작품정보 전산입력 과정에서 오류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하지만 화랑계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담채와 암채는 뚜렷한 차이가 있어 미술계를 대표하는 국현이 실수를 저질렀을 가능성이 낮다는 것. 미술계 일각에서는 천 화백 작품으로 보이게 하려고 누군가가 담채를 암채로 조작했을 가능성을 의심하고 있다. 

이에 대해 국현 측은 CNB에 “미술관 등록대장 원본에는 미인도의 재료 및 기법이 ‘화선지에 채색’으로 정확히 기록되어 있다”며 “2007년 소장품의 전산 관리를 위해 엑셀작업을 하던 중 미인도 바로 위와 아래 칸 작품인 ‘풍속도’와 ‘산수’의 작품 정보인 ‘화선지에 담채’가 복사되어 표기된 것으로 전산입력 과정에서 생긴 오류일 뿐, 조작했다는 건 억지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10.26직후 재판을 받고 있는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왼쪽)과 천경자 화백의 생전 모습. (사진=CNB포토뱅크)


미인도 실제 본 사람은 검찰측 감정단 뿐

이밖에도 검찰은 미인도 감정 과정에 고소인(천 화백 유족) 측 변호사들이 참관하지 못하도록 막는 등 이해하기 힘든 행동을 보인 것으로 전해진다. 결과적으로 검찰 측 감정단 외에는 미인도를 가까이서 직접 본 사람이 아무도 없다.   

뤼미에르 측은 검찰의 X선·원적외선·컴퓨터 영상 분석·DNA 분석 등 일체의 감정 기법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이 회사 장 페니코 사장은 최근 파리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세계적으로 알려진 알고리즘을 이용해 자외선에서 원적외선에 이르는 13개 스펙트럼 필터와 특수 카메라 렌즈를 활용해 그림 1개당 1650개의 단층을 촬영해 작품 간의 차이점을 분석했지만, 한국 검찰은 이를 참고자료로 사용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뤼미에르 측은 추가로 반박 자료를 만들고 있으며, 천 화백 유족 측은 오는 23일 고등검찰에 항고할 예정이다. 항고가 기각될 경우에 대비해 재정신청, 헌법소원도 검토하고 있다. 

유족 측과 국현이 26년 간이나 자존심을 걸고 다툼을 벌여온 데다, 한국 검찰과 프랑스 미술계까지 가세해 미인도를 둘러싼 진실공방은 더 거세질 전망이다. 

여기에다 ‘진품 미인도’가 김재규의 집에서 나왔다는 사실이 입증되면 김재규는 부정축재자로 낙인찍히게 되는 논리 구조인 만큼 미인도는 김재규에 대한 역사 재평가와도 맞물려 있다. 이처럼 미인도는 천 화백의 명예회복 차원을 이미 넘어섰다. 

(CNB=도기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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