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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한남3구역을 떠나야 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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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정의식기자 |  2019.11.21 15:39:41

박능생 작가의 수묵화 '한남동'.(자료=세종문화회관 미술관)

불과 20년 전까지만 해도 한남동은 한남대로를 사이에 두고 대학교와 주한미군 가족들이 거주하던 외국인아파트, 이태원으로 통하는 위락시설과 산동네, 한남대교 기슭의 고급주택가 유엔빌리지 등이 적당히 공존하던 동네였다. 이 모든 공간은 최근 20년간 빠르게 변모했다.

수많은 청춘이 오가던 단국대학교 서울캠퍼스 자리엔 서울 최고가 아파트로 유명한 ‘한남더힐’이 들어섰고, 다른 나라 영토처럼 느껴지는 철조망 쳐진 담벼락이 인상적이던 외국인아파트 자리 역시 고급 임대아파트 ‘나인원 한남’이 건설 중이다. 전통의 고급 주택가 유엔빌리지는 계속된 신축과 확장으로 한층 더 고급화됐다. 한남역 인근 저지대의 오래된 주택가도 대부분 아파트와 주상복합으로 바뀌었다.

변하지 않은 건 한광교회와 이슬람사원이 만든 독특한 스카이라인으로 유명한 서쪽 구릉지의 오래된 주택가 뿐이었다. 하지만 ‘달동네’로 불리던 이곳의 색다른 풍광도 조만간 사라지게 된다. 역대최대의 재정비사업으로 알려진 한남3구역 재개발의 시공사 선정이 코앞인 상태기 때문이다.

 

현대건설과 GS건설, 대림산업 3사는 저마다 최고급 아파트단지를 만들겠다며 조합원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바삐 뛰고 있다. 연말까지 어떤 건설사가 시공사로 정해지든 이 구역의 독특한 스카이라인은 한강변을 둘러싼 수많은 아파트단지 중 하나로 바뀔 전망이다.

궁금해지는 건 이 구릉지에 현재 살고 있는 사람들의 미래다. 과연 어떤 이들이 현재 이곳에 살고 있고, 이들 중 새로 지어지는 고급 아파트에 살게 되는 사람은 얼마나 되는지. 이곳에서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떠나야 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되는지. 그리고 그들이 갈 곳은 어디인지 등의 물음이다.

 

한남3구역 일대.(사진=연합뉴스)

한남3구역 사업시행계획에 따르면, 개발 예정지에 살고 있는 전체 세대 수는 8027세대다. 이 중 조합원은 1438세대이며, 세입자가 6589세대다. 또, 한남3구역의 철거대상 건물 동수를 살펴보면 단독주택이 1883동이며, 이 중 다가구가 439동이다. 공동주택은 총 342동으로 아파트가 19동, 연립 31동, 다세대 공동주택이 243동이다. 합계 2225개의 건물에 8027세대가 거주하고 있었던 곳이다.

이 지역이 개발돼 만들어지는 건 5816세대 규모 아파트 뿐이고, 여기 거주할 수 있는 조합원은 1438세대이며, 임대주택도 876세대에 불과하다. 단순히 계산해도 최소 5700여 세대는 한남3구역을 떠나야 한다. 조합원들의 경우 애초에 한남동에 거주하고 있지 않은 경우가 많아서 여기 포함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흔한 얘기지만 이 지역에서 토지‧주택을 보유하고 장기간 거주하다 조합원 자격까지 얻은 사람은 많지 않다. 장기 거주자 대부분은 이미 수년 전 적당히 오른 가격에 토지‧주택을 팔아치우고 외지로 떠났다. 그들에게 조합원 자격을 사들인 외지인들이 현 조합원이며, 이들 대부분은 여전히 외지에서 살고 있다. 새 아파트의 입주가 시작되면 그들이 한남3구역의 새 주민이 된다.

문제는 세입자로 분류된 6589세대 중에서 임대주택 및 주거이전비를 받는 세대가 1347세대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 나머지 5242세대는 주거이전비조차 받지 못하고 새로 살 곳을 알아봐야 한다. 하지만 그들이 가진 ‘총알’은 너무 적다.

한남3구역의 현 거주민 대부분이 이미 수도권 각지에서 밀려난 이주민이기 때문이다. 공사가 코앞인 달동네의 특성상 전세보증금이나 임대료가 매우 저렴하다보니 현재 이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 대부분이 70~80대 저소득층 노인들이다. ‘달동네’로 통하던 도심 저소득층 거주지가 빠른 속도로 사라지고 있는 시대에 이들이 터잡을 수 있는 곳은 과연 어디일까?

최근 한남3구역에서 만난 한 주민은 이렇게 표현했다.

 

“영화 ‘기생충’을 보면 주인 가족이 집을 비운 동안 가난한 주인공 가족이 잠시 주인인 채 거들먹거리지만, 주인 가족이 돌아오기 무섭게 바퀴벌레처럼 집안의 어두운 곳으로 스며들지요. 재개발 공사가 시작되면 부리나케 살 곳을 찾아 뿔뿔이 흩어져야 할 이 지역 노인들의 신세와 참 흡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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