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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에 진주출신 화가 작품 포함

이성자 화백의 ‘천년의 고가’(1961), 박생광 화백의 ‘무녀’(1980)… “문화예술의 도시 진주의 자긍심을 한껏 끌어올리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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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손민지기자 |  2021.07.26 11:31:17

내고 박생광 화백의 ‘무녀’ (사진=경상국립대 제공)

경상국립대학교는 이달 21일부터 내년 3월 13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는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에 진주 지역 출신 화가인 일무(一無) 이성자(李聖子) 화백의 작품 ‘천년의 고가’(1961)와 내고(乃古) 박생광(朴生光) 화백의 작품 ‘무녀’(1980)도 주요 컬렉션으로 전시 중이라고 밝혔다.

지난 2018년 이성자 화백 탄생 100주년 기념 전시를 개최한 국립현대미술관은 이번 전시에 이성자 화백의 여성과 대지의 시대 작품 중 하나인 ‘천년의 고가’를 포함했다. 이는 미술계뿐만 아니라 지역에서도 상징성이 크다.

이 화백은 1951년 프랑스로 건너가 미술기법의 기초부터 배운 한국의 1세대 추상화가지만, 1965년 한불수교 전에는 한국에 들어올 수 없었기에 고국에 두고 온 세 아이와 가족, 모국을 그리워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움을 달래기 위해 그는 ‘진주1960’(1960), ‘4인의 용맹한 기수’(1960), ‘내가 아는 어머니’(1962), ‘새벽의 속삭임’(1963), ‘오작교(1965)’ 등을 남겼다. 이 시기 작품들은 자신이 땅에 씨앗을 심듯이 다시 만나리라는 희망의 그리움을 덧씌우고 씌워서 화폭에 담았다.

고 이건희 회장이 소장했던 ‘천년의 고가’는 그가 고국에 두고 온 세 아들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며 언젠가는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작품이다. 그의 회고에 의하면 프랑스에서 초창기에 자신이 붓을 놓지 않았던 이유는 걸음마를 막 떼고 엄마의 품에 안겨 행복한 시간을 보내야 할 그의 세 아들 때문이었다.

그는 “붓질 한 번 놓아 버리면 자신의 아이들이 굶을 것 같아 붓을 놓을 수 없었다”며 “붓질 한 번 놓아 버리면 자신의 아이들에게 학용품을 사 줄 수 없을 것 같아 붓을 놓을 수가 없었다”고 밝혔다. “붓질 한 번 놓아 버리면 자신의 아이들에게 옷을 사 줄 수 없을 것 같아서 붓을 놓을 수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 마음은 바로 마르지 않은 어머니의 마음 ‘모천(母川)’이다. 이 모천이 그에게 살아야 하는 이유를 제공했을 것이고 마치 어머니가 군대 간 아들의 무사 귀환을 빌며 밤잠 설치며 기도하듯 그렇게 작품에 혼을 담았다.

애간장을 녹이는 그리움을 화폭에 담아 대화하듯 그런 마음으로 그림을 그린 한국추상화 1세대 화가 이성자의 작품 세계를 재조명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특히, 한국 여성 최초로 프랑스에서 처음으로 미술기법부터 배웠고 프랑스가 수여한 문화훈장을 두 번이나 받은 이 화백의 대표 작품이 이번에 세상으로 나와 한국 화단에서 그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이 화백은 자신이 아끼던 작품을 선별해 진주시에 기증하며 “진주는 저에게 영원한 모천입니다. 유년의 기억을 간직한 진주를 흠모하고 기리는 것은 저의 당연한 도리”라고 전했다. 진주의 아이들이 자신의 작품을 보고 꿈을 키우길 바라고 자신의 작품 기증이 계기가 돼 진주도 프랑스의 여느 도시처럼 세계적인 예술의 도시가 되기를 바란다고도 전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전시는 진주가 이 화백의 염원처럼 문화예술의 모천으로서 제 역할을 하는 데 힘이 실리는 계기도 될 것이다.

이 화백 미술작품 기증으로 건립된 진주시립이성자미술관은 지난 2015년 준공되어 시민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기획, 전시하고 있다. 개관기념전으로 ‘은하수 그곳에 꿈을 꾸다’전을 비롯해 ‘내고 박생광-대안동 216번지에서’, ‘도시를 넘어 우주로-소장품’전 등이 전시됐다.

더불어 내고 박생광 화백은 진주시 망경동에서 태어나 1920년 17세의 젊은 나이에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해방될 때까지 그곳에서 작품 활동을 했으며 광복과 함께 귀국했다. 진주시 대안동 216번지는 청동다방이 있던 곳으로 그가 유학을 마치고 고향 진주로 돌아왔을 당시 설창수를 비롯한 진주지역 예술인이 일제의 민족문화 말살 정책에 억눌렸던 예술의 혼을 되살리고자 조직한 모임 장소다. 개천예술제의 시초인 영남예술제의 탄생을 이뤄낸 곳이자 진주의 예술이 태동한 장소다.

‘색채의 마술사’ 혹은 ‘민족혼의 화가’로 불리는 박 화백은 “전통을 떠난 민족예술은 없다”고 강조하며 단색조의 모노크롬이 주류를 형성하고 있던 1980년대 초반 민화를 비롯해 불화, 무속화 등에서 발견한 토속적인 이미지를 단청의 강렬한 색채로 화폭에 담아 당시 국내 화단에 새로운 바람과 충격을 줬다.

박 화백은 어린 시절 사찰의 단청에서 강렬한 인상을 받았고, 한국불교의 정신적 지주의 한 사림인 청담스님과 진주농업학교(현 경상국립대학교 12회 졸업생) 동기이자 둘도 없는 친구다. 불교적 색채가 강한 그의 작품은 민족회화의 새로운 세계를 개척했으며, 역사적 주체성을 회화로 표현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민속적이고 원색적인 색감이 다채로운 박생광의 ‘무녀’는 “일반 회화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무신과 부적이 등장하고 빨강 노랑 파랑 초록 등 오방색들이 강렬하고 생생한 장면을 만들어낸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편, 이 화백에 대한 논문을 쓴 안영숙 경상국립대 박사는 “이건희 컬렉션 특별 전시는 우리 지역 출신 화가를 기리기 위해 지역에서 어떤 활동을 해야 하는지 생각하게 할 뿐만 아니라 지역에 미술관이 많다는 것이 지역의 자부심과 직결된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고 말했다.

또 진주시립 이성자 미술관 후원회 회장인 권순기 경상국립대 총장은 “컬렉션 가운데 가장 중요한 작품을 엄선해 전시하는 국립현대미술관의 특별전에 진주출신 화가의 작품이 2점이나 전시되는 건 실로 대단한 일이다. 이성자·박생광 화백은 우리나라 현대 미술계를 대표하는 거장으로 충분히 대접받을 만한 일로 문화예술의 도시 진주의 자긍심을 한껏 끌어올리고 있다. 기회가 되면 직접 작품을 보고 싶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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