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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국화, 피의 이미지, 그리고 권력의 슬픈 울음소리

- <영화평>, 장예모의 <황후화>를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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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김대갑기자 |  2007.04.07 10:50:22

▲황제와 황후

‘당신들이 진정한 사내라면 이 술을 먹고 라오한의 복수를 갚아 줘요!’

1987년 장예모 감독이 연출한 ‘붉은 수수밭’에서 추알(공리 분)이 양조장 일꾼들에게 고량주를 건네주면서 분노의 어조로 외쳤던 이 말은 영화의 하이라이트이자 감동이었다. 그리고 공리와 장예모를 세계적인 배우와 감독으로 만든 완벽한 대사였다. 장예모는 중국 영화계를 이끌 거물로 등장하였으며 공리는 이 영화 한편으로 세계적인 배우가 되었다. 개인적으로 연인이었던 두 사람은 그 후에 국두와 홍등 에서도 호흡을 맞추면서 중국의 내면을 2차원의 스크린 위에 감동적으로 그려냈다. 그런 장예모와 공리가 다시 호흡을 맞춰 찍어낸 한편의 블록버스터가 있으니 그게 바로 ‘황후화’이다.

‘붉은 수수밭’과 ‘국두’, 그리고 ‘홍등’은 스토리 중심의 예술 영화적 성격이 짙었다. 장예모가 주목 받았던 이유는 근현대를 거치면서 탄압과 착취를 받았던 중국 인민들의 모습을 리얼하게 그려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중국이 개혁개방의 길로 걸어가고, 마침내는 자본주의로 완전하게 변모하면서 장예모의 영화들은 점차 할리우드식 블록버스터의 문법을 따라갔다. 이연걸이 주연한 ‘영웅’과 장국영이 주연한 ‘연인’이 그 대표적인데, 두 영화 모두 홍콩식 무협 액션과 중국 대륙 식 ‘뻥’이 비빔밥처럼 잘 결합된 것이었다.

장예모가 ‘연인’이후 근 2년간의 침묵을 깨고 발표한 ‘황후화’는 이전의 ‘영웅’이나 ‘연인’보다 더 한층 발전된 무협액션 영화이다. 그리고 이런 영화들에는 영화를 선전선동의 도구로 활용하기 원하는 중국 공산당 지도부의 의중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들의 의중은 단 하나이다. ‘절대 권력인 공산당의 권위에 함부로 도전하지 마라!’.

결국, 진시황이 등장하는 ‘영웅’과 당나라 황제가 등장하는 ‘황후화’는 권력이 몰아 준 초대형 자본의 혜택을 고스란히 본 영화인 것이다. 중국 인민의 리얼함을 잘 그려냈던 사실주의 영화감독 장예모가 어느새 할리우드식 잡탕 영화감독으로 변신하고 만 것이다.


영화 ‘황후화’에는 다양한 소품들과 장치들, 화려한 액션과 선정적인 볼거리, 선정적인 이야기들이 450억 원이라는 대형 자본의 위력에 맞물려 화려하게 등장한다. 그리고 이 영화를 맨 처음 견인하는 두 개의 중요한 소재는 ‘국화’와 ‘보약’이다.

황후화에서 국화는 절대 권력자 황제의 권위를 상징한다. 노란 색감의 국화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 황금을 의미하며, 황금은 최고 권력자 황제의 금속이다. 황실만이 노란 옷을 입을 수 있으며, 황실만이 금색을 사용할 수 있다. 적어도 당 황실에 있어서 노란 색은 황실 가족만이 특권적으로 이용하는 색깔인 것이다. 영화의 말미인 중양절 축제날에 노란 색 국화가 궁중 마당을 가득 메우는 것도 바로 이런 연유이다.

황후(공리 분)가 국화 꽃 자수가 새겨진 머플러를 아들이자 둘째 왕자인 원걸에게 매주는 행위는 현 황제(주윤발 분)의 권력을 빼앗아 아들에게 이동시키겠다는 강한 의지를 나타낸 것이다. 그리고 전처의 소생이자 자신과는 불륜관계인 태자를 쿠테타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장치로도 등장했다. 태자는 그 국화 머플러를 단호히 거부했지만.

또 하나의 소재인 ‘보약’은 황제와 황후의 비정상적인 관계를 극적으로 암시하는 장치이자 그들의 은밀한 적대적 관계를 드러내는 소도구이다. 양나라 공주인 황후의 도움을 받아 절대 권력을 쟁취한 황제는 매일 소량의 독을 황후의 ‘보약’에 삽입하도록 지시한다. 이제 황제에게 황후는 용도폐기의 대상이 된 것이다. 자신의 약점을 누구보다 잘 아는 황후이기에 황제는 황후를 반드시 제거해야 했다. 그러나 그 제거는 그 누구도 눈치 채선 안 된다. 아주 은밀하게 진행되어야 한다.

▲왕자의 반란

황후화의 밑바탕을 이루는 무대 장치는 이른바 ‘중양절’ 축제이다. 가장 완벽한 수인 9가 두 번 겹친 중양절은 고대 중국의 최대 명절이며 황실이 가장 중요시하는 날이다. 황제는 중양절을 지낸 후에 태자인 원상을 폐위하고 둘째인 원걸에게 권력을 물려줄 생각이었다. 그래서 황제는 국경에서 만난 원걸에게 자중 자애하라고 당부한다. 그러나 원걸은 자신에게 독약을 먹이는 황제를 처단하려는 황후의 계획에 자연스레 동참하면서 권력을 전수받기 위한 기회를 스스로 차단하고 만다. 바로 여기에서 황실 가족의 비극이 탄생하는 것이다.

영화 황후화의 원작은 중국 현대 연극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차오위의 ‘뇌우’라는 작품이다. 뇌우는 5대 십국이 난무하는 후당 시대의 혼란기에 당나라 황실에서 벌어지는 암투극을 묘사한 작품인데, 명확한 인문적 가치와 도덕적 가치를 잘 드러낸 수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황후화는 원작에서 보여 지는 가치를 단순히 황실 속만의 암투극으로만 그려냈기 때문에 중국 현지의 비평계로부터 혹독한 비판을 받았다고 한다.

사실, 황후화에서 어떤 도덕적 가치를 발견하기는 어렵다. 굳이 발견하자면 공산당 지도부의 통치이데올로기를 발견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명확하지는 않다. 이 영화를 오락적 기능에서 바라보면 그저 단순한 무협 영화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영화 말미에 등장하는 원걸의 군사와 황제 군사간의 대규모 전투 장면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 뒤지지 않는 흥미로움과 볼거리를 제공한다. 게다가 첫 장면부터 등장하는 궁중 여인들과 공리의 터질 듯한 젖가슴 복색은 선정적인 볼거리를 상영 내내 제공한다.

황제와 황후의 적대적인 관계, 태자와 황후의 불륜 관계, 태자와 소찬의 비자각적인 근친상간 관계가 결국 비극으로 끝나고 마는 황후화. 감시와 통제의 독재자이자 자신의 절대 권위에 도전하면 가차 없이 제거하는 황제가 아내와 아들을 모두 물리치고 힘겹게 승리를 쟁취하는 황후화. 기실, 이 영화의 결말은 너무 허무하다. 중양절 축제날 아버지의 군사에게 자신의 모든 군사를 살상당한 채 체포된 원걸은 황후에게 보약(사실은 독약)을 먹이라는 황제의 명을 자결로써 거부한다. 그리고 곧 이어 터지는 황후의 단말마적인 비명. 바로 이런 허무한 결론 때문에 혹자는 천박한 상업적 볼거리만 보여줬을 뿐 도대체 무엇을 이야기 했냐며 강하게 비판한 것이다.
영화를 선전선동의 도구로 활용하겠다는 생각은 중국 지도부의 생각이겠지만 그 영화를 다양하게 해석하는 것은 대중의 몫이다. 따라서 황후화에 어떤 이데올로기가 숨어 있다고 예단하는 것은 어쩌면 상당히 위험한 사고일 수도 있다. 장예모가 의도한 것은 전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또 설혹 그가 그렇게 의도했다 해도 영화는 다양하게 해석되는 여운을 가진 매체이다.

결론적으로 황후화는 다소 씁쓸한 기분을 자아내는 영화이다. 영화적 볼거리나 영상미로 따진다면 황후화는 분명 잘 된 영화임에 틀림없다. 중국 대륙의 호방한 기질을 아낌없이 보여준 영화이다. 또한 블록버스터 영화 시장에서 미국의 독주에 유일하게 대항할 수 있는 중국 영화의 거대함을 가졌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장예모는 제임스 카메룬이나 스필버그에 버금가는 세계적인 영화감독이라고 볼 만하다.

그러나 자꾸만 입맛이 쓴 이유는 살상 장면의 과다한 삽입 (왕자들 간의 살인, 막내 왕자를 가혹하게 죽이는 황제, 황제 전처와 소찬의 잔인한 살해 장면, 대규모 전투 신에서 보여 지는 집중적인 피의 이미지)과 선정적인 볼거리만을 제공했을 뿐, 중국 인민의 내면세계를 그려낸 장예모의 예술적 의지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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