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융소비자연맹·민변·참여연대·금융정의연대·금융소비자네트워크 등 시민사회단체는 지난 1일 서울 태평로 삼성생명 본관 앞에서 ‘생명보험사 자살보험금 지급촉구 규탄 공동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이성호 기자)
자살보험금(재해사망보험금)을 주느냐 못주느냐를 둘러싼 생명보험사들과 유가족 간의 갈등이 사회적 이슈로 불거지고 있는 가운데, 결국 공은 법원으로 넘어갔다.
일부 생보사들이 ‘보험금 청구권 소멸시효 2년(2015년 3월 이후부터 3년)’이 지난 자살보험금은 대법원 판단에 따르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향후 치열한 법정공방이 예고된 상태다. CNB가 소비자 공동소송을 이끌고 있는 조정환 변호사(법률사무소 힐링)를 지난 1일 만나봤다. (CNB=이성호 기자)
“소멸시효 보다 ‘약관’이 우선
약관대로 하는 게 ‘신의 원칙’
약속 어기면 누가 보험 들겠나”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ING·삼성·교보·알리안츠·동부·한화·신한·KDB·메트라이프·현대라이프·PCA·흥국·DGB·하나 등 생보사들의 자살관련 미지급 보험금은 2980건에 2465억원이다. 이중 소멸시효를 넘긴 것은 2314건(78%)이며 금액으로는 2003억원(81%)에 달한다.
그동안 생보사들은 약관상 단순 실수이며 자살은 재해가 아니라는 주장으로 자살보험금의 지급을 거부해왔다.
하지만 지난달 대법원은 보험 가입 후 2년이 경과한 자살과 관련해 생보사가 판매한 재해사망특별약관에 기재된 대로 자살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취지의 판결을 했다. “약관은 지켜져야 한다”는 것인데, 소멸시효가 경과된 건도 지급해야 하는지에 대한 대법의 판단은 아직 나오지 않은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금융감독원은 해당 생보사들에게 소멸시효와 관계없이 보험금을 주라고 권고했고 지급을 거부·지연한 회사 및 임직원에 대해 엄정히 조치할 것이라고 경고한 상태다. 그러나 지급 액수가 큰 일부 보험사들의 경우 일단 대법원의 판결을 기다려 보겠다는 방침이라 법원 판단에 시선이 쏠리고 있다.
현재 금융소비자연맹에서는 100여명의 소비자들을 모아 20개 재판부에서 보험금 공동청구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조 변호사는 소멸시효가 지났기 때문에 보험금을 줄 수 없다는 생보사들의 항변은 어불성설이라고 주장했다.
-자살보험금 관련 소송을 맡게 된 계기는.
금융소비자연맹 자문변호사로 10년 넘게 활동하고 있다. 보험사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들에 대해 재해사망보험금을 지급한다고 했으나 태도를 바꿔 주지 않자 금소연과 함께 문제제기를 했고, 의논도 함께 해오다가 피해자들을 모아 공동소송을 진행하게 됐다.
-보험사들이 자살보험금을 지급해야 하는 근거는.
약관에 보험 가입 후 2년이 경과한 후 자살한 경우 약정보험금을 지급한다고 보험사 스스로 명시했다. 최근 대법원에서 약관대로 지급해야 한다는 취지로 판결했고 대법은 이보다 앞선 지난 2007년에도 ‘재해보장특약’에서 약정한 재해사망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시한 바 있다.
-약관상 눈여겨 볼 다른 조항은.
자살보험금 지급사유에 해당되지 않을 경우 약관에서는 ‘계약자에게 이미 납입한 보험료를 돌려드립니다’라고 적시해 놨다. 즉 보험사는 자살보험금을 주지 않을 경우 납입한 보험금을 돌려줬어야 한다. 하지만 약속에 따른 보험금도 안줬고 납입한 보험료 환급도 안했다. 이는 보험사들이 약관 해석을 달리한 게 아니라 아예 관련 조항을 통으로 배제해 버린 것으로 애초에 악의성을 가지고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은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소멸시효는 시간이 흐르면 완성되는 것이기에 물론 적용하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또 아예 보험금을 청구하지 않는 경우 보험사는 지급할 필요가 없고 미지급 사유에 대한 설명을 하면서 지급을 거절할 순 있다.
하지만 보험금을 청구했으나 설명도 해주지 않고 지급을 거부했기 때문에 소멸시효를 적용할 수 없다. 보험업법에 따르면 보험금을 감액해 지급하거나 지급하지 않는 경우 그 사유를 설명해야 한다.
더불어 금감원에서 만들어서 각 보험사가 내부통제기준에 반영한 ‘보험금 지급업무에 관한 모범규준’에 따르면 부지급 및 감액 지급된 경우 설명하거나 통보하고 안내장을 교부해야 하는데 이러한 절차가 전혀 없었다.
따라서 소멸시효가 완성됐다고 보험금을 주지 않는다는 생보사들의 항변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소멸시효 관련 재판 진행 상황은.
생보사들은 소멸시효가 지났다고 주장하지만 이것이 신의칙(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느냐 아니냐가 관건이다. 사실 소멸시효 완성 항변은 간단하다. 2년이 지나면 끝이라는 것인데 반대편에서 이것을 신의칙 위반이라고 입증하기는 매우 어렵다.
즉 법원에서는 소멸시효와 관련해 신의칙 위반 인정 요건을 엄격하게 적용하고 있어 재판 결과를 쉽게 예상할 수 없다.
현재 1심에서 20개 사건 중 6건에 대해서만 소멸시효 완성 주장이 신의칙에 반한다고 판단했다. 진행 중인 2심에서도 2건이 올라갔지만 아직 이긴 게 없다. 향후 판결 결과를 지켜봐야 한다.
-못다 한 말이 있다면.
보험사들이 아예 작정을 하고 약관을 무시해가며 보험금을 주지 않았기에 신의칙을 위배했다. 법원에서 신의칙 위반에 해당 안 된다면 약관규정 만이라도 적용돼야 한다.
모든 생보사 약관에는 ‘회사는 계약과 관련해 임직원, 보험설계사 및 대리점의 책임 있는 사유로 인해 계약자, 피보험자 및 보험수익자에게 발생된 손해에 대해 관계법률 등에 따라 손해배상의 책임을 집니다’라고 적시하고 있다. 자살보험금을 거부한 것은 책임 있는 사유가 될 것이며 여기서 손해배상이란 미지급한 보험금이라 하겠다.
보험사들은 ‘최대 선의의 원칙’에 따라 최대한 성의를 다해 약속한 보험금을 지급해야 할 것이다.
(CNB=이성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