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원섭기자 |
2016.11.08 12:50:28
▲박근혜 대통령이 8일 국회를 전격 방문해 정세균 국회의장을 만나 “국회가 총리를 추천해 준다면 총리로 임명해 내각을 통할하도록 하겠다”고 최순실 정국수습을 위해 국회가 추천한 총리를 임명해달라는 야권의 요구를 수용하겠다는 의사를 공식적으로 밝힘에 따라 ‘김병준 카드’를 사실상 철회하면서 차기 총리 후보군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사진=연합뉴스)
현재 여야와 청와대가 구상하는 총리의 공통분모는 박 대통령으로부터 국무위원 제청권을 포함한 내치의 전권을 넘겨받아 남은 임기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총리를 의미하는 ‘책임총리’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사실상 박 대통령의 2선 후퇴를 가정해야 하는 만큼 새로운 총리의 최고 덕목은 안정적인 국정운영 능력으로 박 대통령의 무너진 리더십을 메우고 국정 공백이 없도록 해야 한다는 점에서 풍부한 국정운영 경험이 있으면서 정치적 색채가 옅은 원로급 인사가 추천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인물을 추천할 것이냐를 놓고는 정치적 입장이 다른 여야 간에 갈등이 빚어질 가능성이 있다.
여당 입장에서는 최우선 순위가 보수적 가치를 흔들지 않으면서도 여소야대 정국에서 야당이 수용할 만한 인사라는 점에서 야당이나 김대중-노무현 정부 출신 인사도 후보군이 될 수밖에 없다는 인식을 보이면서도, 이들 가운데서도 진보 노선으로 한쪽에 치우친 인사를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기류가 역력했다.
글러므로 여당이 ‘김병준 카드’를 꺼내기 전에 다소 께름칙한 경제민주화를 주장해왔지만, 여권에 몸담은 전력이 있어 보수적 색채도 가진 데다 노태우 정부에서 경제수석을 지내 풍부한 국정운영 경험을 지닌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 대표와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 출신으로 여권에 대한 이해도가 있는 데다 중도적 이미지도 강하고, 경기도지사를 지내 행정 경험도 가진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를 거국중립내각의 총리 후보군으로 입에 올린 것도 이런 인식이 깔려있다.
야당으로선 국정운영 능력과 함께 ‘최순실 국정농단’ 파문을 엄정한 잣대로 다룰 수 있는 인사를 우선순위에 둘 것으로 보이며, 특히 경제·민생과 안보를 챙길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함은 물론이지만 민주당과 국민의당은 후보군을 놓고 조금씩 온도 차를 보이고 있다.
특히 민주당 내부에서는 당장에 거국중립내각 총리에 대해 수용 의사를 내비친 바 있는 손 전 대표에 대해서도 반응이 엇갈리는 등 구체적인 인물로 들어갈 경우 셈법이 복잡해질 수 있다.
손 전 대표에 대해 꾸준히 ‘러브콜’을 보내온 국민의당은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반면, 친노·친문이 주류인 민주당 쪽에서는 정체성 등을 이유로 반기지 않는 분위기이며, 특히 김 전 대표와 손 전 대표는 개헌에 적극적인 만큼 친문 진영에선 껄끄러울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는 이날 비상대책위-국회의원 연석회의에서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가 동교동계 인사를 총리 후보로 접촉했다는 사실을 공개하면서 “야당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비판하는 등 이미 차기 총리 후보를 놓고 여야 간 신경전도 시작됐다.
이 같은 정치권의 움직임에 대해 정세균 국회의장은 “총리 후임 문제로 또 밥그릇 싸움하면 국민이 어떻게 보겠는가. 진짜로 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우리 헌정사에서 대통령이 아니라 국회가 ‘실질적으로’ 총리를 뽑는 것은 처음 있는 일로서 국무총리는 헌법 제86조에 따라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돼있다.
대통령, 또는 대통령 당선인이 국무총리 후보자를 지명하면 인사청문회법과 국회법에 따라 업무능력과 도덕성 등을 검증한 후 국회 본회의 표결 절차를 통해 인준 여부를 결정하며 인준안 가결 요건은 국회 재적의원 과반 출석과 출석의원 과반의 찬성이다.
국회가 여야의 정치적 합의에 따라 새로운 총리를 추천하더라도 이 같은 헌법적 틀을 벗어날 수는 없지만 지금처럼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총리 후보를 지명하는 것이 아니라 국회가 대통령에 추천하는 방식으로 총리 후보를 실질적으로 지명하고 대통령은 형식적인 지명권을 행사하는 구도로 바뀌게 되기 때문에 결국 국무총리 지명절차의 완성은 국회에서 이뤄지는 만큼 ‘여야 동의’가 후보자 추천의 제1기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