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지난 4일 당 기관지 노동신문을 통해 탈북민 대북 전단(삐라) 살포에 불쾌감을 표하며 남북 군사합의 파기 가능성까지 거론하자, 정부가 이에 적극 호응해 논란이 일고 있다.
통일부는 김여정이 노동신문을 통해 대북 전단 살포를 비난한지 불과 4시간 반만에 입장을 내놨다.
통일부 여상기 대변인은 4일 긴급브리핑을 통해 “정부는 이미 여러 차례 전단살포 중단에 대한 조치를 취해왔으며 대북전단 중단 법률안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통일부는 “접경지역 국민의 생명과 재산에 위협을 초래하는 행위”라고 규정하면서 “판문점 선언 2조 1항에는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확성기 방송과 전단살포를 비롯한 모든 적대행위들을 중지하고 그 수단을 철폐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접경지역 평화적 이용을 위한 법률, 한반도 평화기반 강화·구축하는 것과 관련한 여러 법제를 검토하고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되는 법안에 전단 관련 내용도 포함하려 한다”고 말했다.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도 즉각 보조를 맞췄다.
민주당 윤건영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서 “전단 살포 행위는 대한민국 국익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대부분 대북 전단은 북한 땅까지 가지도 못하고 대다수가 고스란히 우리 땅에서 발견돼 실제 효과는 거의 없고 상대만 자극할 뿐인 전단을 왜 뿌려야 하냐”고 반문했다.
아울러 윤 의원은 “살포할 때 쓰는 수소가스는 위험성이 높아 잘못 관리하면 막대한 피해를 볼 수 있다”며 “더욱이 북한은 대북 전단을 살포하면 조준사격을 하겠다고 경고해 왔기에 전단 살포는 오히려 우리 국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김홍걸 의원은 “지금 북측은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위기로 어렵던 나라 사정이 심각한 수준으로 악화하고 있다”며 “우리 측에게 성의를 보여주면 대화에 나설 수 있다는 신호”라고 긍정적으로 해석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북전단 살포를 원천 차단하면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를 침해해 위헌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있어 입법 과정에서 상당한 논란이 예상된다. 그간 역대 정부에서 대북전단 살포를 막으려 했지만 표현의 자유 침해 문제로 인해 미온적으로 대응했었다.
또 북한의 비판에 대해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호응한 것을 두고도 논란이 일고 있다. 외교관례와도 맞지 않고 그간의 북한 태도로 볼때 우리정부가 너무 물러선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김여정 제1부부장은 이날 대북전단 살포와 관련한 담화에서 “남조선 당국이 응분의 조처를 세우지 못한다면 금강산 관광 폐지에 이어 개성공업지구의 완전 철거가 될지, 북남(남북) 공동연락사무소 폐쇄가 될지, 있으나 마나 한 북남 군사합의 파기가 될지 단단히 각오는 해둬야 할 것”이라고 남북 군사합의 파기 가능성까지 거론했다.
이어 김 제1부부장은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삐라 살포 등 모든 적대행위를 금지하기로 한 판문점 선언과 군사합의서 조항을 모른다고 할 수 없을 것”이라며 “방치된다면 남조선은 머지않아 최악의 국면까지 내다봐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김 제1부부장은 “나는 못된 짓을 하는 놈보다 못 본 척하거나 부추기는 놈이 더 밉더라”며 “광대놀음을 저지할 법이라도 만들고 애초부터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지지 못하도록 잡도리를 단단히 해야 할 것”이라며 문재인 정부를 정면 비난했다.
이 같은 담화는 탈북민단체인 자유북한운동연합이 지난달 31일 김포에서 대북전단 50만장 등을 대형풍선에 매달아 북한으로 날려 보낸 것을 문제 삼은 것이다.
대북전단에는 ‘7기 4차 당 중앙군사위에서 새 전략 핵무기로 충격적 행동하겠다는 위선자 김정은’ 등의 문구가 적혀있었다.
이와관련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이날 춘추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삐라(대북전단) 살포는 백해무익한 행동으로 안보에 위해를 가져오는 행위에는 정부가 단호히 대응할 것”이라고 밝히면서 “청와대는 4·27 판문점선언과 9·19 군사합의가 지켜져야 한다는 입장에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다만 청와대는 이날 오후 열린 정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 회의에서는 이 문제를 다루지 않았다.
(CNB=심원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