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원섭기자 |
2020.06.11 10:41:11
문재인 대통령은 10일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권위주의 시대 고문과 인권 탄압의 현장이자 고(故) 박종철 열사가 물고문으로 사망한 옛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서울 용산구, 현 민주인권기념관 예정지) 509호 조사실을 방문해 박 열사 영정에 헌화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이 자리에서 열린 제33주년 6·10민주항쟁 기념식에 참석한 후 부인 김정숙 여사와 함께 대공분실 내부로 이동해 박 열사의 영정에 헌화하고 민주주의 정신과 인권존중 정신을 미래 세대에게 전승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암울했던 시기에 다수의 국가폭력이 자행됐던 남영동 대공분실은 1987년 박 열사가 경찰 조사 과정에서 물고문에 의해 숨진 장소로서 이제는 ‘민주인권기념관’이 돼 민주주의 발전사를 기억하는 장소가 됐다.
문 대통령 내외는 건물 후문으로 이동해 유동우 민주인권기념관 관리소장으로부터 1976년 처음 지어진 이 건물은 민주화 운동으로 연행된 사람들로부터 고립감과 공포감을 극대화 시킬 수 있도록 설계됐다는 설명을 들었다.
특히 유 소장은 “연행돼 오는 사람들이 통과하는 모든 문은 5층 조사실 안에 들어갈 때까지 모든 게 철문으로 돼 있다.”면서 “마찰음과 굉음이 눈을 가린 상태에서 들으면 아주 공포스럽다”고 말하면서 문 대통령 내외 앞에서 철문을 밀어 당시의 공포스러웠던 소리를 재연했다.
이후 건물 안으로 들어온 문 대통령 내외는 1층에서 바로 5층까지 올라갈 수 있는 나선형 형태로 된 철제 계단 앞에 섰다. 총 72개 계단으로 이뤄졌고 5층까지 올라가려면 세 바퀴를 돌아야 하는 매우 가파른 형태였다.
유 소장은 “눈을 가린 상태로 끌려 올라가게 된다. 떠밀리면 안 되니까 앞에서 수사관 한 사람이 옷깃이나 옷이 없는 경우에 머리끄덩이를 잡고 올라가고, 또 떨어지지 않게 뒤에 허리춤 있는 데를 뒤에서 받치면서 들어가게 된다”면서 “이 나선형 계단은 2층, 3층, 4층으로는 나가는 통로가 없다. 여기 발 디디는 순간 5층까지 끌려 올라가서 바로 조사실로 올라가게 된다”고 설명했다.
박 열사의 고문 현장인 509호에 도착한 문 대통령은 물고문 했던 욕조를 지그시 바라봤으며, 직접 안개꽃과 카네이션, 장미꽃을 준비한 김 여사는 문 대통령과 함께 박종철 열사 영정 앞에 헌화 후 묵념했다.
문 대통령은 고문 현장에 대해 “이 자체가 처음부터 공포감이 오는 거다. 물고문이 예정돼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철저하게 고립감 속에서 여러 가지 무너뜨려 버리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지선 스님(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이 자신이 조사실에서 겪었던 경험과 심정에 대해 설명하자 문 대통령은 왼쪽 손으로 욕조를 짚은 채 경청했으며 설명을 듣고 있던 김 여사도 한숨을 연거푸 내쉬며 안타까움을 드러내면서 한 숨을 쉬며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했다.
이 자리에는 박 열사의 형인 박종부씨, 민갑룡 경찰청장, 지선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진영 행정안전부 장관 등이 함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