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탁월한 정보력과 날카로운 검증으로 각종 인사청문회에서 9명에 달하는 고위공직자들을 낙마시키면서 저격수로 이름을 날린 바 있는 박지원 국가정보원장 후보자가 이번에는 공격자에서 수비수로 입장이 바뀌었다.
공수가 바뀐 27일 인사청문회에서 미래통합당은 박 후보자의 친북 성향과 학력 위조 의혹을 집중 추궁한다.
통합당은 박 후보자가 천안함 사건 등 북한의 도발을 두고 북의 입장을 대변하거나 옹호하는 발언을 해왔고 대북송금 사건으로 실형을 사는 등 여러 사례를 통해 북한과 내밀한 관계가 확인됐다는 점에서 국정원장에 부적합하다고 보고 있다.
통합당 주호영 원내대표는 박 후보자가 과거 대북송금 사건에 연루돼 복역한 사실을 들어 ‘적과 친분관계가 있는 분’ ‘내통하는 사람’이라고 표현하기도 했으며, 나아가 통합당은 광주교대를 졸업한 뒤 단국대에 편입한 박 후보자의 학력에도 지속적으로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국회 정보위 통합당 간사인 하태경 의원은 단국대 재학 시절과 군 복무 기간이 겹치는 점과 2년제 광주교대 졸업을 4년제 조선대 졸업으로 바꿨다는 의혹 등을 제기하고 있다.
또한 통합당은 서면질의 답변 제출 기한(25일 오전 10시)을 지키지 않은 데다 유일한 증인마저 불출석하는 것을 두고 여권이 청문회를 무력화하려 한다며 반발하고 있다.
앞서 박 후보자는 26일 국회 정보위원회에 제출한 서면질의 답변에서 국가보안법을 유지하되 상황에 따라 법 개정을 논의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박 후보자는 이날 “북한이 대남 적화 전략을 포기하지 않는 엄중한 안보 현실이며, 형법만으로 대남공작 대응에 한계가 있어 국보법 유지가 필요하지만 헌법재판소에 국보법 제2조(정의), 제7조(찬양·고무 등)에 대한 위헌제청·헌법소원 등 10건이 청구돼 있다. 향후 헌재 결정에 따라 (국보법) 개정 필요성 등 국회 차원의 논의가 필요할 것”이라고 “제가 흠결이 있지만 국가 위해 통과를 시켜 달라”고 당부했다.
그리고 박 후보자는 “천안함 사건이 북한 소행이라는 정부의 발표를 신뢰한다. 본인도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수차례 동일한 입장을 밝힌 바 있다”고 주장했으며, 북한이 개성의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한 것을 두고는 “일방적인 연락사무소 청사 폭파는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9명 낙마시킨 저격수...정작 자신은?
한편 박 후보자가 검증대에 오르면서 그의 화려(?)한 저격수 이력도 새삼 주목받고 있다. 박 후보자가 그동안 날카로운 검증으로 청문회에서 낙마시킨 고위 공직자 후보는 무려 9명에 달한다는 점에서다.
이명박 정부 때인 2009년 7월 국회 법사위원 자격으로 나서 당시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 부인의 면세점 쇼핑 내역을 확보해 ‘스폰서 의혹’을 제기했고, 천 후보자는 인사청문회를 치른 지 하루 만에 자진 사퇴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어 박 후보자는 2010년 5월 민주당의 원내사령탑이 된 뒤 청문회 준비를 직접 진두지휘하며 낙마 성공 연타 기록을 세웠다.
2010년 8월 김태호 국무총리 후보자의 청문회에서는 김 후보자와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의 골프 회동 제보를 입수해 ‘박연차 게이트’ 연루 의혹을 거세게 몰아세웠고 결국 거짓말 논란 끝에 김 후보자는 결국 낙마했다.
이듬해 정동기 감사원장 후보자 역시 재산 증식 및 부동산 의혹에 더해 청와대 민정수석 시절 민간인 불법사찰을 저지른 총리실 공직지원관실로부터 보고를 받았다는 의혹까지 제기되며 내정 12일 만에 사퇴를 선언해야 했다.
2014년 박근혜 정부 당시 친일 사관 논란에 휩싸인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도 박 후보자의 거센 사퇴 압박 속에 자리에서 내려와야 했으며, 신재민 문화체육관광 장관 후보자, 이재훈 지식경제부 장관 후보자,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등도 박 후보자의 손을 거친 파상공세 끝에 청문회 벽을 끝내 넘지 못했다.
(CNB=심원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