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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텔링] 두산의 ‘기업보국’ 정신…‘박용만표 상생’으로 열매 맺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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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도기천기자 |  2023.01.04 09:38:32

두산 떠난 박용만 회장, 쪽방촌 봉사활동
“양지가 그늘, 그늘이 양지” 몸으로 실천
두산家 창업정신, 오늘날 ‘상생’으로 승화
‘사람 중시 기업문화’ 두산의 원동력 되다

 

박용만 전 두산그룹 회장이 2021년 10월 프란치스코 교황을 알현하고 있는 모습.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박 전 회장은 두산에서 은퇴한 뒤 쪽방촌 사람들을 돌보며 섬김의 길을 걷고 있다. (박용만 페이스북 갈무리)

두산그룹 총수와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을 지낸 두산가(家) 3세 박용만 전 회장이 두산을 떠난 뒤 사회적 약자를 위한 봉사활동에 전념하고 있어 주목된다. 한때 재계 맏형으로서 경제계와 정·관계를 아우르는 큰 그림을 그렸던 그가 쪽방촌 사람들을 돌보며 섬김의 길을 걷고 있는 것. 얼핏보면 상당한 ‘변신’ 같지만 두산의 창업정신과 가풍, 박 전 회장의 인생여정을 들여다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몸도 마음도 꽁꽁 언 시기다 보니, 그의 모습이 많은 이들에게 위로가 되고 있다. (CNB=도기천 기자)




“살다 보면 양지 아래 그늘이 있었고, 그늘 안에도 양지가 있었다. 양지가 그늘이고 그늘이 양지임을 받아들이기까지 짧지 않은 세월이 걸렸지만, 그게 다 공부였지 싶다.”

박용만 전 회장이 2021년 2월에 펴낸 첫 산문집《그늘까지도 인생이니까》의 한 대목이다. 책에는 18세 때 아버지를 여의고 큰집 그늘에서 청년 시절을 보낸 아픈 가족사, 외환위기 당시 구조조정에 나서야 했던 고통스런 순간들, 2년간 함께 일한 한 기간제 여직원의 퇴직을 막아줄 수 없었던 안타까운 사연 등 69개의 길고 짧은 이야기가 담겨있다.

각기 다른 스토리지만 ‘인간’이라는 공통된 주제의식을 담고 있다. 가장 행복했던 때를 회장 취임식이 아니라 ‘아내와 김치밥을 해 식탁에 마주 앉아 있던 어제저녁’이라고 고백하는 그의 모습에서, 그가 걷고 있는 ‘상생’의 길이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삶의 기본임을 깨닫게 된다.

인생 2막은 ‘그늘 속 약자 돌보기’

‘양지가 그늘이고 그늘이 양지였다’는 자신의 말을 몸으로 보여주듯, 박 전 회장은 지난해 초 보유하고 있던 두산 지분 전량을 매각하고 두산을 떠나 세상의 가장 그늘진 곳으로 향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이기도 한 박 전 회장은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 아침 서울 동대문구 쪽방촌으로 출근한다. 이곳에서 성경이 말하는 ‘작은 자’를 섬기고 있다. ‘쪽방촌 주방’에서 반찬을 직접 만들어 어르신들에게 배달하고 있으며, 가톨릭 단중독사목위원회가 주관하고 있는 알코올 중독자들을 위한 도시락 봉사도 9년째 계속해오고 있다.

 

박용만 전 회장이 한 양로원을 방문해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박용만 페이스북 갈무리)

특히 박 전 회장은 평생 소신인 ‘상생’을 낮은 곳에서부터 실천하고 있다. 경영 일선에서 은퇴한 뒤 재단법인 ‘같이 걷는 길’ 이사장을 맡아 소외계층 구호사업은 물론 지역 상권 활성화에 힘쓰고 있다. 소상공인과 함께 동대문을 패션·문화 중심지로 만들기 위해 민·관·학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공청회를 열고 지역민을 위한 컨설팅을 해주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박 전 회장은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으로 일할 때도 대·중소기업 상생과 동반성장을 지상과제로 여겼다.

각종 기업규제 법안들이 무더기 통과되기 직전인 2020년 9~11월 국회를 방문해 의원실을 호호방문했던 일화는 유명하다. 그는 “규제입법이 통과되면 기업들의 경영 환경이 더 악화될 것”이라며 “최소한 몇가지 사항만이라도 보완해달라”고 정치권에 호소했다.

박 전 회장은 당시 언론인터뷰에서 “국회의원회관에서 7㎞ 이상을 걸은 적도 있고, 온몸이 땀에 절어서 속옷부터 모두 갈아입고 다시 일한 적도 있다. 국회 방문 모습이 TV에 많이 나오다 보니 손녀가 국회를 보고 ‘할아버지 회사다’고 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박 전 회장은 ‘상생’을 위해서라면 누구도 마다하지 않고 만났다. 대한상의 회장 시절 한국노총 간부들과 ‘호프 미팅’을 가지는 등 여러 차례 노조와 만났으며, 퇴임 직전 마지막으로 한국노총을 방문했을 때는 방명록에 “늘 대화의 자리에 힘들게 같이 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동반과 상생의 길에 늘 앞으로도 같이 하시기를 바랍니다”라고 적었다. 유력 정치인들과도 수시로 만나 코로나19 위기 극복, 사회 양극화 등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스스럼없이 털어놨다.

 

박용만 전 회장은 ‘상생’을 위해서라면 누구도 마다하지 않고 만나왔다. 2021년 2월 대한상의 회장 때 한국노총을 찾아 김동명 위원장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사진작가 박용만’으로 세상과 소통

박 전 회장은 사진을 통해서도 ‘상생’의 의미를 전하고 있다. 청소년 시절부터 사진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부친(박두병 두산그룹 초대 회장)의 반대로 사진기자의 꿈은 포기했지만 사진에 대한 열정만은 잊지 않았다. 경영인이 된 후에도 종종 사진작가로의 전직을 고심했다고 한다.

박 전 회장에게 사진은 단순히 취미활동이 아니라 세상과의 소통 수단이다. 자신의 페이스북에 많은 사진을 올리며 회사 직원 뿐 아니라 시민들과 소통해 왔다. 그는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 등과 함께 재계의 ‘인플루언스’로 통한다.

특히 그의 사진에는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담겨있다. 자신의 저서에 “쉬는 날엔 혼자 골목골목 사진을 찍으러 다니는 것을 좋아한다”고 밝혔는데, 이는 쪽방촌과 인연을 맺게 된 계기가 됐다. 대한상의가 박 전 회장이 회장으로 재직한 이후부터 매년 경제활동을 하는 소상공인들의 삶을 담은 사진전을 개최하고 있는 것도 같은 의미다. 박 전 회장은 사진을 나눔과 상생의 수단으로 여기고 있다.

박 전 회장은 지난해 3월 배우 류준열, 포토저널리스트 신웅재, 20세기 초현실주의 사진 거장 랄프 깁슨, 미국계 한국인인 ‘앰부쉬’ 패션 디자이너 윤 안, 버추얼 아티스트 웨이드와 함께 ‘오! 라이카(O! Leica) 2022’에 작품을 전시했다. 마침내 ‘사진작가 박용만’의 꿈을 이룬 것이다.

 

‘오! 라이카2022’에 전시된 박용만 회장 작품. (사진=라이카코리아) 

이같은 박 전 회장의 ‘인생 2막’은 얼핏보면 ‘재벌의 변신’ 같지만, 두산가(家)의 창업정신과 뿌리를 들여다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두산그룹의 창업주 매헌 박승직 선생(박 전 회장의 조부)은 우리나라 개화기인 1880년대에 제물포(인천)에서 면포를 사서 경기도 산간지방과 강원도 일대까지 가서 파는 보부상으로 시작해 번창했다. 보부상은 전국적 연결망을 갖춘 상인 단체로, 조선시대 경제의 핵심 역할을 했다.

매헌은 전국 곳곳의 산길을 몇 달씩 누비고 다닐 때 감자만 먹으며 상도(商道)의 기본인 근검절약 정신을 뼈저리게 체득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거상이 되어 1896년 오늘날 두산의 전신인 ‘박승직 상점’을 차렸다.

재계 서열 16위 두산의 뿌리는 매헌이 다진 바로 이 보부상 정신이다. 보부상은 윤리경영을 강조하며 시장의 상도의를 선도했고, 나라가 위기에 처하면 전국적 연결망을 활용해 구국(救國)의 마중물 역할을 했다.

실제로 매헌은 1907년 전국적으로 전개된 국채보상운동에 적극 참여해 당시 이 운동을 주도하던 대구 광문사에 거금을 기부했다. 이때의 기부로 두산그룹은 2001년 국채보상운동의 주창자인 서상돈 선생을 기리기 위해 제정된 ‘서상돈 상’을 받았다.

매헌은 아들이 태어나자 이름을 두병((박 전 회장의 부친)으로 짓고 두병의 이름 첫 자인 말 ‘두(斗)’ 자에 묏 ‘산(山)’ 자를 붙여 ‘두산’이란 새 상호를 짓는다. ‘한 말 한 말 차근차근 쉬지 않고 쌓아올려 산같이 커져라’라는 의미다.

 

1934년경 ‘박승직 상점’의 모습. 두산 창업주 매헌 박승직 선생은 보부상으로 출발해 거상(巨商)이 되었다. 두산의 창업정신은 윤리경영과 구국정신에 뿌리를 둔 ‘보부상 정신’에 기인한다. (사진=두산) 

매헌의 유일한 아들이었던 두병은 이후 두산그룹을 세워 초대회장이 된다. 박두병 초대회장은 1950년대 한국전쟁의 폐허 속에서 동양맥주(OB맥주의 전신)를 재건해 ‘OB신화’를 일궜으며, 1960년대에는 동산토건, 한양식품, 윤한공업사를 잇따라 설립해 두산의 기초를 다졌다. 1970년 아시아상공회의소 회장에 선출돼 아시아 지역의 경제협력과 한국 기업의 수출 확대에 기여하기도 했다.

이러한 선대 회장들의 ‘기업보국(企業報國)’ 정신이 오늘날 ‘박용만표 상생 철학’의 기반이 된 것이다. 두산가 4세인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박 전 회장의 조카) 또한 친환경에너지 분야에서 새로운 도전의 날개를 펼치며 ESG(환경·사회·지배구조)를 실천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CNB뉴스에 “박용만 회장이 조카(박정원 회장)에게 경영권을 물려주고 두산을 떠나 사회공헌에 전념하는 데서 보듯, 두산은 다른 대기업 집단에 비해 경영권 분쟁 같은 오너 리스크가 거의 없다”며 “이는 두산 가문의 가훈을 이어받은 박용만 회장이 주창해온 따뜻한 성과주의와 책임경영이 그룹 내에 뿌리내렸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사람을 중시하는 기업문화가 오늘날 두산의 원동력이 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CNB=도기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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