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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한전도 LH도 “나몰라라”…산으로 간 ‘송주법 지원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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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도기천기자 |  2023.05.22 10:38:42

송전탑 인근 주민 지원하는 한전의 ‘송주법’
법에는 ‘한전의 주도적 역할’ 명기돼 있지만
‘주민 간 갈등’ 구실로 뒤로 빠져 사업 난항
전문가들 “당국의 적극 개입만이 해결 열쇠”

 

한전의 송변전설비와 인접한 경기도 고양시의 한 택지개발지구 모습. 한전이 ‘송·변전설비 주변지역 보상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이런 지역을 지원해야하지만, 주민 간 불협화음과 한전의 소극적 태도로 지원사업이 난항을 겪고 있다. (사진=도기천 기자)

한국전력공사가 송·변전설비 주변지역에 거주하는 주민의 피해보상 차원에서 진행하고 있는 일명 ‘송주법 지원사업’이 주민 간 불협화음과 한전의 소극적 태도로 난항을 겪고 있다. 관련 법에는 한전이 주도적으로 여론을 수렴해 사업을 시행하라고 되어 있지만, 한전이 사실상 주민대표에게 주도권을 넘기는 바람에 법적 권한이 없는 단체가 개입하는 등 논란이 일고 있다. 또 한전의 홍보 부족으로 대다수 피해지역 주민들이 송주법에 명시된 ‘마을공동사업’ 자체를 모르고 있었다. CNB뉴스가 표류하고 있는 송주법 사업을 단독 취재했다. (CNB뉴스=도기천 기자)




‘송주법(송·변전설비 주변지역 보상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사업은 송·변전설비 주변지역에 거주하는 주민의 복리증진과 지역발전을 위해 2015년부터 시작돼 총 1조2000억원이 투입되는 사업이다. 지원대상은 345kV 이상 송전선로가 지나가는 선하지 인근과 옥외변전소가 위치하는 인근지역으로 전국 4000여개 마을, 5만3000여 세대가 대상이다.

지원금 절반은 ‘개인 가구 전기료 감면’ 혜택으로, 나머지 절반은 ‘마을공동사업비’로 소요된다.

문제는 한전이 직접 개입하지 않고 있는 ‘마을공동사업비’다. 전기료 감면은 한전이 전기세를 부과하면서 일괄감면(자동감면)하므로 사실상 한전이 개별가구에 직접 지원하는 셈이다.

하지만 마을공동사업비는 한전이 주민대표로 구성된 주민위원회(일명 송주법위원회)에 자금을 지원하고, 주민위원회가 주민동의를 거쳐 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이러다보니 위원회가 제대로 운영되지 못할 경우, 지원금 지급 자체가 중단되거나 사업시행이 지연되고 있다. 또 송주위원 선출 과정이 주먹구구식으로 진행되거나, 심지어 송주법과 관련없는 아파트단지 입주자대표(동대표)들이 지원사업에 개입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송·변전설비 주변지역의 보상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시행령’(왼쪽)에는 한전의 적극적인 주민여론수렴 의무를 규정하고 있지만, 한전의 자체 업무지침(오른쪽)에는 ‘주민 간 갈등이 발생하면 지원사업을 중단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한전의 이런 행태는 법 취지와 맞지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출처=국가법령정보센터, 한전의 송변전설비 주변지역 지원사업계획 수립지침)

대표적인 사례가 경기도 고양시에 위치한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한 대규모(약1500세대) 공공임대단지의 경우다. 이곳에서는 입주 초기부터 송주법 지원사업에 대한 경험 부족으로 사업시행이 지연되는 등 시행착오를 겪다 결국 주민들 간 송사(訟事)까지 벌어졌다.

CNB뉴스 단독 취재에 따르면, 그간의 과정은 이러하다.

지난 2019년 7월부터 입주가 시작된 이 단지(이하 A단지)는 임대주체인 LH가 아파트관리사무소를 통해 1기 송주법위원회(이하 송주위) 구성에 착수했다. 선관위를 꾸려 송주위에 참여할 주민대표(5인)를 모집한 뒤, 주민 찬반 동의를 거쳐 송주위를 구성했다.

이후 송주위는 몇가지 지원사업안들을 후보로 올려 주민투표를 진행해 최종적으로 ‘단지 내 헬스장(휘트니스센터) 건립’을 의결했다. 한전으로부터 총사업비 1억4300만원을 지원받아 2021년 12월 헬스장이 완공됐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개관이 연기됐고 이 과정에서 송주위원 중 일부가 사임했다. 정족수 미달로 송주위를 열 수 없게 되면서 헬스장 문은 굳게 닫혔다.

이로 인해 주민들의 민원이 빗발치자 입주자(임차인)대표회의가 헬스장 운영을 맡기로 하면서 마침내 지난해 11월 완공 1년여 만에 헬스장이 문을 열었다.

하지만 대표회의는 불과 한달 뒤 헬스장을 다시 폐쇄했다. “1개월 시범운영 후 수정할 부분이 있을 시 수정 후 정식운영을 검토한다”는 회의 결과에 따른 조치였다. 하지만 ‘수정할 부분’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공지를 하지 않아 큰 논란이 일었다.

주민들은 개관을 촉구하는 서명운동에 돌입했으며, 아파트 커뮤니티 게시판은 대표회의를 비난하는 글들로 도배됐다. 대표회의가 ‘송주법 지원시설(헬스장)’을 운영한 것 자체가 위법이라는 목소리도 나왔다.

마침내 지난달 대표회의는 헬스장 폐쇄를 주도한 대표회의 회장 A씨를 해임했다. 해임안에는 “A씨가 주민공용시설인 헬스장의 운영을 일방적으로 중지해 주민들에게 막대한 손해를 입혔을 뿐 아니라 이를 알지 못하고 동의한 사실이 전혀 없는 다른 동대표들과 주민 간의 갈등과 분란을 조성했다”고 적었다.

이에 맞서 A씨는 법원에 ‘해임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을 접수했다. A씨는 “송주위 해산에 따라 임시방편으로 헬스장 운영위를 구성했으며, 대표회의 회의결과에 따라 헬스장을 잠정 중단한 것이므로 해임이 부당하다”는 취지의 주장을 폈다. A씨는 자신의 해임을 주도한 동대표들을 상대로 정신적 피해보상까지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한전 송주법 지원사업포탈에 게시돼 있는 송주법 지원사업 업무흐름도. 한전이 매년 주민들을 상대로 사업설명회 개최, 지원사업계획 수립 등을 진행하게 되어 있지만 일부지역은 주민위원회(송주위) 구성 등의 문제로 사업이 지연되거나 중단된 상태다. (사진=해당 홈페이지 캡처)

이와 비슷한 사례는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수도권 또다른 한 단지는 선관위 구성, 입후보 공고, 선출 결과 공지 등 통상적인 선거 절차가 생략된 채 추천과 찬반 투표만으로 송주위가 구성돼 논란을 빚었다.

또 마을공동사업을 무엇으로 할지를 두고, 송주위가 일방적인 결정을 내려 주민들이 송주위 해산 서명에 돌입한 지역도 있다.

심지어 CNB뉴스가 취재 과정에서 만난 피해지역 주민들 중 빌라·다세대주택 거주자들은 대부분 마을공동사업 자체를 모르고 있었다. 아파트단지와 달리 관리사무소 같은 소통 수단이 없기 때문.
 


수억대 ‘마을공동사업비’ 한전 곳간에 쌓여



상황이 이러함에도 지원사업의 주체인 한전은 주민들에게 공을 넘긴 채 한발 물러난 모양새다.

한전 관계자는 CNB뉴스에 “송주법에 의거해 주민의견 수렴에 노력하고 있다”면서도 “주민 의견이 모아지지 않는 일부 지역에서는 지원사업에 어려움이 크다”고 밝혔다. 한전 업무지침에는 ‘주민 간 갈등으로 지원사업 목적을 달성하기 어려운 경우 사업을 중단한다’고 되어 있다.

하지만 한전의 이런 태도는 송주법 취지에 어긋나 보인다.

송주법 제7조에는 “사업자(한전)는 매년 주민의 의견을 수렴해 송·변전설비 주변지역에 대한 지원사업계획을 수립하여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동법 시행령에 따르면, 한전은 매년 새로운 지원사업계획을 수립해 산자부 심의를 받아야 한다. 사업계획에는 사업의 목적성, 시행기간, 자금계획 등이 담겨야 하며, 특히 매년 지원사업에 관한 주민설명회를 열어야 한다.

따라서 한전은 송주법 사업 홍보, 지원사업에 참여할 송주위 구성 등을 적극 추진해야 함에도 관리사무소 등에 송주위 구성을 일임하거나, 주민 갈등을 구실로 사업을 중단하는 등 소극적 자세로 일관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앞서 언급된 A단지의 경우, 한전이 지난 4년간 지원한 마을사업은 ‘헬스장 1건’ 외에는 전무한 것으로 확인됐다. 한전 관계자는 CNB뉴스에 “헬스장 완공 이후, 작년 3월에 새로운 지원사업을 진행하기 위해 송주위와 관리사무소에 안내문을 보내고 수차례 전화통화를 했으나 답변이 없어 지원사업이 지연되다가, 작년 말에 송주위가 임기만료로 해산돼 진척이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송주법은 송·변전설비 주변지역 보상 차원에서 제정됐지만, 지원이 원활치 못한 지역이 늘고 있다. 지난해 9월 강원도 지역 주민들이 한전의 대규모 송전망 건설사업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노원구 사례 ‘주목’…관계당국이 조정기구 만들어야



이처럼 지원사업이 순조롭지 못할 경우, 주민들에게 가야 할 ‘마을공동사업비’는 고스란히 한전 곳간에 쌓이게 된다. A단지의 경우, 현재까지 약 2억5천만원 가량의 지원금이 미지급된 상태다. 그럼에도 한전 홈페이지(송주법 지원사업포탈)에는 해당 단지가 정상적으로 지원되고 있는 것으로 나와 있다.

A단지 사례의 경우, LH와 지자체도 자유롭지 못하다. 송주법 제3조에는 “국가·지방자치단체 및 사업자는 송·변전설비 주변지역에 대한 보상 및 지원사업을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하여 상호 협력하여야 한다”고 되어 있다. 하지만 공기업인 LH, 지자체인 고양시 모두 이번 사태를 지켜보기만 했다.

A단지의 한 주민은 CNB뉴스에 “송전탑 옆에 살고 있는 것만 해도 억울한데, 그나마 쥐꼬리만큼 혜택을 주는 지원사업 과정에서 분란이 일어나 참으로 착잡하다”며 “한전이 보다 책임감 있게 행동하고, LH나 고양시가 주민분쟁을 중재했더라면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시민단체 전문가들은 공기관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참여연대 관계자는 CNB뉴스에 “주민들 간에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것은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인데, 이런 일이 발생할 때마다 지원사업을 중단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서울 노원구의 ‘찾아가는 분쟁조정단’ 사례처럼, 공적기관들이 적극적인 갈등조정과 여론수렴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아파트단지가 많은 노원구는 갈등조정전문가, 법률, 회계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분쟁조정단을 통해 공동주택 주민대표의 선임·해임 등 운영사항, 각종 공동주택 분쟁 등을 적극 중재하고 있다.

(CNB뉴스=도기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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