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원섭기자 | 2023.11.28 11:50:08
전라도 사투리를 쓰는 ‘푸른 눈의 한국인’으로서 직설적으로 한국 정치의 문제점을 꼬집을 때만 해도 국민의힘을 비롯한 정치권의 극찬을 받았던 국민의힘 인요한 혁신위원장의 잇단 설화가 여권의 혁신을 견인하는 데 최대 리스크로 떠오르고 있다.
인 위원장이 최근 혁신위원 간 갈등에 이어 한 행사에서 이준석 전 대표를 ‘준석이’라 칭하며 이 전 대표 부모를 거론한 것이 논란의 기폭제가 돼 혁신위 활동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모양새가 됐기 때문이다.
인 위원장은 지난 26일 충남 태안군 홍익대 만리포 해양연수원에서 열린 ‘청년 및 당원 혁신 트레이닝’에 참석해 “한국의 온돌방 문화와 아랫목 교육으로 지식, 지혜, 도덕을 배우는데, 준석이는 도덕이 없다. 이는 준석이가 아니라 부모 잘못이 큰 것 같다”면서 “준석이가 버르장머리가 없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앞서 인 위원장이 지난 4일 이 전 대표를 만나기 위해 부산에서 열렸던 토크콘서트장을 찾았을 당시, 이 전 대표로부터 ‘미스터 린튼(인 위원장의 영문 성)’이라고 불린 것에 대한 서운함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당사자인 이 전 대표는 다음 날 한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집권 여당 대표를 지냈던 정치인한테 당 행사에서 ‘준석이’라고 지칭한다는 자체가 어디서 배워먹은 건지 모르겠다”며 “젊은 사람들이 이걸 패드립(패륜적 말장난)이라 그러는데, 패드립이 혁신인가?”라고 반문하면서 강하게 반발했다.
이어 이 전 대표는 “정치 12년 하면서 부모 끌어들여서 남 욕하는 건 본 적이 없다”며 “혁신위 활동은 이제 그만했으면 좋겠다”고 직격했다.
물론, 정치권에서는 올해 38세인 이 전 대표가 64세인 인 위원장의 아들뻘이지만, 집권 여당 대표를 지낸 정치인을 부모까지 언급하며 비판한 것은 부적절했다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인 위원장의 설화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 혁신위 공식 출범 사흘 만에 “솔직하고 거침이 없다”는 긍정적 평가가 없지는 않았지만 “여과되지 않은 거친 입이 리스크로 떠올랐다”는 말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논란에 휩싸였다. 특히 ‘선(先) 발언→후(後) 수습’ 과정에서 자신의 발언을 부인하고 언론으로 탓을 올리는 일이 반복되면서다.
인 위원장은 혁신위 초기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당내 낙동강 하류 세력은 뒷전에 서라”고 말했다가, 당내 반발이 커지자 ‘농담’이라며 주워 담았으며, 이달 초에는 “남자가 아닌 똑똑한 여성들이 이 나라를 발전시켰다”는 발언으로 반감을 샀고, 더구나 윤석열 대통령과 관련해 15일에는 “대통령 쪽의 신호가 왔다” 21일에는 ‘윤 대통령은 나라님’ 등의 발언으로 수직적 당정관계, 대통령실의 당무 개입 논란을 자초하기도 했다.
이 같은 인 위원장의 설화가 혁신위의 1호 혁신안인 ‘통합’을 저해해 내년 총선에 앞서 혁신을 도출해야 할 시기에 오히려 혁신위의 동력 상실을 자초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더구나 인 위원장은 여권에서 가장 주목받는 인물 중 한명인 김한길 국민통합위원장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말이 왔다갔다 했다. 혁신위원장에 임명된 지난달 23일 오후 김 위원장과의 친분을 묻는 기자들에게 “김 위원장과는 몇 년 전 (방송 프로그램) ‘길길이 산다’에 사모님(최명길)과 같이 출연해서 엄청 친한 사이다. 평소에도 전화를 매일 한다”고 답해 이후 ‘김한길 추천설’로 확대되자 지난달 25일에는 “네다섯 번 정도 통화했고 다 합쳐봐야 그것밖에 안 된다. 팩트를 잘 확인하라”고 주장하면서 “잘못된 보도의 한 사례다”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인 위원장은 다음날인 지난달 26일에는 언론계 전체를 겨냥해 “도덕적인 기초, 원칙, 정치가 대한민국 나라 수준을 못 따라갔다. 언론도 그렇다”며 “언론도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 국민의힘 한 수도권 중진 의원은 28일 CNB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인요한 위원장이 정치인으로서 경험이 부족한 점은 이해하지만, 본인의 발언을 뒤집는 상황에 계속될 경우에는 당 전체를 위험으로 빠뜨릴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최근 혁신위는 ‘지도부·중진·윤핵관(윤석열 대통령 측 핵심 관계자) 불출마 또는 험지 출마’ 권고안에 대해 당 지도부의 냉담한 반응으로 위기에 봉착한 형국에서 인 위원장은 이 전 대표와 부모를 언급한 발언 파장이 확산하자 27일 오후 혁신위 공지를 통해 “제가 이준석 전 대표와 그 부모님께 과한 표현을 하게된 것 같다. 이준석 전 대표와 그 부모님께 심심한 사과의 뜻을 전한다"고 사과하며 진화에 나섰으나 논란은 쉽사리 가라앉고 있다.
(CNB뉴스=심원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