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태기자 |
2025.06.11 14:25:09
10일에 이어 11일에도 장사진. 용산 대통령실의 기자용 구내식당 앞 풍경이다.
10일 이재명 대통령은 시진핑 중국 주석과의 첫 정상 통화를 마친 뒤 바로 청사 지하 1층 구내식당으로 내려가 식사를 한 뒤 조리실까지 찾아들어가 조리 담당 직원들과 따뜻한 인사를 나눴다.
그리고는 바로 구내식당 앞의 매점에 들렀으며, 이는 매점 직원들에게도 격려와 인사를 전하기 위해서 그랬던 듯하다. 마침 이때 매점에서 커피를 사던 출입기자들이 대통령을 붙잡았고, 기자들과 대통령이 차담을 나누고 기념촬영을 하면서 구내식당과 매점 사이 복도는 인파로 분주했다.
유사한 풍경은 이튿날인 11일에도 계속됐다. 낮 12시쯤 아예 기자용 구내식당에서 기자들과 점심 식사를 나누는 대통령 주변과 구내식당 입구에는 기자들이 둥그렇게 몰려 서는 바람에 마치 장이 선 것 같은 풍경이 됐다.
기자 생활을 오래 하며 여기저기 기자실을 출입해봤지만 출입처의 장이 이처럼 이틀 연속 출입 기자단과 구내식당에서 만나는 모습은 처음 본다.
문재인 대통령 시절부터 대통령실 출입을 했지만, 대통령과 기자단 사이의 관계는 항상 서먹서먹 그 자체였다. ‘권위적 성격’으로 분류되는 직전 윤 대통령은 물론이고, 그 전 문 대통령 시절에도 마찬가지였다. 윤 대통령은 검찰 총수 출신이라는 ‘무서운’ 이미지와 분리되기 힘들었고, 문 대통령은 기자단과의 만남 횟수 자체가 극히 적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진보 정권과 기자단의 해묵은 대결 양상들
오히려 대통령실 직원들과 기자단 사이는 윤 정권 때가 더 살가운 측면도 있었던 듯 하다. 식사 대접과 선물 공세에는 진보보다 보수가 더욱 유능-과감하기에 그랬던 것도 같다. 반면 문 정권 때는 임기 내내 대통령 지지율이 고공행진하면서 진보 특유의 ‘도덕적 우위감’을 대통령실 직원들이 자기도 모르게 풍기면서 거리감이 좀처럼 줄지 않았던 것 같다.
사실 필자는 이 대통령의 당선 뒤 이 대통령의 강한 서민 지향성 때문에 과거 노무현 대통령 당시 그랬듯 기자단과 대통령 사이에 날카로운 대립각이 펼쳐지지 않을까 우려했었다.
하지만 어제와 오늘 대통령실 구내식당 풍경을 보면서 이런 우려는 크게 줄었다. 지금처럼 정치 지향과는 상관없이 기자단과 대통령이 때때로 식사와 차를 나눈다면 ‘한 식구’(食口란 원래 혈연과 상관없이 한 집에 살면서 식사를 함께 하는 사이를 뜻하는 말이라니까)끼리 핏대 올리면서 싸울 일은 크게 줄어들 테니 말이다.
이런 모습은 ‘두러워하지 않고 현장으로 들어가는’ 이 대통령의 특징 덕분으로 보인다. 그는 문제의 현장으로 바로 들어간다. 경기도 계곡 불법 식당 정리 때 그랬고, 코로나19 유행 시절 신천지 교단에 대해서도 그랬다.
같은 진보 정권이라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은 스스럼없이 기자들과 만나기에는 너무 거물이었고, 노무현 대통령은 ‘퍼포먼스’를 생래적으로 싫어하는 스타일이었다(당시 조기숙 홍보수석이 “제발 시장에 가서 먹는 퍼포먼스를 하면 지지율이 올라갈 것”이라고 설득해도 그런 남사스런 퍼포먼스는 거부했다고 한다). 문 대통령은 접촉 자체를 반기지 않는 듯했다. 현장과는 일정하게 거리를 뒀던 전직 세 진보 대통령과 이 대통령이 크게 다른 점이다.
기자들과 날카롭게 대립했던 이재명 성남시장
물론, 대통령과 기자단이 ‘한 식구’로 지낸다고 해서 언론과 진보 정권 사이의 전통적 갈등이 쉽게 사라질 리 없다. 언론 사주가 있고, 데스크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과거 이재명 성남시장이 토건업자와의 뒷거래를 완전히 끊어버리자 토건업자들 사이에 난리가 났고 이들이 성남시 출입기자 중 일부를 꼬드겨 ‘못된’ 기사를 쓰게 함으로써 일부 기자들과 이 시장 사이에 ‘사느냐 죽느냐’의 싸움이 벌어졌던 때를 회상한다면, 현 정권과 언론 사이에 특정 사안을 놓고 언젠가는 대결 전선이 세게 이뤄질 가능성이 적지 않다고 본다.
하지만 요즘 대통령실 기자실 분위기는 12.3 이전과는 사뭇 다르다. “누가 누군지 모르니 말조심해야 한다”며 되도록 말을 줄이던 12월 3일 이전과는 달리 요즘 용산 기자실 복도에선 말소리와 웃음소리가 풍성한 편이다.
12.3 쿠데타 이후 6개월 동안 ‘벼라별 일’을 다 겪어봤지만 이제 대통령실 기자실에서도 뭔가 ‘예전에 상상 못해본 일’들이 펼쳐질 듯해 자못 흥미진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