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방암 3기, 의사는 생존율이 62%라고 했다. 여덟 번의 항암을 거치며 다음 날 눈을 뜨지 않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도 수차례. 힘겨운 치료를 이겨낼 수 있었던 이유는 열두 살 아들과 남편, 가족, 그리고 모델의 꿈이었다. 올해 3월 와이즈유 영산대학교 시니어모델학과에 입학한 김민서(41) 학생의 이야기다.
김씨는 20대 때 모델로 일했다. 2002년 국내 모 방송사의 슈퍼모델대회에 출전했다가, 모델 강승현 등이 소속된 유명 모델 에이전시에 발탁돼 활동했다.
174cm로 모델로서는 큰 키가 아니었던 김씨는, 핸디캡을 극복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한 번은 서울 동대문 유명 쇼핑몰의 남녀 대표모델을 뽑는 무대에도 올랐다.
그날 무대에 대해 김씨는 “얼핏 봐도 모델이구나 할 정도로 헤어·메이크업, 화려한 의상을 입고 무대에 올랐다”고 회상했다. 그리곤 무대에 조혜련의 노래 '아나까나'를 불렀다. 세련된 외모에, 코믹한 느낌의 선곡 미스매치가 관중의 폭발적인 반응으로 이어졌다.
그 결과 여성모델 1위는 김씨에게 돌아갔다. 그때 함께 뽑힌 남성모델 1위가 최근 드라마 '귀궁'으로 화제를 모은 배우 김영광이다. 이후 김민서씨는 단역이긴 하지만 가수 비, 배우 송혜교 등이 메인으로 등장하는 CF에도 출연했고, 잡지촬영, 웨딩쇼 등 여러 무대에 섰다.
탄탄대로일 것 같던 모델 활동은 소속사에 문제가 생기면서 흔들리기 시작했다. 소속사가 사라지며 일이 줄었고, 5년여 타향살이에 고향인 대구로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도 컸다. 마침 현재 남편을 만나 결혼하고 아들을 낳으며, 자연스레 모델 일을 그만두게 됐다. 김씨는 “모델 커리어는 중단됐지만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행복했다”고 말했다.
그러던 지난해 3월 불행은 전조도 없이 찾아왔다. 유방암 3기 판정을 받은 것이다. 총 8번의 항암치료를 받았다. 통증이란 말로는 온전히 설명할 수 없는 아픔이 뒤따랐다. 육체적 고통과 별개로 머리가 빠지고 얼굴이 붓고 피부가 벗겨지는 등 외모도 변했다. 김씨는 “화려했던 런웨이의 모습을 떠올릴 때면 다신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아 우울했다”고 울먹였다.
그를 다잡아준 것은 가족이었다. 김씨는 “차라리 내일 아침에 눈을 안 떴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아들을 떠올리면 마음이 너무 아팠다”며 “그래서 입맛이 없고, 항암 탓에 역한 기분이 들어도 나아보려고 꾸역꾸역 밥을 먹었다”고 말했다.
그를 지탱해준 것은 또 있다. 어느 날 병실에서 휴대전화를 보던 김씨의 엄마가 대뜸 “다시 모델 할래?”하고 물었다. 엄마가 인터넷에서 시니어모델학과 모집공고를 확인한 것이다. 김씨는 “제가 삶에 대한 의지를 잃을까봐 엄마가 많이 걱정하셨던 것 같다”고 말했다.
엄마의 제안에 내색은 안 했지만 김씨는 기뻤다. 고된 투병 중에도 그날부터 김씨의 머릿속에 시니어모델학과가 한자리를 차지했다. 입학원서도 직접 접수했다. 한창 항암치료가 진행되던 지난해 8월 어렵사리 병원의 외출 허락을 받고 우체국에서 등기로 입학원서를 보냈다. 접수를 가족에게 부탁했을 수도 있었을 터. 김씨는 “일상으로 돌아갈 거라고 생각하지 못한 시기다. 그만큼 내일이 더 간절했기에 직접 접수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런 정성 덕분인지 지난해 12월 항암치료가 성공적으로 끝났다. 다행히 항암 치료제가 잘 맞았다. 얼마 뒤 영산대 시니어모델학과에도 합격했다. 김씨는 곧바로 시니어모델학과 엄태일 교수를 만났다. 항암치료 직후라 머리카락이 없고 얼굴은 부어있었다. 김씨는 “교수님 앞에서 모자를 벗으며 ‘괜찮을까요?’하고 물었더니 교수님이 '괜찮다, 잘 할 거다'고 했다”며 “시니어모델의 꿈에 대한 의지를 다지고, 교수님의 지지도 얻고 싶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김씨는 요즘 행복하다. 오전 9시 강의가 있는 날이면 새벽부터 일어나야 하는데도 힘든 줄 모른다. 꿈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김씨는 “같은 꿈을 가진 동기들과 함께 성장하고, 격려와 지지를 보내준 교수님과 보내는 시간이 너무 행복하다”며 “워킹뿐만 아니라 마케팅과 콘텐츠 제작, 헤어·메이크업까지 체계적인 수업 역시 매우 즐겁고 흥미롭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들에게 엄마가 모델이라는 걸 알려줄 수 있도록 열심히 공부하고 활동하면서 기회가 되면 강단에도 서고 싶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