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박3일의 ‘코피 터지는’ 일정으로 캐나다 G7를 다녀온, 이재명 대통령의 체력과 영어 실력이 화제다.
19일 이 대통령 일행이 귀국한 뒤 대통령실 관계자는 “참모진들은 지금 코피 쏟고 난리도 아니다. 굉장히 힘들어 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대통령은 그런 피로를 호소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마침 이날 대통령실은 대통령 양방 주치의로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박상민 교수를 임명했다. 박 교수는 캐나다 일정에 동행했다고 한다.
“왜 내과-신경과 아닌 가정의학과?”
일부에서는 ‘역대 대통령의 주치의는 대개 내과나 신경과 의사였는데 이번엔 왜 가정의학과냐’고 묻기도 하지만, 주치의를 가정의학과로 선택했다는 것은 그만큼 이 대통령이 건강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서울대학교병원에 진료 받으러 갔는데 “가정의학과로 가시죠”라고 안내받는 경우는 특별한 이상이 없을 때 또는 증세가 경미할 때다.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에는 1인당 200~300만 원을 받는 종합건강검진 코스가 있다. 이 검진에서 문제가 발견되면 내과든 신경과든 해당 전문의로 보내준다.
‘왜 내과, 신경과가 아니고 가정의학과냐?’는 질문에 대통령실 관계자가 “과거 특정 대통령이 왜 내과 또는 신경과 전문의를 주치의로 골랐는지가 오히려 질문 대상이 되어야 할 것 같다. 가정의학과가 가장 넓게 보는 제너럴(general)한 곳이고, 대통령 건강에 특별한 문제가 없어서 그런 것 같다”고 대답한 것은, 대학병원 사정을 아는 사람이라면 아주 정확한 답변이라고 판단할 만하다.
다음은 대통령의 영어 실력이다. 이번 G7 연쇄 정상회담에서 첫째로 놀라왔던 것은 이 대통령의 ‘스스럼 제로’ 태도였다. 상대방 정상이 백인이든 흑인이든, 이른바 흙수저 출신이든 금수저 출신이든, 마치 이미 친분이 있던 사람처럼 반갑게 만나고, 가벼운 농담을 주고 받으며 크게 웃고 하이파이브 악수를 나누는 모습은 놀라움 자체로 다가왔다.
'외국인 울렁증'은 언어 문제이면서 인간의 본능
왜냐면, 처음 만나는 사람, 그것도 피부색과 언어가 다른 외국인과 이렇게 격의없이 어울리는 게 사실 굉장히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피부색이 다른 사람을 만나면 외국인 혐오증이 있건 없건 상관없이 자기도 모르게 긴장한다는 것이 여러 심리 실험에서 증명됐다.
외국인과 만나 내내 서먹함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 중에는 영어가 모자라서 그럴 수도 있지만(한국어를 영어로 번역해가며 말해야 하는 수고스러움), 영어에 능숙한 사람이라도 이처럼 ‘DNA에 새겨진 본능적 거부감’ 탓에 끝내 거리감을 좁히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G7 첫날부터 이 대통령은 단체 촬영을 하러 가면서 남아공 대통령과 나란히 걸어가며 대화를 나눴고, 촬영 뒤에는 브라질 룰라 대통령과 신체 접촉을 해가며 대화를 나누는 친근한 모습을 보여줬다. 놀라운 친화력의 증명이다.
우선 통역 없이 대화가 된다는 점에서 이 대통령의 영어는 ‘상당한 수준’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영어 실력에 더해 또 하나 짐작할 만한 것은 이 대통령의 자신감이다.
예전에 방송인 김제동이 아일랜드 시골에 가서 “내가 아일랜드 말을 한 마디도 할 줄 모르지만 얼마든지 의사소통을 할 수 있으니 한 번 보라”면서 몸짓, 손짓과 웃는 얼굴, 한국어 등 온갖 수단을 동원해 현지 농부와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준 데서 알 수 있듯, 외국인과의 스스럼없는 교섭에는 자신감이 사실상 첫 번째 조건이라고도 할 수 있다.
외국인과 '마가 뜨지 않는' 대화를 재밌게 이어가는 3 조건
대통령실 관계자는 19일 G7에서의 연쇄 정상회담에 대해 “소위 말하는 대화 중에 중간에 ‘마가 뜬다’고 하는 휴지 기간(pause)이 없이 모든 대통령-총리들과 굉장히 이야기가 잘 이루어졌다”고 소개했다.
통역이 있건 없건, 이처럼 마가 뜨지 않는, 흥겨운 대화가 이뤄지려면 최소한 세 가지가 필요할 것 같다. 1. 신체 에너지(지치면 웃지 못한다) 2. 가벼운 조크를 던질 수 있는 자신감(유머 감각) 3. 통역 없이 말할 때는 영어 실력이다.
에너지에 관한 한, 이 대통령은 ‘슈퍼 톱’ 클래스인 것 같다. 심리학자 김태형은 저서 ‘대통령 선택의 심리학’에서 “어머니의 사랑이야말로 생의 에너지의 원천”(103쪽)이라고 썼는데, 이 대통령과 어머니의 관계를 생각하면 딱 맞는 말이다.
두 번째 사항, 즉 유머 감각에 대해서는, 이번에 이 대통령이 호주 총리와의 만남 첫 머리에 “사진보다 젊어 보이신다”고 유머를 던진 것에 대해 일부 극우 유튜버들은 “그 조크를 호주 언론이 비판했다”고 논평했던데, 이는 서구인들의 조크 감각을 잘 모르고 하는 소리 같다.
미국인들의 공식 회합에 가보면 항상 부러운 것 중의 하나가 ‘아이스 브레이킹(얼음 깨기)’을 아주 귀신같이 잘한다는 점이다. 그들이나 우리나 누군가 연단으로 올라가 연설을 한다고 하면 전체가 약간 긴장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미국인 연사들은 첫 머리에 웃기는 말을 슬쩍 던져서 좌중의 긴장부터 풀어놓는다.
얘기의 주제가 심각하면 심각할수록, 이 같은 얼음 깨기는 중요하다. 얼음부터 깨놓지 않으면 도대체 말의 내용이 잘 귀에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다.
고 노무현 대통령의 연설 비서관을 지낸 강원국은 저서 ‘대통령의 글쓰기’에서 “백악관에는 유머 담당 작가가 별도로 있을 정도다”(256쪽)라고 소개했다.
피곤하지 않은 체력과 적절한 유머 능력, 그리고 외국 정상과 1대1 친숙 대화가 가능한 영어 실력까지 갖춘 이 대통령의 외교 활동은 앞으로 두고두고 연구 대상이 될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