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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집행관 와도 속수무책"…철거 확정에 신규 임차인 '고기방패'

철거 판결 뒤에 숨은 '시간 벌기'…확정판결 비웃는 점유 세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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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박상호기자 |  2026.02.13 14:51:06

유치권 행사로 점유가 이뤄지고 있는 현장(사진=박상호 기자)

철거 확정판결을 받아도 현장은 쉽게 비워지지 않는다. 토지주와 건물주가 다른 분쟁에서 패소한 건물주가 새 임차인을 들이며 점유자가 바뀌었다는 상황을 만들면, 강제집행은 판결의 속도가 아니라 절차의 속도로 굼떠진다.

 

법원 결론이 나왔는데도 집행이 늦어지는 이유는 제3자 점유가 끼어드는 순간 집행권원이 전제한 점유관계가 흔들리고, 집행 대상을 다시 특정해야 하는 절차로 넘어가기 때문이다.

 

판결까지는 비교적 명확한 권리 구조

 

토지 소유자와 건물 소유자가 다른 구조에서 토지주는 대개 토지 인도와 건물 철거를 구한다. 소유자는 소유권을 방해하는 자에게 방해 제거를 청구할 수 있고 소유물 반환도 청구할 수 있다(민법 제214조, 제213조). 권리 구조만 놓고 보면 결론이 비교적 명확하게 갈리는 편이다.

 

문제는 판결 이후다.

부동산 인도 집행은 민사집행법 제258조에 따라, 집행관이 채무자에게서 점유를 빼앗아 채권자에게 인도하는 직접강제다. 이 절차는 집행권원에 표시된 채무자의 점유를 출발점으로 삼는다.

 

대법원은 집행의 대상자는 집행권원에 표시된 채무자 본인이고, 목적물을 제3자가 점유하고 있는 경우에는 인도 집행을 할 수 없다는 취지로 선을 그었다(대법원 2022. 6. 30.자 2022그505). 판결문 속 채무자와 현장 점유자가 어긋나는 순간 집행은 즉시 실행이 아니라 점유관계 재확인으로 넘어간다.

 

토지주·건물주 분쟁에서 점유가 '시간 벌기'로 변질

 

패소한 건물주가 임차인 교체로 시간을 버는 구조는 여기서 시작된다. 소송 중이거나 판결 확정 직후 새 임대차 계약을 맺어 제3자를 들여보내면 현장 점유자가 바뀐다.

 

토지주 입장에선 확정판결을 들고도 집행 설계를 다시 해야 한다. 친인척이나 지인을 내세운 위장 점유가 문제 되는 경우도 있다. 실질적으로는 채무자의 지배 아래 놓인 점유인데도 외관상 제3자 점유로 정리되면 집행은 곧장 진행되지 못하고 절차가 지연될 수 있다.

 

이 때문에 실무에서는 소송 전후 점유이전금지가처분을 함께 검토하는 경우가 많다. 가처분은 부동산 인도청구권을 보전하기 위해 점유 이전 등 인적·물적 현상 변경을 금지하는 절차로 안내된다. 이를 놓치면 판결 이후 집행 단계에서 점유자 문제를 다시 풀어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

 

다만, 가처분이 집행돼도 모든 문제가 한 번에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대법원은 점유이전금지가처분 이후, 점유를 이전받은 제3자에 대해 가처분 자체의 효력만으로 직접 퇴거를 강제할 수는 없다고 정리했다. 본안판결 집행 단계에서 승계집행문을 부여받아 제3자의 점유를 배제할 수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대법원 1999. 3. 23. 선고 98다59118).

 

결국 쟁점은 새 임차인이 채무자의 승계인인가로 이동한다. 승계가 인정되면 승계집행문을 통해 집행 대상이 확장될 수 있다. 반대로 승계 관계가 복잡하게 연쇄되거나 위장 점유 여부를 다투게 되면 승계집행문 부여 자체가 제한되거나 지연될 수 있다는 하급심 판단도 있다(부산지법 1986. 1. 15. 선고 85가합1682).

 

여기에 유치권 항변까지 결합하면 분쟁은 더 복잡해진다. 공사대금 미지급 등을 이유로 유치권을 주장하며 점유의 정당성을 다투는 경우, 집행과 본안 다툼이 맞물리면서 장기전으로 흐를 수 있다.

 

명도 소송 중 새 세입자? 퇴거 위험 몰랐던 임차인의 날벼락


가장 위험에 노출되는 쪽은 분쟁의 맥락을 모른 채 계약한 새 임차인이다.

임대인과의 계약은 별개라고 생각했더라도, 집행 단계에서 승계 여부가 다퉈지는 순간 퇴거 위험과 손실이 한꺼번에 현실화될 수 있다. 계약 전 등기부등본의 가처분 기재를 확인하고, 현장에 집행관 고시문 부착 흔적이 있는지 살피는 등 주의가 필요하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명도 사건은 개인 체감과 달리 적지 않은 규모로 반복된다.

대법원이 발간한 ‘2021 사법연감’에 따르면, 지난 2020년 민사 1심 명도소송 접수는 3만 3,729건으로 집계됐다. 항소심은 2,453건, 상고심은 499건이었다.

 

지연의 원인은 판결의 효력이 약해서가 아니다. 점유가 바뀌면 집행은 멈칫한다. 제3자 점유가 확인되는 순간 집행은 별도 절차 검토로 넘어가고, 승계집행문 부여 여부가 갈림길이 된다. 임차인 보호라는 제도 취지가 현장에선 시간 벌기의 도구로 쓰인다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대법원이 경고한 형사 처벌.. 가처분 고시문 무시했다간 '공무상표시무효죄'

 

특히, 점유이전금지가처분이 집행된 뒤 이를 무력화하는 방식의 점유 이전에는 형사 쟁점도 따라붙는다.

 

대법원은 집행관이 가처분 집행 표시(고시문)를 부착한 이후 가처분 채무자가 다른 사람에게 점유를 이전하는 행위가 사안에 따라, 공무상표시무효죄로 문제 될 수 있다는 취지로 판단했다(대법원 2025. 12. 4. 선고 2024도6213).

 

확정판결만으로 끝난다고 믿는 순간 싸움은 판결문 밖에서 다시 시작된다. 누가 점유하는가가 집행의 시계를 좌우한다. 토지주와 임차인 모두 계약과 집행 사이의 점유 리스크를 더 이상 부수적 문제로 보기 어렵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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